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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전집』을 발간하며 … 11
● 거짓자유서(僞自由書) 서문 … 27 1933년 싸움 구경 … 32 도망에 대한 변호 … 35 사실 숭상 … 38 전기의 장단점 … 41 항공구국의 세 가지 소원 … 44 두 가지 불통 … 47 [이 글로 인해 일어난 통론] ‘가장 잘 통하는’ 문예(왕핑링) … 49 [‘통’에 관한 논의에서 보이는 ‘통’의 할인] 관화일 따름 … 52 저주 … 55 전략 관계 … 57 [비고] 멋진 글을 다함께 감상하다(저우징차이) … 59 쇼에 대한 송가 … 63 [또 대주필의 분노를 사다] 버나드 쇼는 여하튼 비범하다(『다완바오』 사설) … 65 [역시나 대주필은 존경스럽지 않다] 앞글에 대한 주석(러원) … 68 전쟁에 대한 기도???독서 심득 … 71 풍자에서 유머로 … 74 유머에서 엄숙으로 … 77 왕도시화 … 80 억울함을 호소하다 … 84 곡의 해방 … 89 문학의 에누리 … 93 마주보기경 … 97 ‘광명이 도래하면……’ … 101 울음막이 문학 … 105 [비고] 고추구국 제창(왕츠) … 108 [한사코 고추로 울음을 막으려 하다] 함부로 사람을 씹지 말라(왕츠) … 109 [하지만 아무래도 아니다] 이를 일러 점입가경이라 한다 … 111 ‘사람의 말’ … 113 영혼을 파는 비결 … 116 문인무문 … 119 [비고] 악취미(뤄구) … 121 [서늘한 말?] 제4종인(저우무자이) … 122 [바람 쐬기] 두 가지 오해와 한 가지 차이점 … 124 가장 예술적인 국가 … 127 현대사 … 131 추배도 … 134 「사람을 잘못 죽였다」에 대한 이의 … 138 [비고] 사람을 잘못 죽였다(차오쥐런) … 140 중국인의 목숨 자리 … 144 안과 밖 … 147 바닥까지 드러내기 … 150 [보내온 편지] 자간 선생님께(주슈샤) … 152 [답신] 슈샤 선생께 … 154 ‘이이제이’ … 157 [펄쩍 뛰다] ‘이화제화’(리자쭤) … 160 [술렁거림] 허물이 있더라도 고칠 수 있다(푸훙랴오) … 162 [딱 몇 마디만] 부연 설명 … 164 언론 자유의 한계 … 167 대관원의 인재 … 171 글과 화제 … 175 신약 … 179 ‘다난한 달’ … 182 무책임한 탱크 … 185 성쉬안화이와 이치에 맞는 억압 … 188 왕의 교화 … 192 하늘과 땅 … 196 유보 … 200 유보에 관해 다시 말하다 … 204 ‘유명무실’에 대한 반박 … 207 깊은 이해를 추구하지 않는다 … 210 후기 … 213 ● 풍월이야기(准風月談) 서문 … 261 1933년 밤의 송가 … 265 밀치기 … 268 얼처우 예술 … 271 우연히 쓰다 … 274 박쥐를 말하다 … 277 ‘차오바쯔’ … 281 ‘바이샹 밥을 먹다’ … 284 중·독의 국수보존 우열론 … 286 중·독의 분서 이동론(異同論) … 289 ‘타민’에 대한 나의 견해 … 293 서문의 해방 … 297 불을 훔친 또 다른 사람 … 301 지식과잉 … 303 시와 예언 … 306 ‘밀치기’의 여담 … 310 묵은 장부 조사 … 313 신새벽의 만필 … 317 중국인의 기발한 생각 … 322 호언의 에누리 … 325 발차기 … 329 ‘중국 문단에 대한 비관’ … 332 가을밤의 산보 … 336 ‘웃돈 쓱싹하기’ … 338 우리는 어떻게 아동을 교육했는가? … 341 번역을 위한 변호 … 344 기어가기와 부딪히기 … 348 각종 기부금족 … 351 사고전서 진본 … 354 초가을 잡기 … 357 식객법 폭로 … 360 등용술 첨언 … 363 귀머거리에서 벙어리로 … 367 초가을 잡기(2) … 371 남성의 진화 … 375 동의와 설명 … 379 문인 침상의 가을 꿈 … 383 영화의 교훈 … 387 번역에 관하여(상) … 391 번역에 관하여(하) … 395 초가을 잡기(3) … 399 예 … 402 인상 물어보기 … 405 교회밥을 먹다 … 408 차 마시기 … 412 사용금지와 자체제작 … 415 마술구경 … 418 쌍십절 회고 - 민국 22년에 19년 가을을 돌이켜 보다 … 420 33년에 