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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한편 3호 환상 [2020]
편집부 편
민음사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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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3호를 펴내며 환상과 함께 살아남기

김영준 환상을 팝니다
맹미선 포스트 코로나라는 상상
김공회 기본소득, 이상 또는 공상
이병현 「조커」, 억지웃음의 이미지
김유진 판타지와 함께 살아남기
박지원 잔혹한 낙관에서 깨어나기
임보라 어두운 사건들을 통과하기
윤영광 가상과 거짓의 철학
계은진 북한 출신인 게 뭐 어때서?
강혜민 희망의 물리적 토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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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226g | 127*182*12mm
ISBN13
9788937491412

책 속으로

상업성이 없다는 것은 환상문학의 가장 큰 비밀의 하나다. 왜 상업성이 없을까? 앞에서 ‘문학사적으로 소멸한 장르’라는 말을 썼는데, 그 실질적인 의미는 ‘무섭지 않다’이다. 그것은 독자들의 독후감에서 쉽게 확인된다. 왜 무섭지 않을까? 100년, 200년 전 독자에게 통하던 기법이 지금 효력을 발휘할 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에서 사용된 클리셰들, 예를 들어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는 지금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영화 등을 통해서 훤히 알고 있을 정도이다. 환상문학이 고전 총서류에 포함되면 단행본으로 냈을 때보다 더 팔리는 수수께끼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19세기 유령 이야기가 상업적 자립성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환상문학 기획자 앞에 놓인 판매라는 과제는 이중적이다. 출간된 책의 판매를 궁리하기에 앞서서 출간 자체가 가능해야 한다. 회사가 자신의 기획을 사 줘야 하는 것이다.
--- 김영준, 「환상을 팝니다」

저마다 다르게 그려지는 미래 예측 속에서 신종 바이러스, 생태 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 비대면 기술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조연이 되기도 한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상상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한갓 환영에 불과할 수도, 변화를 꾀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우리들이 ‘인류가, 국가가,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할 때’를 강조하는 거대 담론에 사로잡히거나 무리하여 응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1차 대유행을 겪은 현장 의료진들은 현 방역 체계가 겨우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고 있다고 입 모아 말한다. 확진자 수가 병상 수를 넘어서는 순간, 그 뒤로 펼쳐질 현실에서는 K-방역의 손길도, 비대면 기술의 혜택도 쉽게 발휘되기 어려울 것이다. --- 맹미선, 「포스트 코로나라는 상상」

‘안정적 삶의 보장’이라는 기본소득론의(그러나 기본소득론만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이념은 언제나 큰 울림을 냈다. 하지만 역사가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먼저 매번 산업 혁명 이후 대중의 삶의 안정성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생산관계와 사회관계 속에서 재구축되었다. 임노동이 보편화되었고, 노동자들이 단결해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여기에도 문제는 많았다. 직종이나 고용 형태 간에 격차가 벌어졌고, 실업 문제도 새롭게 대두했다. 하지만 이런 빈틈을 메워 준 건 기본소득이 아니라 국가였다. --- 김공회, 「기본소득, 공상 혹은 이상」

「조커」라는 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가라앉은 만큼, 지금이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적당한 때인 것 같다.
먼저 확실히 해 두고 싶은 점이 있다. 나는 「조커」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커」는 분명하게 소수자에 대한 문화적 착취를 벌이고 있다. 이는 이를테면 흑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혹은 여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여성주의적 분석 틀에 기반해 영화를 진단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여성주의적 문제 제기가 도리어 「조커」라는 영화에 헛된 깊이를 부여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나는 「조커」에 대한 앞선 논의들에 기반해, 어떻게 이 영화가 ‘깊이 없는 표면’을 드러내고 있는지에 대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낡은 질문이 검토될 것이다. 영화는 죽은 것인가, 살아 있는 것인가? --- 이병현, 「「조커」, 억지웃음의 이미지」

환상 세계인 나르니아에도 악이 존재하고 선악이 대결하지만, 이는 더 완전한 선과 궁극의 조화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다른 판타지 어린이문학 작품에서 소인들이 인간 사회를 비판하고, 어린 초인들이 나쁜 어른에 맞서고, 모험과 회귀를 오가는 건 모두 나르니아와 같은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희망의 도정으로 볼 수 있다. 안전, 신뢰, 평등, 존중 등 너무나 당연하고 소중하지만 실은 얼마간 잊거나 포기하고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방향성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일. 아마도 어른의 문학과 달리 어린이문학이 가장 구분되게 강조하는 지점일 것이다. --- 김유진, 「판타지와 함께 살아남기」

