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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유왕산(留王山)
12장 함거 13장 북망산(北邙山) 14장 두량윤성 15장 후계자 16장 위령제(慰靈祭) 17장 훈풍 18장 썩은 개 19장 찬물 20장 새 생명 |
柳廷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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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유왕산(留王山)
임존성의 공략에 실패한 당군은 철군을 서두르고, 김춘추은 소정방의 승전 공적을 적은 표문을 당황제에게 보낸다. 의자왕과 왕비 은고, 태자 륭과 중신들은 당군선에 실려 당으로 압송된다. 유왕산에서 의자왕은 율 공주로 하여금 왜국에 있는 태자 풍을 중심으로 항전하라는 밀서를 임존성 지휘부에 전달한다. 당이 철군하고 신라군도 삼년산성으로 떠나자 백제군은 사비성 탈환 준비에 진력한다. 12장 함거 당군이 철군한 뒤 사비성의 분위기는 백제군 위주로 급속히 바뀌고 마침내 백제군은 사비성을 공략한다. 김유신과 천관녀, 흥수의 엇갈린 운명은 다시 격랑을 타고, 율 공주는 생포되어 당 황제에게 진상되기 위해 함거에 실려 간다. 함께 끌려가던 지수신과 율 공주는 인파 속에서 백발의 흥수를 발견한다. 13장 북망산(北邙山) 당 황제 이치는 의외로 의자왕에게 파격적인 예우를 하고 선처를 베푼다. 하지만 의자왕은 승하하고 만다. 의자왕의 승하 소식은 임존성에도 전해지고 백제의 제장들은 임존성 사수와 사비성 탈환의 의지를 다진다. 14장 두량윤성 흥수는 지수신과 율을 부장으로 삼아 두량윤성을 공략하는 김품일의 신라군을 패퇴시킨다. 나당군의 유인궤가 승려 도침과 흑치상지가 지키고 있는 청산성을 공략하니 백제군은 분전 끝에 임존성으로 퇴각한다. 15장 후계자 흥수의 두량윤성 승전과 도침의 청산성 패전 등 전황이 엇갈리는 가운데 벡제군은 수도 이전과 지휘부 개편을 놓고 격론을 거듭한다. 한편 흑치상지의 율 공주에 대한 묻어둔 흑심이 되살아난다. 복신의 주도로 백제는 수도를 주류성으로 옮긴다. 흥수는 딸인 선과 눈물의 해후를 한다. 왜국의 지원군은 태자 풍을 앞세우고 백강 하구에 당도한다. 16장 위령제(慰靈祭) 풍이 보위에 오르고 난 뒤 백제군 수뇌부는 미묘한 갈등에 휩싸인다. 김춘추의 뒤를 이은 신라 김법민은 웅산성 공략에 친정을 선포한다. 신라의 와해 공작에 말려든 백제군 지휘부는 내분에 휩싸여 웅산성은 신라군에 함락된다. 17장 훈풍 사타상여가 웅진성으로 들어가는 신라군의 군량을 빼앗고 소정방의 당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략하면서 백제군을 돌아볼 여유가 없자 웅산성의 함락으로 침울했던 백제군은 한숨을 돌린다. 18장 썩은 개 백제군의 공세에 유인궤는 당 황제에게 지원군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린다. 태자 륭을 귀국시켜 풍에게 맞선다는 계책이 추진되고 이 소식을 들은 흑치상지는 율 공주와의 인연을 꿈꾼다. 고구려의 공략에 진력하던 당군은 다시 백제로 눈을 돌린다. 지라성, 두량윤성 등이 차례로 함락된다. 풍은 피성 천도라는 실책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백제군의 대들보인 복신과 귀지를 죽이니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에 휩싸인다. 19장 찬물 유인궤의 상소로 당군과 태자 륭이 웅진성에 들어오니 주류성과 임존성은 풍전등화에 놓이게 된다. 상황이 당군 쪽으로 가파르게 변하자 율 공주와 지수신은 찬물 한 그릇을 떠놓고 부부연을 맺는다. 한편 왜군 3만과 왜선 1천여 척이 백강 하구로 출병한다. 풍과 륭이 대적하는 골육상쟁의 와중에 왜 수군은 당 수군에게 대패한다. 20장 새 생명 신라군 수뇌부에서는 당의 야욕에 대비한 자주 노선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진다. 신라군은 서라벌의 위태로운 정세 때문에 임존성 공략을 포기하고 철군한다. 유인궤의 공작으로 모반하여 가림성을 당군에 헌납한 흑치상지가 임존성의 공략에 선봉에 선다. 지수신은 당군의 사냥개가 되어 나타난 흑치상지를 설득하지만, 흑치상지는 속임수로 퇴각했다가 백성을 볼모로 백제군을 묶어 놓는 것도 부족해 태자 륭과 임존성을 공략한다. 율 공주의 고백으로 지수신은 율 공주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분전 끝에 전사한다. 륭의 마지막 배려로 율 공주는 임존성을 탈출한다. 마침내 백제 최후의 성, 부흥 전쟁의 보루 임존성은 당군의 사냥개가 된 흑치상지에게 함락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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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60년 의자왕이 당나라 소정방에 항복을 하게 된 과정과 그 이후 백제부흥운동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663년 최후 항전까지의 역사를 바탕으로, 당시 백제부흥군을 이끌던 백제의 마지막 영웅 지수신의 활약상을 통해 잃어버린 위대한 왕국 백제의 당시 역사를 재조명 하고 있다.
