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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이제는 정말 안녕
1 전장의 한복판에서 -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기를: 아빠가 위독하시다 - 막판 뒤집기는 없었다: 임종 - 초짜 상주의 첫 번째 임무: 장례를 준비하다 - 삼가 알려드립니다: 부고 띄우기 - 개와 늑대의 시간: 상조업체와의 줄다리기 - 상갓집의 품격: 장례식의 고정 관념 - 혼자인 사람과 죽음: 조문 방식도 달라진다 - 상주님, 상주님: 장례와 여성 - 장례의 클라이맥스: 상실 실감 - 엄마 앞에서 울면 안 돼: 슬픔의 위계 - 돌아오는 버스에서: 장례 이후의 삶 2 일상의 한복판에서 -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답례 인사 - 아빠의 ‘아끼다’에 대하여: 유품 정리 - The Show Must Go On: 일에 몰두하기 - 특수 요원: 일하면서 보살피기 - 독이 되는 ‘따뜻한 말’: 건강한 위로법 - 죄인은 웃으면 안 돼: 자기 검열에서 자유롭기 - 울게 하소서: 나를 돌보기 - 들리는 사진관: 영정 사진 프로젝트: 과거와 미래의 삶 점검하기 - 이사의 조건: 아빠가 안 보이는 곳으로: 다시 일에 몰두하기 - 졸업을 축하하며, 아빠가: 놓아주기 3 전장의 입구에서 - 환자와 가족의 제로섬 게임: 상처 주는 요인 차단하기 - 내겐 엄마도 소중해요: 건강하게 소통하기 - 보름달빵이 먹고 싶어: 후회를 줄이려면 - 유언, 소중한 이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 이별의 후처리 - 마지막 얼굴: 나의 장례식 풍경 -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 사전 부고·장례식 기획·유언장 작성 -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다 작가의 말: 다들 그렇다더니, 그게 아니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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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번에도 퇴원하실 테니까.’
늘 그랬다. 의사가 엄숙한 얼굴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통보해도, 아빠는 그때마다 한 고비 한 고비 넘기셨다. 심지어 심장이 멈췄어도, 드라마에서나 보던 자동 심장충격기까지 동원하며 다시 살아나셨다. 람보처럼 강한 전사의 모습으로 전장을 헤치고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슬퍼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홀연 생명력을 보였다. 아스팔트 틈새로 비어져 나온 잡초처럼 삶을 또 꼼지락꼼지락 피워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 가족은 ‘마음의 준비’ 대신 퇴원 후의 삶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번엔 입원이 좀 길어지네’ 하면서. --- p.7 ‘언제부터 그렇게 아빠 생각을 했다고?’ 아빠가 좋아하시던 얼갈이배추 무침이 밥상에 올라왔다. 반색하는 아빠의 얼굴이 머릿속에 겹치려는 찰나, 마음속의 또 다른 내가 따지고 든다. 나는 슬퍼할 자격이 없다. 나를 속속들이 아는 건 나니까 단죄 역시 내 몫이다. 미워한 만큼 빚지는 법이라고. 의식은 감정을 왜곡시킨다. 슬픔을 저만치 어딘가에 가두려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언제나 유효하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아빠 이야기를 꺼내놓기 전에 가만히 심호흡부터 하는 나를 보면. --- p.8 아빠가 간간히 뭐라 뭐라 말씀하신다. 미간에 힘을 팍 주고 집중해도 나는 도통 해석이 안 되는데, 용케도 엄마는 다 알아듣고 대꾸를 하신다. “알았어, 알았어. 누룽지 끓여줄게.” 허망하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는데 겨우 누룽지 타령이라니. 이 세상에 남을 가족에게 소회든 사과든 부탁이든 뭐든 인생을 가로지르는 말 한마디쯤은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다들 절절하게 유언을 남기던데 이게 뭐람. 역시 아빠답다. 이 와중에도 당신 드시고 싶은 것만 말씀하시는구나. --- p.18 “아이고 상주니임,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아. 제가 사흘간 물심양면으로 도와드릴 테니 아아무 걱정 마십시오오.” 새로운 고객을 맞으려 청소 중인 빈소 앞에서 처음으로 담당 장례 지도사의 얼굴, 아니 ‘면상’을 보았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땅딸막한 남자는 걸걸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위로에서 영혼이라고는 소면 한 가닥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이 간밤의 그 문제적 인사구먼? 눈 뜨고 코 베어 갈 인간.’ 물건 값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아빠 장례를 이틀로 후려치려다가 고모부의 몇 마디에 꼬리 내린 장례 지도사.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달리 도리가 없다. 이 사람이 우리를 도와줄 담당자라 하니 적당히 친절하자. 대신, 선수 치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빈틈은 보이지 말아야지. 여보세요, 우리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 아닙니다. 입은 웃으면서도 눈으로는 레이저를 쏘았다. --- p.39 분향실에서 조문객을 맞을 때는 완장 찬 이를 기준으로 줄을 선다. 향냄새 진동하는 작은 빈소에서도 권위의 허울은 막강하다. 제단과 가까운 윗자리부터 동생-올케-나 순서로 도열한다. 내가 동생보다 손위지만 이곳에서는 동생보다, 심지어 그 배우자보다도 서열이 낮다. 