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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7
1부 산은 멋지다 새해가 밝았다 17 4월이 오면 21 산의 팡세 23 여름을 이렇게 지냈다 28 조 심슨의 책을 다시 읽다 33 보이테크 쿠르티카의 아름다운 세계 37 나는 山書를 이렇게 읽는다 42 설악산을 다시 생각한다 47 산의 비밀 52 산악인에는 조건이 있다 58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다른가 64 산은 위험한가 69 세상에 산이 없다면 74 풍설의 비박 78 한계 도전에서 얻는 것 82 2부 자유 그리고 자연 명동의 봄날 밤 91 신록의 계절에 96 산을 혼자 가다 101 아웃도어란 무엇인가 106 타이가에 천막을 치고 싶다 111 덕유산이 그립다 115 나뭇잎이 떨어지면 120 산의 자유를 찾아서 124 잊을 수 없는 두 산악인 목동 128 눈꽃을 찾아서 133 이처럼 자유로운 여성은 처음 136 3부 언제나 산과 연결되는 삶 사색과 체험 그리고 표현 143 저녁마다 길을 걸으며 148 칼텐브루너의 열정 152 나의 등산 노트북 157 메스너가 다녀갔다 162 산사나이들이 울었다 167 등산이 곧 인생 172 산악인의 귀소본능 178 누구에게나 내일이 있다 184 4부 우리는 산과 어떻게 만나는가 글을 쓴다는 것 191 山書를 읽고 싶다 195 어느 젊은이가 산과 만나며 200 나는 에베레스트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205 에베레스트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210 등산 문화란 무엇인가 215 알피니즘에 미래는 있는가 220 몽블랑이 죽음의 지대가 되었다 225 산을 너무 가볍게 여긴다 231 내가 본 山書의 세계 236 닫는 글 나는 알피니스트로 살아왔다 240 이 책에 나온 산서 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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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 내일을 바라본다. 인생이란 미래지향적이라는 말이다. 높은 곳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인생과 등산은 일란성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크리스 보닝턴(Chris Bonington)의 예를 들지 않아도, 등산가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른다. 손경석이 『산 또 산으로』라는 책을 썼는데, 등산가는 바로 그런 존재다. 등산이 생계 수단은 아니지만 그 생활이 언제나 산과 연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 p.8 산은 위험한가.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이에 대해 라인홀트 메스너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산은 위험하지 않지만, 위험한 경우가 가끔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의 산은 그렇다 치고 지구의 오지인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위험한 곳인데 인기가 대단하다. 산은 그런 데 매력이 있어 언제나 사람이 끌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무슨 사고가 그리 많은지. 그런 사고는 거의 불의의 사고며, 이에 비하면 산의 위험은 오히려 많지 않은 편이다. 세계 알피니즘의 역사는 산악인들이 산의 위험과 싸운 기록이다. 결국 산의 위험과 싸우는 것이 산악인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양상은 바로 시시포스의 신화와도 같다. --- p.69 산은 행동의 장이면서 사색의 장이다. 누구나 산이 좋아 산에 가겠지만 그저 그렇게 끝나기에는 너무나 깊고 넓고 높은 곳이 산이다. 산에 담긴 자연성을 그대로 느끼고 알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산의 매력과 등산의 의미란 그런 것에 있다고 본다. 산에 가 서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러고도 우리는 또 산으로 간다. … 그 옛날 머메리가 “정당한 방법으로”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취할 정신과 태도 역시 ‘정당한 방법으로’다. 지구상의 모든 산이 알려질 대로 알려졌지만 오늘날 알피니스트가 갈 곳은 그래도 산밖에 없다. 그 삼십 대 젊은이가 외로이 오른 한여름의 덕유산은 바로 그런 세계였다. --- p.118 나는 기나긴 세월 외국의 등반기를 여러 권 옮겼지만, 이번 『태양의 한 조각』 번역은 지금까지 해오던 그런 작업이 아니었다. 등반기 속에 매몰되어 주인공과 같이 지낸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나는 책상머리에서 고개를 들고 먼 산만 바라보았다. 망연자실이라는 말이 이래서 있나 싶었다. 마흔세 살은 결코 긴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 어찌 된 일인지 우에무라 나오미도, 일본에서 최첨단을 가던 클라이머도, 그리고 또 다른 누구도 모두 같은 나이에 갔다. 