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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절 하늘 천 땅 지 2절 효원, 역사에 등단하다 3절 선천에 묻힌 조상의 한 4절 김천 장터 5절 소년의 곶감 6절 15년 만의 외출 7절 무명 장사 8절 궁 밖으로 9절 한양으로 10절 봉은사 풍경 소리 11절 을미사변 12절 윤정의 기도 13절 아관파천 14절 영친왕의 보모상궁 15절 정주에 뭍힌 한 16절 조상의 한을 씻고 17절 피어오르는 교육의 불꽃 18절 경부선 철도 19절 을사늑약 20절 헤이그 특사 파견 21절 역사의 급물살 22절 적선동으로 23절 고향 김천 나들이 24절 구원의 손을 내밀다 25절 명월관 수라상 26절 무교동 송설당 27절 생명의 근원, 선천 28절 꿈틀거리는 김천의 교육 29절 사회사업 30절 뜻을 세우다 31절 담판을 짓다 32절 김천고등보통학교 에필로그 작가의 말 인물, 최송설당 연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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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許”
불허라는 두 글자만 선명하게 쓰여진 통보서였다. 지금까지 어렵게 어렵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간의 수고가 이 ‘불허’라는 두 글자로 인해 모두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뭔가가 이상했다. 교육계획과 재정 내역, 학교 부지 등 학교 설립 허가에 대한 요건은 모두 충족했고, 학무과 직원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결과가 불허라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 pp.7-8 “윤정아, 글공부가 꼭 과거 시험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배우고 깨쳐야 한단다. 옛 어른의 말씀에도 배우고 깨치지 않으면 소, 돼지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러니 여자이고 과거에 응시할 수 없다고 해서 배움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 p.20 “마마, 전국에서 의병들도 일어나서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일본에 대해 반대하고 있습니다. 결국 민심은 전하의 편입니다.” “백성들한테 해주는 것도 없는데, 의병이 웬 말이란 말이야?” 고종은 눈을 감고 통한의 울음을 터뜨린다. --- p.105 “그렇습니다. 마마, 나라가 힘이 없는 것은 교육이 약해서이옵니다. 그나마 있던 서원도 철폐되고 동네마다 있는 서당에서 글만 깨치는 정도입니다. 한데 서양을 보십시오. 쇠로 된 배와 총포도 만들어 조선을 침범하지 않습니까. 그런 물건은 어떻게 만들어지겠나이까? 바로 배움으로 가르치고 익혀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선도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양의 좋은 점을 배우고 그들을 능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을 부흥시켜야 합니다.” --- p.139 1926년 11월 16일 자 [조선일보]는 “최송설당의 미거”라는 부제하에 최송설당의 사회사업에 대해서 소상히 게재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에 총독부에서 연락이 왔다. 김천공립보통학교에 기부를 했다고 표창장을 준다는 것이었다. 극구 사양했지만, 총독부에서 차까지 딸려 보내서 사양할 수도 없었다. 총독부 건물은 궁궐 경복궁 앞에 버젓이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조선이 개명하고 발전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왔다면서도, 남의 나라 궁궐 앞에다가 저렇게 버젓이 건물을 지어 놓은 부도덕한 행실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 p.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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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허(不許)’를 딛고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세워낸 육영사업가,
최송설당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나다. “김천에 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한다는 신문 기사를 접할 때부터 총독부에서는 당혹감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최송설당이라는 여성이 학교를 설립한다는 것에 대해서 일간지마다 칭송하고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소문이 돌며 식민지 지배하의 조선 사람들이 구심점을 갖고 독립의 반기를 들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심히 우려되었다.” “일제의 인문계 학교 불허 정책에 대해 최송설당은 양보하거나 물러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일제가 호락호락 쉽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학교 설립을 허용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다. 1930년 6월 29일, 최송설당은 학교를 세울 김천으로 몸소 거쳐를 옮겼다.” 이 책이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서 집안의 누명을 풀기 위한 짐을 잔뜩 지고 살아야 했고, 일제강점기 역사의 현장에서 조용히 민족 교육을 일궈낸 한 여인의 진심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나의 관점으로 풀어내지 못한, 깊고 다양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의 관점으로 계속해서 세상에 알려지기를 희망한다. 다양한 관점으로 그려진 이야기 퍼즐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서 현재를 호흡하는 할머니를 목도하고 싶다. 송설당 할머니가 조국 독립을 위한 염원으로 학교를 세운 큰 뜻은 지난 100년을 밝혀온 등불이 되었고, 또 하나의 100년을 맞이할 마중물이 될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