백제의 마지막 영웅, 지수신이 부활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승자가 아닌 인물은 역사의 기록에 남아 있기 어렵다는 말이다. 남아 있더라도 승자의 영웅담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으로서만 다뤄질 뿐이다.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 영웅 지수신도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을 서성이고 있었다. 작가 류정식은 백제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궁금했다. 강성한 문화 대국으로 700년 가까이 역사를 이어 온 백제가 어떻게 한 순간에 무너졌는지, 단지 의자왕이 방탕해서 그렇게 된 건지 궁금했다. 류정식은 2010년부터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비롯해서 백제 멸망과 관련된 도서와 논문 등 역사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는 역사의 뒷골목을 헤매다가 한 사내를 만났다. 폐허가 된 임존성에서 어검 ‘칠생도’를 단단히 그러쥐고 사비성을 바라보는 한 사내의 뒷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백제의 마지막 영웅 지수신. 그는 아직도 백제는 망하지 않았다는 굳은 신념으로 땅을 굳건히 디디고 서 있었다. 왕에 대한 충성심은 변할 수 없다는 충절은 그의 짙은 눈썹에 서려 있었다. 그의 눈은 울고 있었는데, 목숨을 부지하고자 적의 편으로 돌아서서 자신에게 칼을 겨눈 옛 동료들에 대한 서글픔이었다. 그러면서도 굳게 닫은 입술엔 옅은 미소가 스며있었다. 류정식은 그 미소의 의미를 궁금해 하며, 이 사내에 대한 이야기를 더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멸망한 백제의 그저 작은 성의 성주였을 뿐이었다. 이렇다 할 기록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다. 류정식은 그렇다면 이 사내의 이야기를 짓자, 그의 이야기를 쓰다 보면 언젠가 그가 나에게 말을 걸 것이고, 그렇다면 그때 가서 그의 미소에 담긴 이야기를 그에게 직접 물어보자 생각했다. '백제 지수신.' 이렇게 첫 글자를 쓰자마자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냈다. 백제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였는지, 또 그 백성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런 백제를 지키기 위해 일으킨 백제부흥운동이 얼마나 숭고한 것이었는지, 죽음을 불사하고 마지막까지 싸운 싸움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는지. 그리고 그토록 사랑한 연인 율을 얼마나 보고 싶은지…. 그의 이야기를 밤새 듣다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류정식은 위대하고 아름다웠던 백제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숭고했던 백제의 마지막 항쟁, ‘백제부흥운동’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마지막을 끝까지 지켰던 백제의 마지막 영웅 지수신을 세상에 소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020년 7월. 류정식은 그렇게 10년 만에 완성한 첫 소설 『백제 지수신』과 함께 문학의 광장에 들어섰다. [작가의 말]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다. 나는 ‘해동증자’라고 칭송받는 동아시아의 위대한 군주였던 백제 의자왕이 왜 한순간에 황음을 일삼은 방탕한 군주의 상을 갖게 되었는지, 백제를 마지막으로 지킨 무장은 계백밖에 없었는지, 낙화암의 삼천 궁녀는 사실이었는지 이런 의문을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러한 의문을 버릴 수 없어서 어느 날 작심하고 『삼국사기』와 『조선상고사』 등의 문헌을 살폈다. 그런데 생각 밖의 인물이 나를 사로잡았다. 계백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지만 백제부흥군의 주역인 임존성의 성주 지수신이다. 하지만 지수신이란 무장은 『삼국사기』와 『조선상고사』, 그리고 남효은의 『추강집』 중 ‘부여회고’와 안정복의 『동사강목』에서 단편적인 내용만 확인 할 수 있어서 그의 성격과 행적을 조명하기 어려웠다. 결국 생각 끝에 백제멸망과 백제부흥운동의 과정을 되짚으며 그의 행적을 소설을 통해 조명하고자 했다. 백제부흥운동은 의자왕이 당에 항복한 660년부터 임존성이 함락된 663년까지 백제 땅 곳곳에서 벌어진 지수신 등 백제의 무장과 백제유민이 함께한 저항 운동이었다. 백제부흥운동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삼국시대 나당군에 나라를 잃은 백제유민의 독립운동이었다. 