느낀 과거에 대한 그리움???1933년에 광서 말년을 기억하다 … 427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상) … 431 [비고] 『장자』와 『문선』(스저춘) … 434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하) … 438 황화 … 442 돌진하기 … 445 ‘골계’의 예와 설명 … 449 외국에도 있다 … 453 헛방 … 457 [비고] 추천인의 입장 -『장자』와 『문선』 논쟁(스저춘) … 461 「헛방」의 오류 수정 … 464 포위망 뚫기(스저춘) … 465 ‘함께 보냄’에 대한 답변 … 469 [비고] 리례원 선생께 보내는 편지???펑즈위 선생께도 함께 보냄(스저춘) … 471 중국 문장과 중국인 … 476 야수 훈련법 … 479 되새김질 … 482 후덕함으로 돌아가다 … 485 난득호도 … 489 고서에서 살아 있는 어휘 찾기 … 493 문호를 ‘협정하다’ … 496 청년과 아버지 … 499 후기 … 503 ● 꽃테문학(花邊文學) 서언 … 549 1934년 미래의 영광 … 555 여자가 거짓말을 더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558 비평가의 비평가 … 562 함부로 욕하다 … 565 ‘경파’와 ‘해파’ … 568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 … 572 「이러한 광저우」 독후감 … 577 설 … 580 운명 … 583 크고 작은 사기 … 587 ‘어린아이 불가’ … 590 옛사람은 결코 순박하지 않았다 … 593 법회와 가극 … 598 양복의 몰락 … 602 친구 … 606 청명절 … 608 소품문의 생기 … 614 칼의 ‘스타일’ … 618 신종 가명법 … 621 책 몇 권 읽기 … 624 한번 생각하고 행동하자 … 628 나에 견주어 남을 헤아리다 … 632 문득 드는 생각 … 635 친리자이 부인 일을 논하다 … 639 ‘……’ ‘??????’론 보충 … 643 누가 몰락 중인가? … 647 거꾸로 매달기 … 650 [부록] ‘꽃테문학’론(린모) … 652 완구 … 658 군것질 … 661 이 생(生) 혹은 저 생(生) … 664 때를 만났다 … 666 중역을 논함 … 669 중역을 다시 논함 … 672 ‘철저’의 진면목 … 676 매미의 세계 … 679 결산 … 682 수성 … 686 농담은 그저 농담일 뿐(상) … 689 [부록] 원궁즈가 캉바이두에게 보낸 편지 … 692 [부록] 캉바이두가 원궁즈에게 보낸 답신 … 693 농담은 농담일 뿐(하) … 698 글쓰기 … 702 독서 잡기 … 705 독서 잡기(2) … 709 시대를 앞서 가는 것과 복고 … 712 안빈낙도법 … 717 기이하다 … 721 기이하다(2) … 725 영신(迎神)과 사람 물어뜯기 … 728 독서 잡기(3) … 732 ‘대설이 분분하게 날리다’ … 735 한자와 라틴화 … 739 ‘셰익스피어’ … 744 상인의 비평 … 748 중추절의 두 가지 소원 … 751 시험장의 세 가지 추태 … 756 또 ‘셰익스피어’다 … 759 구두점 찍기의 어려움 … 763 기이하다(3) … 767 메이란팡과 다른 사람들(상) … 771 메이란팡과 다른 사람들(하) … 775 욕해서 죽이기와 치켜세워 죽이기 … 779 독서 금기 … 783 『거짓자유서』에 대하여 … 789 『풍월이야기』에 대하여 … 792 『꽃테문학』에 대하여 … 795 |
魯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루쉰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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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전집의 제7권으로 1933년 1~5월 사이의 잡문 43편이 수록된 『거짓자유서』와 1933년 6~11월 사이의 잡문 64편이 수록된 『풍월이야기』, 1934년 1~11월 사이의 잡문 61편이 수록된 『꽃테문학』을 함께 묶었다.
