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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시작
이브의 사과 우르… 일신교 입문서 떠오르는 과학 분할과 정복 전쟁피로증 불안한 먹거리 사라진 꿀벌들 모던타임스 감옥살이 동물의 왕국? 색칠 그림 몸과 마음 여자의 일 소녀 같은 소년, 소년 같은 소녀 기죽은 아이들 우리 안의 괴물 춤을 춥시다 치유 모임 변신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기 불은 어디에 모든 걸 다 가지고도 돌아라, 바퀴야 시작에서 끝 감사의 글 옮긴이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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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 예수, 마호메트의 숭고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조직은 끊임없이 유혈 사태, 전쟁, 그리고 편협성을 낳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 세 일신교의 공통점들(남성 신, 남성 예언자, 책을 쓰는 오른손의 작업)이 신도들을 이해보다는 전쟁과 더 가까워지게 했다는 사실이 더 아이러니하다. 가장 최근에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전쟁을 사례로 들 수 있다. 그 지역은 세 종교 모두에 신성한 곳이다. 그러면서 함께 어우러져 살지 못하는 일신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p.47
많은 생물이 히즈스토리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다. 도도새는 16세기에 모리셔스 섬에 정착하면서 새의 알을 모두 먹어치우는 돼지와 원숭이도 함께 데리고 온 네덜란드 식민주의자들 때문에 희생되었다. 그들이 그 섬을 점령할 때까지, 도도새가 날지 못했던 것은 결코 약점이 아니었다. 세계 보존 연합이 2006년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흰수염고래와 눈표범 그리고 호랑이를 포함한 생물종 중 40퍼센트가 지금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그 동물들은 오래전에 사라진 도도새처럼 날지 못한다고 조롱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p.95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도 임신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처녀 수태는 일신교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꿀벌과 꿀을 관장하는 님프인 멜리세와 고대의 처녀 사제들은 수정하지 않고도 신성하게 알을 낳을 수 있는 여왕벌의 처녀 생식을 따르고자 했다. 성경 속의 마리아는 승화된 종교 수행으로 처녀 수태에 전념하는 여사제였을지도 모른다. 가톨릭교회의 신부들은 예수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무원죄잉태설로 여성에게서 권력을 빼앗아 마리아의 임신을 가능케 한 남신에게 건네주었다.--- p.145 남성은 힘이 세고 여성은 약하다는 논리의 확장은 공동체의 균형을 깨뜨린다. 남성들은 지배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리라 생각하고, 여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굳혔다. 그런 분리가 고착될수록 더 많은 세대가 언제나 그래왔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고 믿게 된다. 그럴수록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는 없어진다. 소녀들은 전사, 사냥꾼, 지도자가 될 수 없고, 소년들은 아이를 기르거나, 아궁이를 살피거나, 동네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려고 하면 야단을 맞거나 조롱거리가 되었다.--- p.161 세계는 다 비슷해 보이고, 지방의 고유한 풍습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쓰는 언어가 달라도 MTV와 CNN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침실마다 있으며,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없다.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함께, 세계 곳곳에는 주유소와 공해, 그리고 황무지가 생겨났다. 아메리카 인디언인 수족의 속담처럼,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우리가 누군지를 후대에게 알려줄 것”이라면, 이 소모적인 여행의 증가가 우리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우리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p.254 자연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으니 개선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고수한다면, 우리는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여기가 우리 집이며, 자연은 완벽하다. 우리는 그 반대로 말한다. 그리하여 자연을 병들게 한 생각과 5000년을 함께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연이 다시 건강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 p.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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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열면 우리가 ‘상식’이라 믿었던 모든 것의 실체가 드러난다.