잔혹한 낙관주의는 “실현이 불가능하여 순전히 환상에 불과하거나, 혹은 너무나 가능하여 중독성이 있는” 대상을 향해 작동한다. 로또 당첨의 꿈은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로또는 일상의 위기와 곤란을 단번에 해결해 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현현을 약속한다. 천문학적인 당첨 확률은 로또를 더 중독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이는 불가능하기에 오히려 초월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불가능한 환상에 값을 지불함으로써 일상에서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온전한 기회의 평등’을 일시적으로 경험한다. 반면 후자는 철저히 실현 가능성에 기대는 환상으로, 교육의 꿈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낙관에 근거하고 있으며, 교육이 약속하는 미래는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환상 가운데 가장 현실적이다. 그러나 실현 가능하다는 느낌 때문에 교육은 오히려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곤 한다.
--- 박지원, 「잔혹한 낙관에서 깨어나기」

환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는 환상이라는 개념을 내부에서 경험을 확장하는 일종의 사유로 접근할 수 있다. 경험이란 직접 겪은 사건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는 환상문학이나 판타지 장르에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배경과 일어날 수 없는 사건들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이어서 혹독하고 그래서 비극적인 사건들을 마주함으로써 환상과 현실의 관계를 좀 더 실제적인 층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현실적 환상’이다.
--- 임보라, 「어두운 사건들을 통과하기」

비판되어야 할 것은 환상이나 가상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다. 혹은 진리의 관점에서 정립된 환상에 대한 환상,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데올로기다. 진리는 절대적으로 그 자체로 존립하고 정당화되며, 오류-환상-허구와 절연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믿음이 탈신비화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계몽은 가상과 오류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로부터의 해방이다.
이데올로기의 기만, 시청자와 구독자와 관객을 조종하는 매체와 광고의 기만, 온갖 가짜 뉴스들의 기만을 탄식할 때, 가장 깊은 문제는 세계의 거짓된 재현이 아니라 세계의 진실 혹은 진실로서의 세계 자체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된다. 우리가 현재 진실의 기준에서 거짓과 기만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그것의 생산에 적합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세계의 진실에 기반한다. --- 윤영광, 「가상과 거짓의 철학」

북한 출신 대학생들은 그들에게 떠안겨진 정체성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탈북민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북한 출신 대학생들은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과 정부 기관으로부터 ‘한민족’, ‘먼저 온 통일’로 인식되고, 시민 단체 교육프로그램에서는 ‘남북한 사회 통합의 리더’라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모두 스스로 요구한 적 없는 수식어다. 남한 방송에서 ‘엄친아’로 명명되었던 한 학생은 “본의 아니게 북한이나 탈북자나 북한 주민을 대표”하게 된 자신이 탈북민이라는 소수 집단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계속 행동을 검열했고, 그런 일이 부담스러워 방송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출신 대학생들이 꼭 “공부를 잘할 필요도,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남한이라는 사회에 자신을 맞춰 적응할 필요도 없”이, 여느 남한 출신 청년처럼 각자 자신의 다른 모습 그대로 남한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가장 정확한 (먼저 온) 통일”이라고 주장했다.
--- 계은진, 「북한 출신인 게 뭐 어때서?」

단신 기사도 쓸 줄 몰라 쩔쩔맸던 내가 그사이 편집장이 되었고, 《비마이너》에 가장 오래 남음으로서 무언가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축적된 역량은 《비마이너》가 지금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만들어 냈는데, 그것들을 해낼수록 나는 고갈됐다. 한정된 자원으로 무한히 멋진 성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고, 그것은 ‘개인을 갈아 넣음으로써’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쉽지 않은 길을 갈 것입니다. 하지만 가치로 남는다는 것은 인생을 걸어 볼 만한 일입니다.”
야학 홈페이지 고장쌤 인사말 마지막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문장이다. 종종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 부분만 들여다본다. “가치로 남는다는 것은 인생을 걸어 볼 만한 일입니다.” 이 말에 마음이 기울어서, 막막하고 무기력해질 때면 그 말을 지팡이 삼아 버틴다.