1,300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을 리 없고, 역사 기록도 많지 않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함에도 백제부흥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로 우리 민족은 국가와 민족의 존망 앞에서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백제멸망 시 절체절명의 상황은 일제강점기와 다를 바 없으니 백제무장들과 유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신라사관을 바탕으로 서술하였기에 백제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가 많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백제멸망은 삼국통일이라는 김춘추의 원대한 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의자왕에게 당한 신라왕족(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의 복수가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당나라 또한 동아시아 패권을 다툰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참전했다. 백제부흥군의 대표적인 무장으로 복신과 두량윤성의 정무. 승려 도침. 풍달군장 흑치상지 등이 있다. 이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구마노리성의 여자진 등도 거병의 깃발을 들었다. 그리고 임존성주 지수신은 일제강점기의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의사처럼 백제부흥운동의 정점을 찍었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고 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백제의 마지막 영웅 지수신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떠오른 말이다. 역사는 가정할 수 없는 것인데 소설은 그야말로 가정의 산물이다. 특히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되는 장르인데, 지수신에게는 ‘역사적 사실’이 충분하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의자왕의 딸 ‘율’을 등장시키기로 했다. 소설에서 가공인물인 율을 등장시킨 이유는 분명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임존성이 함락한 직후 지수신이 처자를 버리고 고구려로 도망가는(遲受信委妻子奔高句麗)부분이 나온다. 나는 임존성을 끝까지 지킨 무장이 처자를 버리고 도망간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 생각했다. 『삼국사기』가 백제가 멸망한 지 5세기가 지난 뒤(1145년)에 나왔고, 지수신이 신라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패자에 대한 기록이 그렇게 남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율을 조선시대의 정적인 여성상이 아닌 기개 넘치고 자유분방한 백제의 여인상으로 설정해, 이 소설의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지수신과 함께 백제부흥운동을 이끌어가길 바랐다. 여기에 부흥운동을 하다가 배신의 길로 들어선 흑치상지를 율과 연관시켜 소설의 스토리를 구성했다. 백제멸망과 백제부흥운동을 개연성이 있는 소설로 구성하려다보니 고증 없이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일념 하에 고심을 거듭하며 10년 동안 구상과 퇴고를 반복했다. 아쉬움이 남는 다면 백제부흥운동에 참여한 백제의 무장과 유민들의 면면을 잘 표현하지 못해, 그분들에게 누가 될까하는 점이니 독자 여러분이 적절한 판단을 바란다. 2020년 정월에 충정로 서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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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소설로 재조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을 가지는 일인지 써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것도 변변한 자료조차 없는 역사인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일흔의 나이에 첫 소설로 쉽지 않은 선택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대를 웃도는 필력으로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솜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백제부흥운동의 성공에 있어 걸림돌이 되었던 인간사의 오랜 고통인 질투와 배신, 음모가 각 캐릭터 속에서 설득력을 얻어 소설이 역사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윤후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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