올케는 오 씨가 아닌 데다 아빠와 맺고 지낸 인연도 가장 짧다. 나이도 핏줄도 완장일 수 있지만, 남성이라는 성별은 모든 것을 이기는 무적 카드다. 엄마께 무심히 상주의 위계와 불만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제 그런 정도로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랬는데 엄마는 엄마대로 당신의 불편한 입장을 토로하신다. “나는 그나마 설 자리도 없어.” 엄마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뜬 순간 ‘미망인’, ‘아직 고인을 따라 죽지 않은 이’라는 섬뜩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죽어야 마땅한 자’는 애도의 장에 정식으로 참여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엄마는 장례 기간 내내 분향실에서 우리들이 만든 줄 끄트머리에 어정쩡하게 서서 조문객을 맞으셨다. --- p.66 “네가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엄마 잘 모셔야 한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엄마 앞에서는 눈물마저 참고 있는데, 다들 나만 채찍질한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딴에는 관심이었을 것이다. 그들 나름으로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교분이 깊은 이들이 아니다. 내 사정이나 성격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조금 안다 해도 그리 대단치 않다. 먼저 내 심경을 물은 적도 없다. 자기들이 느낀 인상대로 판단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즉각 숙제를 던지는 것이다. 무신경한 충고는 듣는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아니 상처를 주는 훈수일 수 있다. 그들에 의하면 나보다 엄마가 더 슬프다. 감정을, 슬픔을 비교한다. 슬픔이라는 것에 절댓값을 매길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것은 다 같은데 누구는 10만큼 슬프고 또 누구는 3만큼 슬플까? 슬픔의 종류나 내용은 다를 수 있되, 정도를 계측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 p.142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어휴, 말도 마.”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 말이야….” 다들 내 마음을 참 잘도 안다. 알고도 남아 넘칠 지경이다. 그래서 내 말을 듣기보다 자기네 경험담을 꺼내놓기 바쁘다. ‘네가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훨씬 더 힘들었어.’ 듣다 보면 그들은 형용 못 할 고통을 겪었는데 나는 별것도 아닌 일로 징징거리는 사람 같다. 힘든 경험도 경쟁을 한다. --- p.146 우리 아빠는 리어왕만큼 재산이 많지 않아서였는지, 가족의 우애를 믿으신 건지, 유산에 대해서는 남긴 말이 없었다.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도 아무 언질이 없어서 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상복을 반납하자마자 집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우리는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만일 아빠가 빚을 졌는데 우리가 모르고 상속을 받았다면 암울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미 떠난 아빠의 뒤꼭지가 더 밉상이었을 수도 있다. 굳은 뜻을 갖고 적극적으로 삶을 정리하고 자진해서 죽음에 임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8년 104세였던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고령으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자, 스위스까지 날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떤 이는 이를 자살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존엄사라 한다. 아빠가 판단력마저 잃었을 때, 우리 가족은 아빠의 심장 이식 수술 여부를 고민하느라 영혼까지 시렸다. 사전에 당사자가 연명 치료 의사를 결정하고 가족과 공유했다면, 우리도 분노와 죄책감 따위로 괴롭지 않았을 것이다. --- p.224 돈·가족·명예 등에 대한 집착같이 내 삶을 제약하는 욕망이 무엇인지, 어떤 얼굴로 세상을 마감하고 싶은지 등을 차분하게 생각한 뒤 영정 사진을 찍음으로써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한다. 그 사진을 내가 진짜 영정으로 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프로젝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나의 마지막 얼굴, 곧 현재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는 영정 사진은 내가 보기에 ‘죽음 사진’이 아니라 ‘인생 사진’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차경과 처음으로 영정 사진을 찍고서야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영정 사진을 찍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무슨 일 있느냐며 걱정하거나 괴이하게 여겼다. 엄마는 “늙은 에미 앞에 서 못 하는 소리가 없다”고도 하셨다. ‘영정’은 곧 ‘죽음’이라는 공식으로 금기시된다는 걸 그렇게 확인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고운 모습을 남겨야지”라고 해주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찍은 영정 사진 후보들을 나는 사무실 창가에 늘어놓았다. 