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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이모들의 의견을 듣기 전에 영미의 의견 2017년 4월 2일 2017년 4월 16일 2017년 5월 7일 2017년 5월 14일 2017년 6월 4일 〈울긴 왜 울어〉 지니의 의견 〈데뷔〉 윤선의 의견 자꾸만 말하는 것 말하기 싫은 것 도움받기 문이 세 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사는데〉 해제 이모들의 방_이나라(이미지문화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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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상 손해배상소송을 지원하는 연구자와 운동가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미군 위안부’라 칭한다. 정부가 법령 등에서 기지촌 여성들을 지칭했던 명칭을 가져와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의 연속성을 드러내고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세 기지촌 여성 중 가장 폭력적인 기지촌 생활을 했던 지니는 자신은 ‘자발적’으로 기지촌에 들어갔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와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일본군 ‘위안부’들처럼 총칼로 협박당해 끌려간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의 경험이 개인적 비극일 뿐 피해라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때, 지니의 말하기를 규범으로 받아들인다면 기지촌 여성들이 피해자가 아니라고 인정해야 하는 모순에 놓인다. 혹은 운동의 승리를 위해 잠시 숨겨 둬야 할 말, 연구자나 운동가가 고쳐줘야 할 말이 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지니의 세계관을 담고 있으며, 한 기지촌 여성이 겪어온 인생사를 담고 있는 사실이다. ‘위안부’ 명칭에 대한 지니의 의견은 피해자화를 경계하라는 채찍질로, 법정에서의 승리가 피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전제를 재고하라는 요청으로 들을 수 있다. 지니의 말은 가려 둘 것이 아니라 드러내야 하는 말이다. 그 속에서 사회적 의미와 나아갈 방향을 찾고, 일본군 ‘위안부’와의 연결성을 발견한다면 계속해서 연대해야 한다. --- p.9~10 영미: 나는 검은 애들 있잖아, 여기 티비. 애새끼들을 그렇게. 애새끼들은 왜 그렇게! 처낳고! 밥 처먹고 할 지랄 없으니, 먹을 것도 없는 것들이 무슨 애새끼를 그렇게 많이 낳아-! (TV: 아이들에겐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세요…) 영미: 그러고, 이, 이렇게 먹을 것도 없으면서, 애들은 왜 그렇게 많이 낳아가지고! (TV에 다른 광고가 이어진다. 아픈 한국 어린이의 모습과 아이 아버지의 인터뷰가 나온다) 영미: (잠시 후에) 나는, 나 같은 2세가 싫었던 거야. 민주: 왤까? (잠시 침묵) 이모 애기 낳았음 진짜 이뻤을 텐데. 영미: 에? (잠시 침묵) 낳아서… 결혼해서, 미국 가서 살면서- 키우는 거는 괜찮은데. 여기서 혼혈아 그거 뭐, 뭐에다 써먹어! 혼혈아 낳아가지고. 아이구-. 티비 보니까 동두천에. 세상에! 노가다 일 해-. 어디, 지금이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써주지도 않았어, 혼혈아는. --- p.49 은진: 그래도 이모 그 소송, 이기면 배상금도 나오고… 근데 별로예요? (웃음) 지니: (머뭇거리다가) 근데-. (잠시 침묵) 몰라, 주면 감사하게 받겠지만은. 은진: 돈이니까? (웃음) 어떤 게 맘에 걸리세요? 지니: 떳떳하지 못한 돈이지. 그게 뭐 떳떳해. 내가 뭘 잘했다고. 그냥 뭐, 원장님이나- 홍 간사, 유 간사가, 응? 쫓아다니면서 핸 거, 우리는 뭐 핸 것도 없잖아- 법정에 몇 번 같이 가자 해서 간 거뿐이잖아. 그리고 뭐, 우리가 일본 위안부야? 아니잖아-. (침묵이 이어진다) 은진: 근데 다른 이모들 중에는, 모두는 아니지만, 강제로 속아서 오신 분들도 있고. 그렇다고 하던데요? 지니: 대부분 이런 데 들어올 때 다 그래-. 다 돈 벌기 위해서 나왔겠지, 뭐. 내가 아는, 내가 알기로는 다 돈 벌라고 나왔어. 은진: 어느 정도 알, 아예 모르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지니: (잠시 후에) 처음에 나도 이런 덴 줄 몰랐지, 저 법원리, 파주에-. 미국 놈하고 기냥, 미국 사람하고 술 같이 마시라는데. 그게 아니잖아. 무조건 상대하라는 거지…. 술 같이 먹구 그러면 팁 나온다, 첨에는, 포주는 그렇게 꼬시지.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아이고, 이제 고만 말해! 징그러! --- p.197 경빈: 그럼 이 클럽 다섯 개… 일하신 게, 다 써빙? 윤선: 88년도까지. [그러고] 나서, 이제 써빙. 경빈: 무슨 클럽까지 아가씨 하시고 [써빙 시작하신 거예요]? 윤선: (버럭 화를 내며) 그걸 왜 적어! 뭐 나 혼자 한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저거 한 거 나 혼자야? 경빈: (당황한 목소리로) 아, 그러니까… 윤선: 그러니까 그걸 물어보지? 그런 거 같어. 경빈: 그러니까, 아까 저는 다섯 개 말씀해주신 게 다 써빙 일 할 때 이야긴 줄 알았는데…. 윤선: 아가씨! 아가씨 생활 할 때. 경빈: 그러면 더 폴, 그니까, 어디서부터… [써빙을 한 클럽인가요]? 윤선: 써빙은… 몇 군데 안 돼. 그런 대신에 오래 했지. 하나, 둘, 셋. 