--- 강혜민, 「희망의 물리적 토대」 중에서

출판사 리뷰

광인 조커와 괴력의 삐삐에서
포스트 코로나, 기본소득까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열 편의 환상적인 인문학

‘환상에서 벗어나라’는 말에서처럼, 환상이란 흔히 실현 가능성 없는 헛된 공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만이 중요하다기에는 우리는 매일매일 노래, 동영상, 쇼핑, 꿈……이 선사하는 환상과 함께 산다. 이렇게 현실의 가까이에서 때로는 현실을 능가하고, 때로는 현실을 바꾸어 놓는 환상을 이해하는 것이 《한편》의 목표다.
환상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환상을 어떻게 팔 것인가? 문학편집자 김영준의 「환상을 팝니다」는 19세기 환상문학에서 지금의 한국 출판까지 넘나들며 이에 답한다. 환상소설 『드라큘라』가 세계문학전집으로 부활하고, 2020년의 기획회의에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기획자’가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한 편이다. 3호는 이 글을 가운데 두고 환상편과 현실편으로 나뉜다. 가상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은 독자에게는 「「조커」, 억지웃음의 이미지」, 「판타지와 함께 살아남기」, 「어두운 시간들을 통과하기」와 「가상과 거짓의 철학」을 권한다. 한편 현실이 보다 시급한 독자라면 포스트 코로나란 무엇인가, 기본소득 논의는 어디까지 왔는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은 왜 그렇게 분노를 불러일으켰는가, 북한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장애인의 불평등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상상」, 「기본소득, 이상 또는 공상」을 거쳐 「잔혹한 낙관에서 깨어나기」, 「북한 출신인 게 뭐 어때서?」, 「희망의 물리적 토대」로 이어지는 현실편이다.


코로나 시대의 한국에서
환상과 함께 살아남기

코로나 시대 한국. 헬조선이 지나가고 K-방역이 왔다. 헬조선이라는 말에 담긴 자조와 분노는 K-방역의 자부심, K-ness(한국스러움)에 대한 웃음이 되었다. 하지만 헬조선 유행의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사이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주인공이 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 위에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 문제를 드리웠다.
《한편》 3호는 환상과 현실 사이라는 분명하면서도 흐릿한 경계에 다가가면서 코로나19가 제기하는 문제를 기준으로 삼았다. 즉 사람들은 살아남기를 원하며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광기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죽거나 죽이는 이야기가, 또 다른 한쪽에는 환상적인 모험 끝에 새로운 현실을 맞이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영화평론가 이병현 조커의 광기를 지나쳐 가고(「「조커」, 억지웃음의 이미지」) 어린이문학평론가 김유진이 괴력의 삐삐와 예지력을 지닌 토끼를 들여다보는(「판타지와 함께 살아남기」) 것과 같다.
단 하나의 진실을 수호하느라 미쳐 버리거나, 거대 담론을 따라가다가 지쳐 쓰러지는 대신 《한편》은 ‘가상’의 개념을 생각하고(윤영광, 「가상과 거짓의 철학」) 두려움으로 꼼짝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행동의 계기를 찾는다.(임보라, 「어두운 사건들을 통과하기」) 포스트 코로나라는 거대한 상상과 거리를 두고(맹미선, 「포스트 코로나라는 상상」) 기본소득이 우리가 따를 만한 이상인지 아닌지 검토하며(김공회, 「기본소득, 이상 또는 공상」) 미래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안을 나눈다.(박지원, 「잔혹한 낙관에서 깨어나기」와 계은진, 「북한 출신인 게 뭐 어때서?」) 현실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환상이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이니(「희망의 물리적 토대」) 이렇게 3호 ‘환상’은 환상과 함께 살아남기를 제안한다.


정기구독자 4000명,
뉴스레터 구독자 8000명과 함께하는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흑백의 간결한 디자인 위에 매호 한글폰트를 변주하는《한편》(디자인 유진아) 3호 ‘환상’에 적용된 글꼴은 세잠체. 곡선과 직선 획, 가로와 세로 선의 대비와 가끔씩 떨어져 나가는 자음들이 뚜렷하고도 흐릿한 환상을 표현한다. 3호 속에는 특별 부록인 독서 카드 ‘환상적인 참고 문헌’이 들어 있다. 환상문학과 관련 인문서들을 하나하나 독파해 나가는 재미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다.
《한편》에서는 본문와 함께 읽을 고전 그리고 신간 콘텐츠를 매주 8000명에게 뉴스레터로 정기 발송하고 있다.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으로 진행한 2호 ‘인플루언서’의 공개 세미나에서는 총 3회에 걸쳐 세계 각지의 독자들과 만나 읽고 대화하는 즐거움을 공유했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에 이어 2021년 4호 ‘동물’, 5호 ‘일’을 주제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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