하루에 몇 번쯤 그 사진들을 볼까? 일이든 마음이든 안 풀릴 때는 일부러 들여다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얼른 거울을 꺼내 당장의 내 얼굴을 살핀다. …이제는 해마다 연말이면 나의 1년이 고스란히 담긴 얼굴을 포착하기 위해, 그러니까 한 해를 돌아보기 위해 영정 사진을 찍는다. 나만의 해넘이이자 해맞이 의식인 셈이다.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느낌이 사진에 묻어나면 좋겠다. 그러려면 자유롭고 유연하게 살아야 할 텐데, 오늘 나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을까? --- p.170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 전에는 집에서도 아빠 계신 병원이 보여서 안심이 되더니만, 이제는 병원이 보이니 너무 고통스럽네.” 아빠가 돌아가시자마자 엄마는 이사 얘기를 꺼내셨다. 우리 집 마루에서는 보려 하지 않아도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를 간 이유였다. 그러나 그 목적을 잃은 이제는 다른 곳으로 가자 하신다. 4년이 흘러 이제야 동네가 익숙해질 만하니, 아니 불편함도 참고 지낼 만해지니 또 가자 하신다. 가족의 죽음이 준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물건을 버리거나 집을 파는 것처럼 생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한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재난 상황’에 처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탈진되어 스스로를 잘 다룰 수 없는 때이므로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변화보다 자신과 가족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충고다. 그러나 엄마가 집 때문에 고통스러우시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한테 이사는 시간문제일 뿐 기정사실이었다. 삼우제를 지내고 나흘 뒤, 우리는 조문 답례 인사와 동시에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 p.178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본 아빠의 편지. 평생 다정한 말 한 번 해본 적 없는 분답게 편지는 간결했다. 고3 시기를 이런저런 병치레로 보냈는데도 무사히 대학에 합격해줘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곧 놀고먹는 대학생으로 전락할까 노심초사하는 염려로 이어졌다. ‘아휴, 잔소리. 엄마는 아빠 연애편지에 넘어가 결혼하셨다더니.’ 대체 아빠 편지의 어느 부분에 엄마가 반했다는 것인지 당최 모르겠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그때 그 편지를 발견했다. 봉투를 보자마자 눈물이 솟구쳤다. 잔소리 편지를 받은 그날보다 더 많이 울었다. 아빠는 뭘 쓰든 먼저 연습을 하시곤 했다. 우리 집 명필답게 글씨도 반듯반듯 잘 쓰시는 분이 왜 연습을 하실까? 아마 그 편지도 그랬을 것이다. 몇 번이나 연습을 하셨을테지? 종이를 몇 장이고 구겨 버리셨겠지? 쑥스러운 걸 이길 만큼 나의 회복과 합격이 기쁘셨겠지? 몰래 편지를 줄 생각에 혼자 빙그레 웃으셨겠지? 그때는 보이지 않던 행간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20년도 더 지나 눈앞에 나타난 편지, 아빠는 이 편지로 내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을까? 편지의 제목 ‘졸업을 축하하며’. 아빠는 내가 갈피를 잃은 애도에서 졸업하기를 바라시는 걸까? 졸업을 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니.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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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의 프리랜서 맏딸, 상주가 되다
"이번에도 그럭저럭 퇴원하실 줄 알았다. 응급실에 실려 가신 게 벌써 여러 번, 몇 년 전에는 아예 병원 앞으로 이사를 했다. 젊은 날에 이미 목숨을 걸고 심장 수술을 했고, 평생 동안 병치레가 잦으셨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턴가 아빠가 입원을 하셨다는 말에도 무감각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아빠가 떠나버리셨다. “누룽지가 먹고 싶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저자 오채원은 무대에서 역사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공연 진행자이자, 강단에서 ‘소통’의 각양각색을 이야기하는 대중 강연 전문가다. 그럼에도 정작 아버지와는 끝까지 편안하게 교감하지 못한 채 영영 이별하고 말았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글픈 마음을 달래며 아버지를 애도하는 와중에,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원치 않는 방식으로 ‘맏이, 딸, 비혼 여성, 지식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자각했다. 