그런데 다니구치 케이의 경우는 그 가운데서도 유별났다. 그녀는 사라졌어도 그녀의 정신이 더욱 힘차게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녀가 남긴 공백을 채우려고 파트너들이 저마다 나섰다. --- p.138 칼텐브루너의 등반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히말라야 대자연에 대한 찬미와 경외와 연모다. 그녀는 등반의 곤란이나 공포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 이는 고산 등반에 당연한 조건이라, 굳이 내세우는 것을 일종의 허세와 과장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주위가 아름답다며 정상에 설 때마다 남모르게 울었다. 인생을 위해 산을 오른다는 신념과 의지에서 오는 감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칼텐브루너는 아침저녁으로 붉게 물드는 히말라야 고봉을 바라보며 박모(薄暮)의 기분에 자주 취했다. 그녀의 손발은 언제나 얼음같이 차가웠지만, 그럼에도 주위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이 먼저였다. --- p.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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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멀어진 뒤 서재에서 새롭게 오르기 시작한 산
우리는 왜 산에 오를까? 산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노등산가는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은 젊은이들을 보며 우리가 산이라는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며 안타까워했다. 산에 미친 인생을 살면서 먼저 이 고민에 빠진 사람들은 산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발터 보나티는 알프스를 오랫동안 떠났다가 마음의 고향을 잊지 못해 몽블랑으로 돌아오는데, 그때 산록을 덮은 야생화 군락을 보고 넋을 잃는다. 『내 생애의 산들』 끝에 나오는 장면으로, 그때 그는 등반하려고 몽블랑에 온 것이 아니고 옛 고향이 그리워 다시 찾아왔다며 이렇게 써 나간다. “나는 수년래 여름, 가을, 겨울을 혼자 생각나는 대로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으로 알프스를 돌아다니고 있다.” (45p) 근대화와 때를 같이해 알피니즘이 생기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등산가는 알피니즘을 고향으로 여기고 언제나 거기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250년에 걸친 등산 역사가 아닐까. 이렇게 인류 역사에 나타난 등산 세계는 오늘날 그 독특한 지평선을 넓히고 있다. 이 엄청난 동기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 “등산가는 누구나 산속에 자기의 고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선구자가 있다. 사람이 산에 가는 것은 가지 않을 수 없어 간다는 이야기다. 거기가 자기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귀소본능인 셈이며, 등산가가 사서 고생하는 까닭이다.(179p) 전문 등산가가 남긴 도전의 과정과 소회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개인적인 체험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래서 등반기를 쓰는 등산가가 많고 그중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산악 명저도 있으며 국내에서도 거듭 읽히는 것이다. 그런 산서들의 의미에 대해 노등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산악인으로 사는 동안 내게 등산 세계는 바로 사색의 장이었다. 집에서는 산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밖에서는 언제나 간편한 등산 차림으로 산친구들과 만나 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등산이 생활의 연장인 셈이었다. … 물론 고산 등산만 등산으로 본 것은 아니다. 표고가 낮은 설악산 같은 데서도 등산다운 체험을 맛볼 수 있다. 산에서의 사색과 체험은 산을 가는 사람의 자세에 달려 있으며, 엄동의 설악산은 그 좋은 무대다. (144p) 노등산가가 바라본 등산계의 새로운 변화 알피니즘 세계에는 ‘8,000미터 고소의 윤리’라는 불문율이 있다. 