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외날개 말똥가리 ‘천’을 길동무 삼아
첫 번째 이야기 아름다운 사람들 순천만 갈대밭과 벌교장터/ 아야, 밥은 묵고 댕기냐? 화개장터 체육대회/ 여자가 씨름을 한다꼬! 누구 며느리고? 슬로시티 악양면의 동네밴드/ 전설 속 청학동을 꿈꾸는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 곡성의 지푸라기 소 할배/ 소가 그리워 ‘볏짚 황금소’를 빈 외양간에서 키운다 늦깎이 백발의 화가/ 74세에 접어든 화가의 길, 81세에 독립을 선언하다! 하동군 옥종딸기마을/ 한겨울 딸기는 목숨부지 농민들의 효자효녀 아입니꺼 남해 독일마을/ 살수록 정드는 내 인생의 종착역 두 번째 이야기 지리산에서 다시 태어나다 모터사이클 내 인생/ 나는 폭주족이 아니라 기마족이다 지리산 빗점골 너럭바위/ 시원한 폭포와 늘 푸른 이끼 내 기억 속의 절밥/ 산중 암자의 산초기름 김치볶음밥 남원 와운마을의 천년송/ 지리산 천년송의 솔바람 태교 십 년 순례, 그 마지막 길/ 환계還戒, 첫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땅끝 해남의 시인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지리산 행복학교》 그 이후/ 봄날의 여행자들 지리산학교로 몰려오다! 지리산에서 살아가기1/ 철새는 집이 없다 지리산에서 살아가기2/ 전업시인, 피할 수 없는 ‘타발적 가난’의 길 지리산에서 살아가기3/ 지리산에서 돈 없이 잘 놀기 세 번째 이야기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남해 동천보건진료소/ 웃음치료로 우리 몸의 미세혈관까지 뻥 뚫어줍니다 고령군 오사마을 이발사/ 손님이 없다고 32년 된 이용소 문 닫을 수야 없지예 세계 최대의 북 ‘천고’/ 천고의 북소리 한반도에 널리 퍼지기를 보성군 공연예술촌/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좋당께. 우린 연극에 미쳐부렀어! 남원의 칼 만드는 女대장장이/ 나 살고 세상 살리는 나만의 활인검 전국여농 토종씨앗사업/ 토종씨앗은 우리의 미래! 친정엄마의 마음으로 물려줘야죠 서산 천수만 철새지킴이/ 수의사는 동물 살리는 직업인데 날마다 죽이고 또 죽이고 네 번째 이야기 오, 나의 대한민국 강마을의 다문화가족/ 올갱이도 다 사라졌어요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 ‘생명의 소리’로 우는 천 년의 은행나무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의 말무덤/ 말馬을 묻어? 말言을 묻어! 구례군 위기의 섬진강 둑길/ 자전거와 거짓말, 섬진강 시멘트도로 순천 중앙시장 구두수선공/ 한쪽 눈으로도 삐뚤어진 세상 뒷굽은 내가 다 고친당께 여주군 남한강변의 홍일선 시인/ 일하다 여강 보면 자꾸 눈물 쏟아져 발원지를 찾아서/ 어머니강의 후레자식들, 발원지의 첫마음으로 참회해야 봄이 오지 않는 낙동강/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의 강 에필로그 세상 도처가 눈물겨운 고향, 길이 곧 집이었다 |
|
이제부터 나는, 나의 애마 모터사이클을 타고 사람의 향기 물씬 풍기는 전국의 장터와 마을들을 장돌뱅이처럼 떠돌 것이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 모든 것들을 도반이자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낮은 자리, 젖은 자리에서도 정직한 희망,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그리하여 마침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모든 생명들에게 경의를 표할 것이다. 좀 더 낮은 자세로, 좀 더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따로 또 같이'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울고 웃는 길동무가 되어.---p.16
벌교장터에는 아직도 한 그릇에 단돈 이천 원짜리 국밥집이 있다. "할매요, 이천 원 받고 대체 뭐가 남능교? 그래도 장산데" 하고 물으니 허허 웃으며 말했다. "첨엔 팔백 원 했지. 근디 한 번도 내가 올린 적이 없당께. 어떤 장똘뱅이가 '아따, 아짐! 천 원 받으씨요잉' 해서 받고, 또 쫌 지나자 '형수, 천오백 원은 해야 안 쓰겄소?' 해서 또 그랬는디, 잔돈 거슬러 받기 귀찮고 뭐하다구 해서 이천 원까지 올랐당께." 할머니는 마치 크게 남는 것은 없지만 이마저 비싸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장날 하루에 200그릇 이상 팔고 국수, 막걸리, 소주도 곁들여 팔며(모두가 이천 원이다) 자식들 다 키웠으니 재미나단다. ---p.28 지리산에 와서 뭔가 한 게 있다면 그것은 단지 많이 걷고 많이 달리는 것이었다. 한반도 남쪽 곳곳을 줄잡아 3만 리를 걸으며 세상사 안부를 묻고, 그동안 14대 이상의 바이크를 갈아타며 100만 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며 두두물물들에게 눈인사라도 했으니 거리상으로 지구 20바퀴 이상을 돈 셈이다. 날마다 이곳저곳 걷거나 혹은 달리면서 속도와 반속도의 경계를 넘나들고, 비 오면 비 맞고 바람 불면 바람의 정면으로 달리거나 혹은 측면의 바람에 온몸을 기대는 일이 어찌 시를 쓰는 일과 다르겠는가. 세상사 위험하지 않은 일은 없으니 삶의 급격한 경사를 만나면 내 몸과 마음도 그만큼의 긴장을 팽팽히 유지하고, 코너를 만나면 또 그만큼의 기울기로 유연하게 내 몸을 던져야만 비로소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나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절절한 삶의 자세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할 뿐이다. ---p.94 철새는 따로 집이 없다. 날마다 도착하는 그 모든 곳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을 알아채고 따라하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누구나 그럴 듯한 집 한 채 장만하는 게 간절한 소망이겠지만, 바로 이 어처구니없는 욕망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허비하고 말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 집이라는 해괴한 물건(?)을 포기했다. 버렸다. 패대기쳤다. 이 세상의 모든 집을 안식처가 아니라 과정의 길로 만들고 싶었다. ---p.150 지리산학교의 특징 중 하나는 누구나 선생이자 제자라는 점이다. 시를 가르치는 강사는 곧 사진반의 제자이며, 목공예반의 선생은 그림반의 제자이기도 한 것이다. 강사 또한 서로 크로스로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학생들 또한 다른 과목을 수강할 기회를 열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 중에서 농사 등의 전문가는 제자이자 곧 강사들의 선생이 된다. 수직적 구조는 자연스레 무너지고 수평적 구조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학교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p.176 발길 닿은 곳이 길이자 집이었고, 하룻밤 머무는 그곳이 어디나 이미 도착해야할 집이었다. 때로는 뚜렷한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어슬렁거렸다. 난생 처음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카메라 한 대와 볼펜 한 자루를 들고 세상 곳곳을 둘러보았다. 그 모든 곳이 그립고도 그리운 곳이자 서럽고도 서러운 곳이었다. 세상 도처의 길들이 눈물겨운 고향이었고 날마다 돌아가야 할 집이었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모두 ‘지금 바로 여기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이들이었다. 잘 나거나 유명하지 않지만 묵묵히 ‘어디에서나 주인으로 사는’ 자세로 이 세상을 빛나게 하는 이들이었다. 이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비로소 살 만한 곳이 되었다. ---p.314 |