관혼상제의 일처리가 으레 그러하듯, 부친상의 상주가 된 맏딸의 마음에는 상실감 말고도 또 다른 생채기가 남았다. ‘네 위치가 여기’임을 알려주는 민망하고 적나라한 현실에 발끈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살아생전 살갑게 받들지 못한 아버지에게 뒤늦게나마 글로써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세상이 확인해준 ‘프리랜서 비혼 맏딸’이라는 위치에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북돋워 ‘삶’을 야무지게 일구기 위해, 그래서 장차 맞이할 너와 나, 모두의 ‘죽음’을 차분하게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장례에 프로가 어디 있나요 ─ 초짜 상주를 위한 장례 매뉴얼 『안녕 아빠』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누구라도 ‘초보’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장례. 갑자기 상주가 된 젊은 자식으로서, 모쪼록 다른 이들은 당황스럽거나 멋쩍은 일을 덜 겪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종’으로 시작해 ‘부고’와 ‘상조업체’, ‘조문’, ‘답례’를 지나 ‘유품 정리’, 나아가 ‘이후의 삶’이라는 키워드로 글을 풀어나간 이유다. 저자의 방식대로 가볍게 설명하자면 『안녕 아빠』는 ‘유용한 장례 매뉴얼’인 셈이다. 그런 만큼 상주의 입장에서도, 또 조문하고 위로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에 새길 만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착실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이 책의 힘은, 솔직하고 섬세한 말로 감정을 잘 골라 가족의 죽음 이후의 일상과 변화를 기록했다는 데 있다.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자식들. 같은 자식이라도 맏딸의 입장과 아들의 태도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부재로 세상에 남은 세 사람의 관계는 크게 달라진다. 상갓집도 사람 사는 집 ─ ‘산 사람’이 할 일들 일상처럼 병을 안고 사신 아버지이기에 세상 떠난 뒤의 대비도 웬만큼은 해두셨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유언은 없었고 사후 정리는커녕 당장 장례 준비도 된 게 없었다. 어느 죽음인들 황망하지 않겠느냐마는, ‘듬직하지 못해’ 미안한 맏딸은 온 정신 부여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례를 치른다. 마흔줄이 넘었어도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뒷정리를 하는 일은 안 해본 일투성이다. 너나없이 쏟아놓는 훈수는 따갑거나 무겁기 일쑤고, 남의 경우와 내 경우가 다르니 고맙긴 해도 마땅치가 않다. 평생 주부로 살면서 완고한 아버지를 수발하다 혼자 남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생활을 꾸리는 일도 조심스럽다. 건강하게 이별하기 ─ 오늘도 여전히, 갈팡질팡 애도 중입니다 문제는 ‘애도’, 나의 마음이 제일 당혹스러웠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데면데면하던 마음이 갑자기 애틋해지지는 않는다. 뻣뻣하고 투박하던 관계, 정리되지 않는 원망과 미웠던 기억.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고작 “누룽지가 먹고 싶다”는 말을 남긴 것마저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다. 사는 내내 아버지와 딸은 서로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지 못했다. 미우면 밉다, 고우면 곱다 제대로 표현을 해본 기억도 별로 없다. 나쁜 아버지여서도 아니고, 못된 딸이어서도 아니다. 누군가는 잘해드리지 못한 걸 크게 후회할 거라 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살아 오신다 한들 전에 없이 살가운 딸로 바뀔 리도 없지 않은가. 아버지 생전에 두 사람의 관계가 그러했듯, 그 부재를 실감하고 애도하는 데서도 딸의 마음은 갈팡질팡 엇박자다. 아버지 부재 1년, 애도 1년의 기록 가족의 모양새도, 분위기도 달라졌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버지 생전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나가서 밥줄을 챙기고, 아무 일 없는 듯 일에 몰두한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겪은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은 분노와 비탄 사이를 오갔다. 시원스럽게 소리 내 우는 건 아직도 어색하다. ‘다들 그렇다’기에 그런 줄로만 알고 입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더는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째서 이렇게 애도가 자연스럽지 못한가. 다들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에 어떻게 원통한 속을 풀어내는지, 과연 그때의 후회와 다짐을 다져 남은 이들과 잘 살아가는지 궁금해진 저자는 스스로 이렇게 묻고 답했다.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정직하지 못했다. 난 아빠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동시에 미워했다. 나의 모든 불행이 아빠 탓이니까. 당신 자신이 가장 중요한 분이니까. (…) 이제야 알겠다. 나의 애도는 아직 시작조차 안 됐음을, 내 마음속 시계는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음을. 그래서 중요한 매듭을 짓지 못했음을, 아직도 아빠를 보내드리지 못했음을.” 일기 쓰듯 속마음을 적어 내려간 1년은 비로소 온전히 아버지 생각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소리 내 울 수 있었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애도임을 받아들인 지금, 이제야 아버지에게 “안녕”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