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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신화적 사고
1. 몸과 우주 2. 종교적 우주관에서 본 동양과 서양 제1장/ 동양의 사고 1. 중국 고대사상의 형성 2.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3. 기술적 사고 4. 동아시아의 불교 5. 동양적 사고의 완성 제2장/ 서양의 사고 1. 헬레니즘적 고대의 사고 2. 서양적 사고의 발전 종장/ 고대의 사고와 현대 |
Yasuo Yuasa,ゆあさ やすお,湯淺 泰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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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을 소우주에 비유하여 대우주와의 대응관계로 보는 사고방식은 신화시대의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된다. 원시지성에서 이 관계는 비유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원시지성에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대우주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는 직관이 담겨 있다. 말하자면,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응관계라는 설정은 우주존재의 신비와 자기 몸 안에 있는 생명의 신비가 하나로 느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는 이러한 직관을 상징적 이미지로 말하고자 했던 시도였다. 즉 신화는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와 존재의 의미를 묻는 인류 최초의 물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p.16
이러한 역사구분을 염두에 두고 이하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하나는 중국인의 자연관의 특질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사고법(思考法)이다. 이 문제는 인간관의 동아시아적 특질과 관계가 깊다. 즉 몸과 우주, 신체론과 우주론의 관계를 고찰하는 일은 동아시아적 자연관·인간관과 깊이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결국 몸과 마음[心身]의 관계에 대한 실천적 체험에서 생겨난 사고방식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점이다. --- p.33 각의 눈이 보는 현실의 삼각형은 다양하다. 그러나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삼각형의 본질은 여기에서 발견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일반화함으로써 본질존재와 현실존재, 즉 보편과 개물 (個物) 의 관계를 설정했다. ‘관념’과‘존재’의 관계에 대한 논리학적 논쟁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지상에 있는 여러 개물 (현실존재) 의 저편에 눈에 보이는 형상의 다양함을 지배하는, 참으로 존재하는 초월적인 이데아의 차원을 설정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반대로 혼돈과 질서의 관계를 역으로 보았던 중국적 사고방식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p.69 근대인들은 꿈을 믿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보통 꾸는 꿈은 의식에서 억압된 정동적 (情動的) 강박관념 (complex) 이 표면화된 것으로, 일상적인 자기의 인격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꿈의 분석은 이러한 의미를 해석해내고 그 사람의 인격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다. 다만 깊은 감명을 자아내는 것과 같은 넓은 의미에서 종교성을 띤 꿈은 흔히 볼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이런 종교적인 꿈은 무의식의 아주 깊은 부분에 잠재되어 있던 어떤 힘이 움터 나오지 나오지 않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 p.149 서양 고대의 많은 철학들 중 신체의 우주성이라는 관점에서 대우주와 소우주의 대응관계를 생각한 대표적인 예로는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주의(Stoicism), 플라톤주의(Neo-platonism), 그노시스주의(Gnosticism)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철학의 배경에는 동양의 명상이나 수행과 유사한 심신훈련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철학의 사고양태는 기독교의 발전과 함께 서서히 쇠퇴하고, 서양세계에서는 동양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인간관·우주관·자연관이 생겨나 자리 잡아 갔다. 이때 신플라톤주의는 그노시스주의의 흐름을 이어받은 연금술(鍊金術)과 함께 중세 후기에부활하여 르네상스사상을 준비한 후에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근대적 인간관과 자연관은 서양적 사고의 도달점을 보여준다. --- p.238 오늘의 과학은 생명으로서의 자연을 어떻게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 앞에 서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자연관은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동아시아의 자연관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심신의 전체를 통하여 나타나는 공시적인 대응관계가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이 점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근대적인 인과적 사고와는 달리, 공시적이고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바르게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이것이 제2의 논점이다. --- p.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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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출간된 ‘몸과 우주’(身體の宇宙性)의 개정판.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인간과 대우주(大宇宙)로서의 세계의 관계를 동서양의 신화, 심리학, 철학, 종교를 넘나들며 조명한다. 동양사상에서 친숙한 주제를 서양사상과 대비-비교함으로써, ‘인생’과 모든 학문의 근본 출발점인 내 신체와 무궁한 우주의 연관성을 확신케 하고, 학문과 종교, 삶의 영역 모두에 새 동력과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자해적, 자살적 현대문명은 어디로부터 유래하는가? 기상이변이 일상화되었다. 다양한 진단과 대안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확실히 위기는 위기다. 원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결책도 달라진다. 기상이변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의 결과(人爲的)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한다. 왜 인간은 자연에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현대문명을 구축해 왔는가? 오늘날 ‘주류적인 세계문명’을 형성한 서양의 근대 자연관과 인간관은 인간과 자연을 철저히 이분법적으로 해석한 바탕 위에 성립한다. 그것은 ‘지구 어머니’의 살해를 향해 치닫고, 나아가 인간 스스로를 멸종의 위기로 몰아가는 자살적 문명이 바로 현대문명이다. 이 지구적 차원의 위기에서 십승지지는 있는가? 대한민국판 종말론과 구원론이라고 할 수 있는 ‘비결’에는 십승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앞으로 닥쳐올 환난의 시대에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생명의 땅이라고 일컬어지는 10곳 혹은 많은 지역을 말한다. 그러나 이 지구적 차원, 나아가 우주적 차원의 위기에 현대 인류의 십승지는 있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늘 아래 땅 위에뿐만 아니라, 하늘 위와 땅 아래에조차 안전한 곳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도 굳이 찾고자 한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지 않은 길”을 찾으려면, 우리가 출발한 원점으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일본의 저명한 융 연구가인 유아사 야스오의 ‘몸과 우주’ 탐색 이 책 ‘몸의 우주성’은 인간 생명의 신비를 ‘살아 있는 우주’와 대응관계로 직관했던 원시적 사유(신화)가 차축시대(車軸時代, axial age)를 거치면서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다른 자연관과 인간관을 발달시키게 된 원인을 설명하는 것으로 오늘의 우리 물음에 대한 답을 시작한다. 몸의 우주성'을 로운 주제를 풀어가는 데, 주역과 천문은 물론, 수행법으로 요가의 차크라, 도인술과 내단술, 종교에서 불교의 밀교와 서양의 그노시즘, 그리고 연금술에서 혼돈이론에 이르는 과학의 영역까지 다양한 분야들을 망라하였다. 인간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떠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결국은 ‘인간’에 대한 물음과 답변으로 귀결된다. 그중에서도 ‘몸’과 ‘우주’는 그 처음과 끝이라는 점에서 ‘인간’에 관한 이야기의 고갱이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이 책은 “동양과 서양” “고대와 근대”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의 틀 위에서 설명을 해 나간다. 단순화의 위험이 있는 반면, 복잡하고 난삽해질 수 있는 다양한 관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게 미덕이 전자의 위험성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그 과정을 거쳐서, 이 책을 끼고 우리가 도달하는 궁극의 지점은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의 세계이다. ‘몸’의 ‘우주성’의 의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