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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인사말_서진석
프롤로그_슈야 아베
저자 소개_백남준, 슈야 아베
서신 인덱스
서신들
역자 후기_이경희
기술 용어
출판 정보

저자 소개 3

아베 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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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슈야는 1932년 일본 태생 테크니션으로 백남준과 1963년 이후 함께 작업을 했으며,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1969), [로보트 K-456] (1964)의 공동 작업을 수행한 바 있다. 도쿄방송,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동양현상소, IMAGICA 등에서 기술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아베는 백남준의 기술 조력자인 동시에 친구로서 백남준의 예술을 여러모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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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일본 가마쿠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도쿄대학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한 후,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 동시대 전위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기존의 예술 규범, 관습과는 다른 급진적 퍼포먼스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이 때부터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백남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에서 중학교를, 일본 가마쿠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도쿄대학교에 진학해 미학을 전공한 후,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으로 졸업 논문을 썼다.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 동시대 전위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기존의 예술 규범, 관습과는 다른 급진적 퍼포먼스로 예술 활동을 펼쳤다. 이 때부터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의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1963년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백남준은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비디오 영상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작품과 비디오 영상을 결합하고, 자유자재로 편집할 수 있는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개발하였으며, 여기에 음악과 신체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까지 더해져 백남준만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필두로 위성 기술을 이용한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전위 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무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으며,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관 대표로 참가하여 유목민인 예술가라는 주제의 작업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레이저 기술에까지 영역을 확장해 나가던 가운데 1990년대 중반 뇌졸중이 발병했다. 하지만 2006년 마이애미에서 타계할 때까지 백남준은 예술적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백남준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이다.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았으며 예술을 통해 전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던 백남준은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 “아주 특별한 진정한 천재이자 선견지명 있는 미래학자”로 평가 받으며 여전히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로서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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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17쪽 | 230*285*20mm
ISBN13
9788997128426

출판사 리뷰

백남준과 슈야 아베는 1963년 처음 만난 후, 영상합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적 장치를 개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쏟아부었다. 흑백 카메라를 연결하여 컬러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시작으로, 아베와 함께 수작업으로 제작한 영상 합성기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1969/1972)의 제작까지 둘의 기술 협업은 진지하고 세밀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협업 내용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유머를 서신 곳곳에서 볼 수 있다. 2005년 백남준은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노트를 아베에게 보낸다. ‘평생 한 번 있을 만남’을 뜻하는 이 문구는 아베가 백남준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인연이자 동지였음을 보여준다.

『백-아베 서신집』은 원 서신의 의도를 최대한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편집?번역했으며, 이 과정에서 표준어보다 원문의 어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당시의 언어들은 그대로 살렸다. 원문 번역은 백남준의 필체와 당시의 단어를 이해하고 있는 백남준의 유치원 친구 이경희 선생과 미디어 아트 전문가 마정연 박사가 담당했고, 확인이 어려운 내용은 슈야 아베 선생과 직접 상의하여 내용을 정리했다.

추천평

최근 역사학계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는 방법론 중에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transnational history)’라는 것이 있다. 역사를 연구할 때 국경이라는 경계에 갇히지 말고, 사람, 아이디어, 물건 등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동적인 과정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백-아베 서신집』에 실린 편지들은 주로 미국에 거주했던 백남준과 일본의 슈야 아베 사이에 아이디어, 기계, 테크닉, 전략, 사람이 오가면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형성해 냈던 과정을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역사는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의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둘이 주고받은 첫 “편지”는 백남준에게 아베를 소개한 우치다 히데오의 명함이었다. 1963년 도쿄에서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종이가 없던 백남준이 자신의 주소를 명함 뒷면에 적어서 건네준 것이었다. 이후 백남준과 아베는 함께 ‘로봇’을 제작했고, 백남준은 1964년에 이 로봇을 가지고 뉴욕으로 건너갔다. 도쿄에서는 잘 작동했지만, 뉴욕에서 보니 기어와 제어용 리드 셀렉터가 빠지고, 7채널이 못쓰게 되고, 릴레이가 타고, 배터리가 약해졌다. 1964년 7월 4일의 편지는 이걸 수리하는 데 “악몽과 같은 일주일”이 걸렸음을 기록하고 있다.