써빙은 세 군데서 했는데 좀 오래 했지. --- p.259 이 책에서 영미, 지니, 윤선은 기지촌 운영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 진술서를 적어 내릴 때와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민주, 경빈, 은진은 기지촌 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을 피력하고, 기지촌 여성이 구술한 이야기를 받아 적는 대신 문학적 말하기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모들의 ‘의견’과 이모들과의 ‘관계’를 ‘재현’하려고 한다. 이런 까닭으로 책은 말과 말소리, 어조, 몸짓의 표기를 신중히 고려하고 최대한 기록하며, 청자이자 기록자의 질문과 반응도 함께 담는다. 평택에서 이미 이모들의 생애사를 기록해 펴낸 적이 있는 민주의 영상 세 개도 이에 가담한다. 가령 〈울긴 왜 울어〉나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사는데〉와 같은 영상은 이모 집의 스산하고 따스한 풍경과 소리, 방문자와 주고받는 대화로 법적 증언, 논리적 진술, 심지어 언어 바깥에서 일어나는 다성적 재현을 제안한다. 우리는 글에서도 영상에서도 여러 목소리와 여러 사람들이 충돌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장면을 계속 목격할 수 있다. … 평택을 찾아간 이들과 평택에 살고 있는 이모들 사이의 차이는 굳이 은폐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계층과 지식의 차이에는 괄호가 생기기도 한다. 젊은 작가와 학생이 이모들이 묘사하는 사건의 흉악함에 놀라거나 디테일에 감탄하는 순간, 차이에는 괄호가 쳐진다. 차이에 괄호가 쳐진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은폐된다는 뜻이 아니다. 차이에 괄호가 쳐지는 순간은 함께 기억하고 있는 이들, 함께 같은 것을 감각하는 이들이 ‘공동체’로 묶이는 순간을 뜻한다. 재현이 관계의 작업일 때 괄호는 스스로 생겨나고 사라진다. 경험의 공동체는 사라지더라도 잠깐, 우발적으로 나타난다. --- p.285-287, 「해제 〈이모들의 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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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알던 기지촌 여성이란 것이 얼마나 고정되고 허구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죽비 소리다. 양공주, 성매매 여성, 국가 폭력의 피해자, 노인 여성, 그리고 개성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라는 다면성(多面性)의 어느 하나도 구석에 밀쳐놓지 않는다. _양현아(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사에 박제된 자의 호소가 아니라 사랑과 이별, 고통과 자유가 스민 살아 있는 개인의 육성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_임민욱(설치미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양공주, 민족의 딸, 국가 폭력 피해자를 넘어서 2020년 5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씨는 30년간 참석해 왔던 수요집회 불참을 선언한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무엇보다 운동을 함께해 온 단체가 피해자들을 이용했다는 판단에 따른 공적 고발이었다. 한국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운동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이용수 씨의 폭로가 지금까지 쌓아 온 운동의 성과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요컨대 피해 당사자이자 시민이 다른 방식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보다 이러한 목소리가 외부에 어떻게 보일지부터 의식하는 정파적 사고에 기인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피해자는 주로 피해자로서의 경험과 요구에 대해서만 발언하는 프레임에 익숙한 한국 사회의 민낯이었다. 비슷한 현상은 ‘미군 위안부’로 불리는 ‘기지촌 여성’에게도 반복되고 있다. 해방 이후 주한 미군을 대상으로 조성된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했던 이 여성들은 국가가 주도한 성매매 산업의 일원이자 피해자였다. 미군과의 우호를 위해, 외화벌이를 위해 기지촌 여성들이 필요했던 정부는 이들을 조직적으로 통제-관리하며 ‘산업역군’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양공주’ ‘민족의 수치’라 부르며 차별하고 멸시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반미 운동 진영이 미군 병사에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 윤금이 씨에게 선사한 ‘민족의 딸’이라는 이름은 ‘듣기 좋은 왜곡’일 뿐이었다. 사회의 입맛대로 재단되던 기지촌 여성은 이후 정부의 조직적인 ‘관리’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당한 국가 폭력의 ‘피해자’로 인정받게 된다. 2014년 전직 기지촌 여성 12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국가의 폭력적 성병 관리와 강제 격리수용 치료로 인해 입은 손해를 일부 원고들에게 배상하고 국가가 기지촌 내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조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당사자의 증언은 강제성을 강조하고 ‘피해자다운’ 모습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편중되었다. 