|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의 주인공,
낙장불입 시인 이원규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떠돌며 만난 향기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 지리산 지킴이 이원규의 못 다한 이야기들 이제는『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속 ‘낙장불입 시인’으로 더 유명한 시인 이원규가 3년 만에 새로운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를 출간했다. 14년 전, 서울에서의 기자 생활을 접고 돌연 지리산行을 택한 시인은 철저히 혼자가 되기 위해 지리산 자락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현재 이원규는 그곳에서 일가를 이루고 ‘지리산학교’를 만들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무한한 동력을 가진 바이크를 타고 팔도를 신명나게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과 떨어져 고독하게 살아간 시인이 길 위에서 깨우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사람이 살기 위해 먼저 자연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하지 않으면 언젠가 생명의 땅은 죽음의 땅이 될 것임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장은 때로 그 언사가 매우 격렬하다. 산사람처럼 질박하다. 시인의 언어 이전에 인간의 언어로 그는 이제 세상과 교감하고자 한다.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는 당차게 인간의 언어로 다시 사람들을 만나는 낙장불입 시인의 터닝 포인트다. 시인과 모터사이클, 그 기묘한 동행 시인의 유일한 재산은 중고 모터사이클이다. 모터사이클이 가진 야성적 이미지를 생각하면 시인과 모터사이클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리산 빈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시인이 유독 모터사이클에만 욕심을 부렸다. 시인으로서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무한한 호기심을 절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더 멀리, 더 깊은 곳까지 가기 위해 그에게는 빠른 ‘발’이 필요했다. 그런 그가 택한 발이 바로 모터사이클이다. 생각을 전달함에 있어 추상적인 언어를 쓰는 시인에게 모터사이클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세상살이와 풍경에 대한 감상을 적은 산문집은 그동안에도 여러 차례 출간되었다. 그중 여행에세이의 고전이 된 소설가 김훈의 『자전거여행』과 시인 이원규의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는 서로 견줄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김훈은 자신의 비장한 표정 그대로 치열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아날로그적인 힘으로 세상을 읽어내기 위해 자전거를 탔던 것이다. 그에 비해 이원규는 날렵한 표정으로 우렁차게 바이크 엔진을 가동시켰다. 타고난 긍정성을 무기로 경쾌하게 자신의 마른 몸을 바이크 안장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시인이 안내하는 곳곳을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면 꽃구경, 사람 구경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는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하길 바랐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길을 집으로 삼으며 시인은 또다시 모터사이클과의 기묘한 동행을 시작한다.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포근한 세상을 선물하다 사연 하나 없는 사람 없고 상처 하나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하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 주기 때문에 세상은 둥근 모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수고스럽더라도 세상이 모나지 않도록 쉬지 않고 뾰족한 모서리를 깎아낸다. 돼지국밥을 고작 이천 원에 팔면서도 벌교장터 김행금 할머니는 이마저 비싼 게 아닌가 미안해 한다. 정작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은 당신인데 오히려 수척한 몰골의 시인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늘 자식을 염려하는 모든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옻칠공예가 성광명 씨의 이야기도 절절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많은 부를 얻었지만 한순간에 다 날려버렸다. 그 막막함과 절망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죽으러 들어왔던 지리산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느새 마음속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뇌출혈을 딛고 일어나 74세에 화가의 길로 접어든 백발의 화가 한숙자 할머니는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하는 노인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줄 것이다. 이외에도 시인이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묵묵히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아직 살아갈 만하다. 줄곧 ‘사람’을 향해 있던 시인의 눈과 발은 세상의 횡포에 고개 숙인 우리에게 이처럼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한다. 개인주의로 만연한 도시 생활에 지친 자들이여, 시인이 선물하는 포근한 세상 속으로 한번 들어와 보지 않을 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