죽음의 지대에서는 남을 돕거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듯하지만 히말라야에 도전하는 자의 자세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히말라야 자이언트 완등을 눈앞에 두고 안나푸르나에서 눈사태로 사망한 아나톨리 부크레예프는 “남의 도움을 기대하는 자는 에베레스트에 오를 자격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29p) 그러한 히말라야와 알프스 등 세계에 이름난 등산 명소에 상업주의 원정이 유행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노등산가는 “지난날 존 헌트가 에베레스트 초등을 노리고 항공사진을 보다 힐러리 스텝 부근의 모습을 판독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데, 오늘날에는 거기에 사람이 몰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수백 명이 운집해 장터를 방불케 하며, 로체 사면에 깔린 고정 자일에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매달리고 있다.”고 한탄한다. “릭 리지웨이의 ‘터무니없는 몽상’이 사어(死語)가 된 지도 오래다.” (213p) 그러나 산은 아직 거기에 있다. 한국의 산에서도 도전과 극복이라는 멋진 체험을 얻을 수 있다. 한여름 덕유산에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다로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무주 구천동을 거쳐 백련사에서 시작하는 오름길은 끝이 없는 듯했다. 가도 가도 전망은 열리지 않았고, 가파른 돌길이 이어져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준비한 물은 동난 지 오래였으며, 확확 달아오르는 지열에 숨이 꽉 막혔다. 덕유산의 여름은 원추리 꽃으로 유명한데, 그 많던 야생화가 한 송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타죽은 모양이었다. 나는 덕유산을 오를 때마다 히말라야를 연상한다. 에베레스트의 아이스폴을 지나 6,000미터 고소부터 로체 사면 밑까지 펼쳐지는 대설원을 걸었을 때 흰 눈의 복사열이 어찌나 심했던지 잊히지 않는다. 한여름 덕유산을 오르며 그 생각이 떠올랐다. (115p) 노등산가는 서재에 앉아 산악 명저와 함께 산을 오르면서 등산이 곧 인생과 같다는 깨달음을 다시금 얻었노라 거듭 말하고 있다. 등반기에는 사람이 담겨 있어야 마음에 스며드는 글이 되고 아직도 그런 글이 나오고 있음에 기뻐한다. 우리 주변에는 멋지고 빛나는 산행을 하고도 그에 대한 기록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이 젊은 여성은 평범한 한라산에 오르고 산행기를 썼다. 사람과 산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산악인을 특별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등산 세계는 일반 생활 세계와는 다른 조건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필경 인간의 사회다. 거기 무슨 특권이 있으며 배타성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평범함 속에 결코 평범치 않은 것이 있다. (203p) 그렇다면 서재에 앉아 등산가와 함께 걸으며 새로운 산을 경험해보자. 노등산가가 소개하는 국내외 산악 명저 나는 에베레스트에서 돌아와 바로 등산연구소를 열고 각국의 등산 잡지를 입수해 주요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몰랐던 등산 선진국의 문화에 눈이 뜨여, 그들이 남긴 유산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뒤늦게 출발한 나는 등산 세계에서 많은 것을 배워 알피니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한마디로 갈 길이 끊어진 암담한 미래였다.(206p) 노등산가는 상업주의 등반이 유행하고 난 뒤 산에 가는 사람은 늘었지만 정작 산과 등산가는 멀어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그와 동시에 등반로 옆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을 기록하는 소박한 등반기 하나 남기지 않는 세태 역시 아쉬워한다. 산서(山書)는 단순히 사실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사유를 담고 있다. 등산은 직업이 아니다. 생계 유지 수단이 아니며, 취미나 여가 선용이나 심지어 건강 관리 수단도 아니다. 산악인들은 조 심슨이라는 알피니스트를 잘 안다. 지난날 남미 고산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고도 살아 돌아와 『허공으로 떨어지다』라는 불후의 등반기를 남겼지만, 그 뒤 그는 『고요가 부른다』를 썼다. 그저 산이 그립다는 이야기다. 산에 가는 행위에는 동기가 있으며, 그 동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생활에 지치고 마음에 공허를 느낄 때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가. 리카르도 캐신은 『등반 50년』에 산과 처음 만난 순간을 털어놓았다. 에드워드 윔퍼는 잡지사의 청탁으로 산의 목판화를 그리러 갔다가 그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헤르만 불은 고향 인스부르크에서 카르벤델(2,749m)이라는 멋진 산을 보며 자랐다. 이런 이야기는 끝도 없다. 우리 마음에는 문명보다는 자연을 그리워하는 잠재의식이 있다.(18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