대륙을 뒤흔든 혁명인의 삶, ‘루쉰전집’ 발간! 흔히 중국 현대문학은 루쉰(魯迅, 1881~1936)에서 시작해서 루쉰으로 끝난다고 한다. 중국 현대문학을 연 첫 작품(「광인일기」)을 루쉰이 창작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문체와 사상, 그가 관련한 굵직한 현대 사건이 지금도 여전히 문제적이기 때문이다. 그 없이는 중국의 오사운동을 논할 수 없고, 중국 현대혁명사와 문학사, 학술사, 심지어는 미술사까지도 논할 수 없으며, 최근의 저명 학자들(예컨대 첸리췬錢理群과 왕후이汪暉)은 그를 통해 오늘날의 중국을 사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중국 고문(문언문)에 정통했지만 구어체(백화문)를 제창하여 문학혁명을 주도했고, 서양의 근대지식을 선구적으로 학습했지만 중국의 현실과 인민의 입장에서 발언하고 행동했으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면서도 문학청년을 지도하고 판화운동을 전개하며 중국의 미래를 주도한 루쉰. 이제 그의 모든 글을 한국어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펴내는 한국어판 『루쉰전집』은 중국 런민문학출판사(人民文學出版社)에서 펴낸 1981년본과 2005년본을 바탕으로 번역, 모두 20권으로 구성하고, 지금까지의 국내외 연구성과와 주석을 참조하여 각 옮긴이들이 새롭게 주석을 정리하였다. 특히 기존에 많이 소개된 소설작품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소개되지 않은 수많은 잡문(주로 신문·잡지 등에 발표한 짧은 글을 말함), 서신, 일기를 수록하고 있어 루쉰 글의 정본을 세우게 되었다. 루쉰은 중국 근대의 산증인이기도 하지만 이미 인류의 정신유산, 인류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땅에서 끊임없이 전투를 펼쳐 온 혁명인의 삶을 산 그는 그 자체로 현대 독자가 읽어야 할 중요한 텍스트이다. 민족 간, 좌우 간 첨예한 대립상황에서 억압받는 자가 다시 서는 세계를 꿈꾸며 한평생 투쟁했던 그의 삶이 오롯이 이 『전집』 속에 녹아들어 있다. 제7권_권력에 맞서는 투쟁과 논쟁 잡문 43편이 수록된 『거짓자유서』, 64편이 수록된 『풍월이야기』, 61편이 수록된 『꽃테문학』으로 구성된 제7권은 1933~34년 사이 루쉰 만년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당시는 일본의 중국 침략이 거세져 장성의 관문 산하이관(山海關)이 함락되고, 일본이 리턴보고서를 무시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하여 정세가 매우 급박한 때였다. 그러나 국민당 정권은 나라 밖에서는 나라를 팔아먹고 투항하며 나라 안에서는 민중들을 탄압하는 기만적인 정책을 펴 루쉰을 분노케 했다. 이 시기 루쉰은 매달 8~9편의 단평을 『자유담』(신문 『선바오』의 부간) 등에 게재하며 권력과 그에 아첨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문단의 행태와 민중이 억압받는 세태를 풍자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거짓자유’라는 자유의 아이러니 1933년 루쉰이 『자유담』에 연재한 글들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벌어진 중국 내 여러 정치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데, 그 상황은 한마디로 문집 제목과도 같은 ‘거짓자유’라는 아이러니이다. 일본군의 산하이관 공격(1월 3일)에 무저항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체포·살해하고 반공전투에 올인하는 아이러니, 함락 와중에 베이핑(베이징)의 고대유물은 상하이로 옮기지만 대학생들의 피난은 금지하는 아이러니, 외세의 조종으로 중국인이 중국인을 죽이게 되는 이화제화(以華制華)의 아이러니, 이는 곧 『자유담』에 글을 쓰지만 검열과 삭제로 결코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루쉰의 상황과도 일치하는 자유의 아이러니이다. 