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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_나를 안아주세요
1부_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지랄맞은 18번의 이사 유랑기 핑크 바가지와 생리 파티 가성비로 지킨 가장의 품위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 완벽한 썅년도 효녀도 아니라서 부모와 자식의 기울기가 바뀔 때 취향도 가난을 탑니다 돈 밝히는 예술가는 천박한 걸까 2부_제대로 울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안녕, 나의 작은 아빠 아빠는 못생겼다 당신의 죄책감에 기생하며 엄마어도 통역이 되나요? 작정하고 울고 싶은 밤 오늘도 최선을 다해 죽을 준비를 한다 유언장을 갱신하는 마음으로 상처받을 바에는 외로운 것이 낫겠지만 이 서비스는 모멸감 포함가인가요? 고소장 잘 썼다고 칭찬받았다 3부_인생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첫 키스를 만화로 배웠어요 내가 너를 갉아먹었구나 나의 퇴사 연대기 잊고 싶은 눈동자 애써 혼자가 될 용기 달곰씁쓸한 돈지랄의 추억 저 쌍꺼풀 안 했거든요? 특명! 꼰대 예방 교육 추억팔이만 할 거면 싸이월드를 켰지 타인의 슬픔을 함부로 동정하지 말 것 직업 소개 말고 자기소개요 15,200원짜리 자존심 에필로그_서툴러서 그래요 |
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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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두렵다고 평생 외면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품속으로 달려든 미움을 안아주기로 했다. 위로받고 싶어서, 이해받고 싶어서, 다정한 숨결이 그리워서, 자존심과 품위 따위는 던져버리고 달려와 엉엉 우는 나를 품어주기로 했다. 초록이 지면 단풍이 피듯 미움도 슬픔도 자연스레 물드는 과정일 테니까. 나는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다.
--- p.7, 「프롤로그_나를 안아주세요」 중에서 그땐 그랬다. 맞벌이 부모님 대신 「달의 요정 세일러문」, 「사랑의 천사 웨딩피치」, 「지구용사 선가드」와 함께 저녁을 보냈다. 때론 책상 위에 이불을 덮어 텐트를 만들고 그 안에 셋이 꾸역꾸역 들어가 공작질을 했다. 그때의 우린 너무 어려서 넉넉하다거나 부족하다는 개념도 없이 그저 꽁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면 충분했다. 아니, 그랬다고, '나만’ 생각했었다. --- p.15, 「지랄맞은 18번의 이사 유랑기」 중에서 식구(食口)의 사전적 정의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단어의 위대함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처음엔 그저 효도 차원에서 선심 쓰듯 냈던 시간이 욕심부려도 나무랄 것 없는 선택이었음에 감사하다. 끼니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시간을 나눈다는 뜻이니까. 기꺼이 추억 한 편을 내준다는 뜻이니까. --- p.32, 「가성비로 지킨 가장의 품위」 중에서 언젠가 아빠가, 「부모와 자식의 기울기’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부모가 이끌던 삶이 어느 순간 자식이 이끄는 삶으로 바뀔 때가 오는데 그때가 요즘인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키오스크가 낯선 그들을 대신해 주문은 자식의 몫이었고, 기차와 지하철이 혼재된 승강장에서 길을 찾는 것도 자식의 몫이었다. 부모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식 눈치 보는 중년이 되었다. --- p.54, 「부모와 자식의 기울기가 바뀔 때」 중에서 애석하게도, 나는 할머니와 각별한 추억이 없었다. 그래서 이기적이게도, 나는 할머니의 죽음에 빗대어 아빠와 나의 미래를 그렸다. 아빠의 마지막에 나도 저런 모습일까. 죽음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으니 아무리 준비된 이별이라도 결국 죄송한 마음만 품게 될까. “납골당은 죽은 자를 위하는 공간이 아니라 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을 덜어주는 곳”이라던 아빠의 말을 그때에는 이해하게 될까. --- p.74, 「안녕, 나의 작은 아빠」 중에서 나는, 「왜’를 알려주는 너의 다정함에 부끄러웠다. 내게 상처받았으면서도 우울에 옴짝달싹 못 하는 내가 가여워 기꺼이 먼저 손을 내민 너의 배려에 부끄러웠다. 어떻게 그 감정들을 이겨내고 있는지 번호까지 붙여가며 설명하는 너의 상냥함에 부끄러웠다. 서로가 예민한 것뿐이니 시간을 두면 나아질 거라 여긴 너의 믿음에 부끄러웠다. 그래서 우울을 경험하고 나서야 너를 떠올린 내가,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 p.165, 「내가 너를 갉아먹었구나」 중에서 시간도 돈도 넉넉히 잡고 떠난 유럽 여행. 오래 기다려온 만큼 충분히 설레고 신나는 시간들이었으나 그게 다였다. 지랄 중의 상지랄은 돈지랄일지니 그렇게 써대는데 안 행복할 리 있나. 나름대로 품격 있는 식사를 하고, 끼니마다 술을 곁들이고, 자고 싶을 때까지 자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바닷바람 맞으며 멍하게 앉아 있고. 이런 삶이라면 그곳이 유럽이든 한국이든 행복할 게 분명했다. --- p.194, 「달곰씁쓸한 돈지랄의 추억」 중에서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삶을 100퍼센트 실천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수행자의 길을 나서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완벽하지 않고 성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아빠와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할 것이고, 깊은 우울에 빠졌다가도 스스로 헤어 나올 것이며, 사람들과 둑을 쌓고 살다가도 허물 준비를 할 것이다. --- p.246, 「에필로그_서툴러서 그래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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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는 과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다음웹툰 [가슴도 리콜이 되나요], [오늘도 꽐랄라라] 에세이스트 ‘마실’ 작가의 ‘어른 됨을 향한 성장통’ 에세이 말괄량이 삐삐는 어른이 되어서도 말괄량이일 수 있을까?