백남준은 자신이 필요한 부품들, 전자기기들을 아베에게 요구하고, 이런 부품들은 동경에서 구매되거나 조립된 뒤에 뉴욕으로 부쳐졌다. 백남준은 틈틈이 부품값과 수고비를 송금했고, 일부는 일본에 거주하는 자신의 형으로부터 받으라고 했음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것도 있다. 아마도 아베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데, 백남준은 오랫동안 지구본을 알아봤고, 결국 하나를 사서 아베에게 보냈다. 그런데 당시 이런 물건들은 태평양을 오가면서 파손되는 경우가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백남준이 보낸 지구본도 일본에서 열어보니 파손되었고, 일본에서 부친 비디오 카메라가 대파된 경우도 편지에 기록되어 있다. 1964년 11월 2일 편지에서 백남준은 “Transport의 문제가 있으니까 다시 한번 각 세부의 신뢰성, 내진 안전성은 100%를 기해 주시기를 부탁”한다고 적고 있다. 정말 중요한 기계는 사람이 오갈 때 인편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1964년 백남준과 아베는 일종의 비디오테이프리코더를 개발해서 판매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이는 소니와 같은 대기업과의 경쟁이었는데, 결국 젊은 예술가-엔지니어의 협동연구는 소니를 이기지 못했다. 1965년 1월만 해도 백남준은 더 투자를 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2월의 편지는 “대기업이 여기까지 온 이상 우리가 한다는 것은 바보짓이다”고 적고 있다. 날짜를 알 수 없는 한 편지에는 이것이 “4년간의 비밀작전”이었고, 마지막에 한 발 져서 약이 오른다는 심정이 적혀 있다.

이 서신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백남준의 비디오 신디사이저가 구체화된 과정과 관련된 것이다. 우선 1966년 2월 1일에 백남준이 아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미지의 중첩 실험을 하고 싶다는 얘기가 언급되면서, 아베의 견해를 묻는 구절이 있다. 1969년에 백남준의 아이디어는 구체화되고, 7개의 카메라(비디오)를 이용해서 이 이미지들에 색깔을 입해서 이를 합성하는 아이디어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해 가을에 WGBH 방송국의 후원을 받은 백남준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베와 함께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만들어서 미국으로 가져왔고, 아베는 1970년 여름에 미국으로 건너와서 다시 백남준을 도와 이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첫 방송을 제작하는 일을 함께 진행했다. 이 무렵, 백남준은 비디오 신디사이저의 7개의 카메라를 가리켜서 “무지개의 7색”이라고 했는데, 이후 편지에서는 아예 이 비디오 합성기를 “무지개”로 표시하기도 했다. 1970년 2월경에 쓰인 편지에는 “무지개가 잘되면 나중에 크게 벌게 됩니다” “무지개와 적외선 카메라만 부탁” “무지개가 일등(가장 중요)”이라는 언급이 있다.

백남준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의사, 아베」라는 글(1991)에서 아베의 독창적이며 천재적인 사고와 그의 성품을 높게 평가했다. 백남준은 아베가 없었다면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반면에 아베는 백남준의 천재성은 자신과 같은 범인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고, 자신과 백남준의 협력은 모두 백남준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축소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모범적인 협력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예전에 백남준이 아베에게 보낸 편지의 손글씨가 해독이 안 돼서 일본 학생에게 이 편지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편지를 가지고 며칠 끙끙대던 일본 학생이 자기도 해독이 잘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이 편지를 일본에 있는 한 대학교수에게 보여줬는데, 그 대학교수도 이를 잘 읽지 못했다고 내게 전해 줬다. 그 교수는 ‘아마 이 편지는 슈야 아베 선생만이 읽을 것이다’는 얘기도 덧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독하기 힘든 백남준의 편지들이 이제 한글과 영어로 번역되어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 서신집은 백남준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이 결실을 맺게 해 준 백남준아트센터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홍성욱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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