지난 5000년간 인류 사회를 지배한 히즈스토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숫자 영(0)은 ‘아무것도 아닌’을 의미할까? 왜 흰 쌀밥과 밀가루, 그리고 하얀 피부가 사랑 받을까? 왜 고대의 여신들은 모두 사라졌으며, 왜 하느님도 알라도 ‘남성’일까? 왜 남자와 여자의 일을 구분하고,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요할까?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에 우리의 ‘상식’은 극적으로 뒤집어진다. 0들의 무한 행렬은 0보다 큰 남성의 숫자인 1을 포함하고서야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수학계의 진리, “선하고 자비로운 신은 흑인일 수가 없다. 그는 빛나는 분홍빛 뺨을 가진 백인 남성이다”라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한 선교사들, 남성과 여성이 결합할 때 생기는 성적 에너지의 힘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거부하고 부정한 남성 중심의 종교계, 육아를 하찮은 일로 취급하면서 여성에게만 떠맡기는 가부장적 사회, 도시 건설이라는 야망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야생을 악마적인 것인 양 취급한 권력자들, 고대의 지혜와 지식을 물려받고 전수하는 여성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마녀로 규정하고 학살한 중세 유럽 사회…. 이렇듯 무거운 내용들 때문에 이 책은 인문학 서적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포스트처럼 유쾌, 상쾌, 통쾌하고 친근한 문장 하나하나를 웃고 즐기면서 읽노라면, 전보다 더 많이 삶을 즐기려 하고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마저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아울러 세상이 정해놓고서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기준’과 최신 유행을 따르기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인, 그래서 더 편하고 여유로워진 자신에게도 놀라게 되리라. 인류의 문명과 함께해온 히즈스토리 파악하기 저자인 닉 테일러는 히즈스토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약 5000년간 동서양에서 지속되어온 오직 하나의 이야기, 즉 ‘남성들이 점령했던 기간’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그의(his)’ 이야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물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지속적인 논쟁거리가 되어온 모든 이론을 포함한다. 즉, 히즈스토리는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실로 기겁할 만한 남성 지배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히즈스토리의 기반인 남성 시대의 주요 속성은 약 5000년 전에 그 뿌리를 내렸고, 문헌과 농사, 도시, 사유 재산, 전쟁, 세습적인 군주제와 (오직 한 신만 믿는) 일신교적 세계관 같은 도구들을 이용하여 세상을 만들어왔다. 남성적인 사고방식은 이렇듯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우리는 그러한 도구들이 영원할 것이며, 그것이 없는 삶은 상상도 못하게 된 것이라고 닉 테일러는 말한다. 자기 정당화와 경제력과 폭력적 갈등을 통해 히즈스토리를 실질적으로 옹호하는 것 자체가, 그런 히즈스토리적 생활 방식과 히즈스토리의 영향이 영원할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 삶 속의 히즈스토리 살펴보기 테일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먼지 나는 지하 묘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을 관통하고 있는 히즈스토리의 사례들을 우리 스스로 살펴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그토록 오래전에 시작된 이야기들이 어떻게 오늘날에도 똑같이 반복되는지 보여준다. 식습관, 우리 몸을 둘러싼 불안, 동물, 어린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통해 히즈스토리는 지금도 우리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테일러는 주장한다. 여성성을 금하고 고립시키며 부정하는 한편, 남성성을 고취시키는 이야기는 치명적으로 편파적이다. 분명 서기 2011년은 기원전 2011년이 아닌데도 그때와 현재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보면서 정말 놀라게 될 것이다. 몇몇 남성이 독점한 부,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이웃한 나라들 간의 끊이지 않는 전쟁,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내용의 비이성적지만 보편적인 생각, 성공한 몇몇 사람들의 권력 기반을 공고하게 해주려고 이루어지는 동물 그리고 자연 학대. 이렇듯 히즈스토리는 지난 시대 그 어느 때만큼이나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있다. 지구별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우리의 생각과 행동 패턴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지금, 여전히 히즈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사실도 분명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될 사실이다. 히즈스토리가 원인이 된 문제의 해결책 제시하기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고서 문제의 원인과 현상만 나열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테일러는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현상으로 드러나지만 결국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위기에 대해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히즈스토리는 지금 모든 대륙, 모든 가족과 모든 생각에 스며들어 있으며,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히즈스토리를 반복할수록 그 씨는 널리 퍼진다. 그것에 대항해 균형을 잡으려고 여성성을 불러오는 일은 토착 문화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그동안 큰 목소리에 묻혔던 작은 목소리를 귀 담아 들으며, 기존의 가능성을 다시 상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허스토리(Her-Story)인 그것이 히즈스토리를 대신하지는 않는다. 히즈스토리의 독단적 반복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 개개인에게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관용과 평등을 기꺼이 추구하고, 우리가 존중 받기를 바라는 만큼 모든 생명을 존중하며, 세상을 ‘파괴해도 되는 영혼 없는 자원’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 생각하면서 소중히 여기는 이야기 말이다. 여성성의 부활을 고무하는 것은 시작과 끝을 명령하는 남성적 요구뿐만 아니라 끝없는 나선형까지 아우르는 것이고, 춤과 놀이를 자유롭게 즐기면서 모든 동물, 식물, 그리고 자연에 있는 생명력을 존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의식의 배선을 재정비하여 세상과 더불어 사는 ‘다른 방식’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테일러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고, 무엇이 파멸적인 현재 상황까지 오게 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벌어진 잔혹 행위에 대해 분노와 슬픔과 회환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실수를 하며, 그것이 인간의 속성 중 하나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파괴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그다음 단계를 만드는 것도, 우리가 세상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인간의 뛰어난 창조력을 사용하는 것도 우리 모두의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