이는 물론 피해자의 말을 의심하거나 비난하고 그가 입은 피해를 부정하려는 시도에 맞서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나, 거꾸로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다. 진실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수록 비난 여론이 형성되다 보니, 이른바 ‘위험한’ 말들의 공개를 꺼리게 된 것이다. 그들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자, 다른 것들이 들렸다 ‘피해자다움’이라는 환상을 부수는 날것의 목소리를 듣는 법에 관하여 그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이 책은 기지촌 여성인 영미, 지니, 윤선을 피해 경험에만 사로잡혀 있는 존재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를 피해자의 절절한 호소로만 조명하지 않는다. ‘피해자다움’에 부합하지 않는 기억도, 심지어 이를 부정하는 말도 숨기지 않는다. 기지촌 경험에 대한 증언을 곧바로 듣기란 어렵다. 영미의 관심사는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집 여자, 자신이 키우는 개 두 마리, 동네 길고양이, 종편 채널의 ‘북한 것들’ 소식뿐이다. 지니의 기지촌 경험을 들으려면 그의 어린 시절, 가족, 지금의 동거인 이야기를 빙 둘러 거쳐 가야만 한다. 윤선은 어린 시절 계모에게 학대당한 경험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기지촌 생활에 대한 회고는 끊임없이 회피한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생활, 주변 이웃과의 에피소드, 가족에 대한 회상, 정치관, 욕설, 혐오 발언은 미군, 포주, 임신중절, 감시, 폭행 등 기지촌에서의 경험과 관계 맺고 있다. 따라서 파편적인 이야기들, 그 속의 무수한 중단과 굴절의 순간을 건너는 과정은 “‘평택 기지촌 여성’이라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감각”(이나라, 해제 〈이모들의 방〉 중)하는 일과 같다. 독자는 그저 관찰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가며 함께 같은 것을 경험함으로써 ‘기지촌 여성’을 피해자만이 아닌 개성을 가진 존엄한 인간으로 재인식하게 된다. 세 기지촌 여성은 독자에게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해 온 ‘피해자다움’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생생한 표현으로 알린다. 예컨대 한국 남자가 무섭다고, 여자 패면 “미국식으로” 잡아넣어버려야 한다는 영미의 말은 ‘미군 폭력의 피해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평면적 상상과 얼마나 먼가. ‘진정한’ 피해자를 가려내기 위해 피해를 호소한 당사자를 취조하듯 다루며 사소한 오류만으로도 2차 가해를 하는 지금, ‘피해자다움’이라는 환상을 부수는 이 책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동시에 그를 의견을 가진 한 명의 시민으로 마주하는 법을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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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증언집만도 구술집만도 한국 사회에 대한 고발만도 아니다. ‘이모들’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던 기지촌 여성이란 것이 얼마나 고정되고 허구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죽비 소리다. 양공주, 성매매 여성, 국가 폭력의 피해자, 노인 여성, 그리고 개성을 가진 존엄한 인간이라는 다면성多面性의 어느 하나도 구석에 밀쳐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이모들에게 말을 걸고, 그녀들의 말을 기억하려는 세 명의 여성도 같이 만나게 된다. 성급하게 사회과학과 법과 정의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그것을 멈추고 가만히 혹은 과감하게 이모들을 재현하기로 마음먹은 이 책에 마음이 간다. -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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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욕설도 직설도 전달만 한다. 뭘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뭘 더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기지촌 여성을 정치적 올바름에 가두지도 않는다. 얼핏 소극적으로 보이는 이런 접근은, 그간 어떤 대명사로만 호명되던 기지촌 여성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역사에 박제된 자의 호소가 아니라 사랑과 이별, 고통과 자유가 스민 살아 있는 개인의 육성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 임민욱 (설치미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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