중국은 침략자 외세와 권력자 국민당 사이에서 민중의 자유는 철저히 억압당하는 상황이고(“폭격하는 사람은 다르지만 폭격을 당하는 사람은 똑같다.”), ‘광명’이 잠시 비출 때 자유를 연출하지만 이내 ‘광명이 지나가면 어둠이 다시 오는’ 거짓자유의 상황임을 루쉰은 고발한다. ‘풍월’을 말하지 않는 풍월이야기 1933년 5월이 되면 『자유담』에 대한 국민당의 탄압도 거세져 편집인은 “앞으로는 풍월을 더 말하고 불평을 덜 드러내기를 호소한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당시 국민당이 가장 적절한 글로 간주한 원앙호접(鴛鴦胡蝶)류의 연애담이나 풍류에 중점을 두고 루쉰이 쓰는 것과 같은 시사 비판적 글은 자제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루쉰은 필명을 계속 바꿔 가며 풍월을 말하는 것과 비슷한, 즉 풍월에 준하는 이야기인 척하며 글을 발표한다. 박쥐를 비유로 들며 논적을 공격하는 것(「박쥐를 말하다」)처럼 우화를 활용하기도 하고, 독일의 상황을 중국과 비교하며 양국가를 모두 비판하기도 하며(286~292쪽), 지식의 과잉으로 인해 세계 경제공황과 같은 상황이 중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교묘히 비꼬기도 한다(「지식과잉」). 정치적 현안에 관한 평이 『거짓자유서』에 비해 줄어든 듯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세태 비평으로 비판의 칼을 휘두름에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치기’와 ‘발차기’, ‘속임수’와 ‘뺑소니’로 민중이 죽거나 다치는 세태, 경멸과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의 종노릇을 하는 타민(墮民)이 자유가 아닌 억압을 욕망하는 세태 등을 풍자한다. 이러한 민중들에 대한 풍자는 루쉰 스스로 “분명 사람들로 하여금 구역질나게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그것의 중요성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대중의 영혼’이 지금 나의 잡문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풍월이야기』, 「후기」)라고 말한 것처럼 그 속에 숭고한 인간애를 깔고 있는 것이다. 『자유담』에 기고를 하며 “적막한 이들을 위하여 소리치기 위해서”(「서문」)라고 했듯, 루쉰은 소외된 자들의 고달픈 삶을 드러내 보이며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수많은 적들과 대결한 전투의 기록 ‘거짓자유서’, ‘풍월이야기’, ‘꽃테문학’이라는 제목은 언뜻 수필집을 연상케 하지만, 이 잡문집들은 수많은 적들과 대결한 전투의 기록을 보여 준다. 혁명문학의 길을 가다 전향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한 제3종인, 사리사욕을 위해 자비로 출판하고 스스로 호평하며 대표문인 지위에 오른 부패한 문인, 좌익인사를 색출하고 살해하는 데 혈안이 된 국민당 정권, 이 정권에 기댄 문인·학자·언론인, 영화사·출판사 등에 백색테러를 자행한 우익 깡패 등 수많은 적들과 싸운 기록이 이 문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생 동안 140여 개의 필명을 사용한 루쉰은 이 글들을 발표한 1933~34년 동안에만 60여 개의 필명을 사용해 적을 따돌렸다. 열네 편의 글에서 일부를 삭제당해 골기(骨氣)가 사라진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여덟 편의 글은 아예 게재되지도 못했지만, 발표를 향한 집념을 멈추지 않았다. 언론 탄압이 거세져 『자유담』의 편집인이 사직당하고 『선바오』의 사장이 암살당하는 위기 속에서도 작법을 고치고 다른 사람에게 베끼게 하는 방법까지 써서 지금 절박하게 요구되는 사안을 발언했다. 어떠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는 자유인 루쉰. 『역문』(譯文)의 정간에 화가 난 젊은 작가에게 그는 나직하지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이건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네. 그런데, 우린 계속 싸워 나가야 할 것인가? 물론일세. 계속 싸워 나가야지! 상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말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