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는 감정에 인색한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왜 지금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을 철부지라 부를까? 슬프면 슬퍼하고, 아프면 아파하는 어른은 어른이 아닐까? 다음웹툰 [가슴도 리콜이 되나요], [오늘도 꽐랄라라]로 사랑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청춘 연애 스토리를 그려온 웹툰 작가 ‘아실’이 ‘마실’이라는 에세이스트 이름으로 어른이 되기까지 겪은 성장통을 내밀하게 써내려간 에세이를 펴냈다. 마실의 첫 에세이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에 엮인 30편의 글을 읽다 보면 지나간 일들이 다 괜찮다고 애써 외면하기보다 자기의 아픔을 제대로 돌아보고 울고 싶을 땐 제대로 우는 ‘요즘 어른’을 만날 수 있다. 어른스러워지려 너무 애쓰지 않음으로써 어른에 더 가까워질 수 있고, 슬픔을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나를 슬프게 놔두지 않겠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나는 어른스러운 인간인가’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듯 따뜻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부모를 원망하던 아이는 어떻게 어른이 되어갈까? 원망, 미움, 죄책감… 시간이 흐르면 그조차도 그리워질 것들 우리는 서투른 채로 어른이 되어간다 이 책은 풍요로운 오늘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의 어린 시절로 독자들을 소환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은 가난해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러나 사춘기에 접어들며 자신의 선택을 옥죄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부모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없었고, 그런 부모를 만났기 때문에 미래조차 가난해지는 10대들이 그러하듯. 가난으로 인한 18번의 이사, 카레 냄비 안에 익사한 바퀴벌레 이야기, 드라마 속 중산층 모습을 멋쩍게 흉내 내는 가족의 외식 풍경, 가장의 무게를 지게 된 큰딸이 작아진 아버지를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 등 가난 속에서 가족을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일들, 그리고 그랬던 자신과 화해하며 비로소 가족 속에서 형성된 자아를 발견하는 이야기는 아주 가깝지만 그래서 벗어나고픈 부모와 나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꺼이꺼이 오열하는 내게 아빠는 지금도 이렇게 울면서 정말 잘 헤쳐나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눈물이 많은 거냐고 징징댔다. 아빠는 엄마일 리는 없다고 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점점 아빠를 닮아 가고 있었다. 아빠와 나는 왜 싸웠을까. 뭐가 그렇게 그를 섭섭하게 했을까. (…) 그는 당신도 육십은 처음이라, 아빠가 처음이라, 뭐든 다 서툴다고 했다. 우느라 정신 못 차리는 내게 아빠는 뭘 하든 덜 울고 덜 아팠으면 좋겠다고 달랬다. 이내 손님을 태워야 한다며 통화를 끊으려 했다. 나는 잽싸게 심호흡을 했다. 이번엔 들숨날숨이 섞이지 않도록, 그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단전을 쓸어 담은 후 외쳤다. “아빠, 사랑해요.” (_「에필로그_서툴러서 그래요」 중에서) “서럽게 울어도 어른이다” 감정을 감추려 애써야만 성숙해지는 걸까 어른스러우려 애쓰지 않는 어른 됨을 말하다 들장미소녀 캔디처럼 자라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사회’라는 낯선 세계에 입문해서도 좌충우돌은 끝나지 않았다. 5년도 채 되지 않는 직장 생활 중 3번의 이직과 전직을 거쳐야 했다. “왜 일을 이따위로 하냐”라는 고객의 컴플레인에 눈물을 터뜨렸고, 회사가 사원인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길 때에는 분통을 터뜨리며 과감하게 퇴사를 했고, 성차별을 당한 회식 다음날에는 무단결근을 강행했다. 모든 결정에 이유가 있었지만, “사회생활 못하는 유전자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라며 부모를 닮은 자신을 자책하는 시간도 오래 보냈다. 그래도 작가는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낸다. 기어코 발가벗은 나를 마주했지만 품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속은 곪아가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기는 사람이었다. 약해 보이기 싫어서 애써 괜찮은 척 묻어두는 사람이었다. 분명 어린 시절 꿈꾸던 어른의 모습은 아니었다. (…) 그런데 며칠을 열병처럼 앓다가도 일요일이면 번쩍 정신을 차렸다. 금요 웹툰 마감을 맞추려면 늦어도 일요일에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감정이고 뭐고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_「프롤로그_나를 안아주세요」 중에서) 작가는 아픔을 외면하는 건 어린 시절 꿈꾸던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감정에 매몰되어 칩거하기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정신을 차리게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감정을 받아들이기까지 제법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작가는 아직 초연해지지는 못했지만 자기와 화해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과거를 부정하지 않고 현재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작가의 메시지는 어른 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