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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내 인생 초록 물 들이면서 식민지 시대의 소년으로 해방 전후사의 [재], [재] 인식 6.5 전란과 문학적 첫사랑 최인희.황금찬 시인과의 만남 새로운 길, 충격의 "D.P.E"점 데뷔작, "두고 온 산하"와 00만 환의 상금 아무도 시나리오를 쓰라고 하지 않았다 마침내 끼의 주머니가 터지고 영화를 만들려면 내 검열을 받아라 "청춘교실", 신성일.엄앵란의 커플을 만들고 "갯마을", 문예영화의 고전이 되다 눈물의 강이 된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디오드라마의 시대가 열리면서 "팔도강산" 좋을시고 하이 소사이어티의 언저리 역사가 거울임을 모르는 군부독재 선배들의 과실이 빚어낸 혼돈 속에서 한일 첫 합작드라마 "여인들의 타국" 심수관, 조선 도공 400년의 한 풍신수길의 배때기를 갈라 소금을 채운 사연 젊은이들 가슴에 국가정체성을 심어라 네 평짜리 서당, 태풍을 부르다 "사토 페이퍼"를 읽었으면 이동인을 살려야 한다 총성이 울리면서 기회도 함께 왔다 평생의 집념이 현실의 일로 아름답고나, 노을진 하늘 통하면 뚫린다는 이치 그대로 꺼지지 않는 불꽃 인연은 순환의 고리로 다가온다 역사가 지식이다 새로운 항로에 돛을 올리고 화보 |
辛奉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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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대사80년, 멀고 험했어도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
샘에서 솟아난 한 점 물방울이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에 이르면 넘실넘실 춤을 출 수밖에 없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를 것이없다. 나는 열세 살 까까머리 소년으로 8·15의 감격을 맞았고, 스무 살에 6·25의 참변을 경험했으며, 스물일곱에 5·16을 겪으면서문필의 길로 들어섰다. 그것은 격동의 세월을 헤쳐가야 하는 노정이기도 하였다. 20대는 시인이 되려는 꿈을 안고 살았고, 30대는 극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를 만큼 우쭐거렸다. 40대로 접어들고서야 TV드라마를 쓰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가 싶었는데, 역사드라마에 눈 뜨면서 50대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의 30년은 그야말로 《역사를 관장하는 신》의 품안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품위있게 걸었다고 자부한다. 역사를 바로 아는 방법이 행간(行間)을 읽어내는 일이었기에 나는 기존의 역사학자들에게는 단 한 차례도 자문을 청한 일도 없었거니와 또 그분들의 도움을 받은 일도없는 독불장군으로 살았다. 내가 가야 했던 길은 남의 뒤를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전인미답의 길을 열어가는 고되고 험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어진 결론은 단 한 가지, 내가 쓰는 작품보다 내 몸뚱이가 더훌륭한 작품이 되어야 하겠다는 결단을 실천해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가 어려운 험난한 노정이어서 내게로, 혹은 가솔들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손실을 감내하는 일이 더힘들고 고달팠다. 역사를 가까이하였던 인연으로 내 지식의 뿌리가 역사의 토양에서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 또 그 지식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잔가지들까지 모두가 내 지식의 근원임이 확실하다면 역사가 주는 교훈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몸으로 익히면서 살아온 80년 세월이다. 2009년 4월 2일. 나는 폐암(肺癌) 진단을 받았다. 아무도 믿지 않을 것으로 알지만, 그 순간의 나는 너무도 담담하고 평온하였다. 단순히 ‘아, 이렇게 가는 수도 있구나…’하는 짧은 순간의 회한은 내 삶에 대한 후회 없음에 실려진 진심일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자부하고 있다. 물론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글이 내 생애의 마지막 저술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는 않다. 다만 나의화려하면서도 불과도 같았던 삶의 벌판을 진솔하게 뒤돌아보는 것이 가솔들이나 후학들에게 얼마간의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붓을 들었음을 고백한다. _ 저자의 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