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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실록 1
인간 해방의 횃불
최재영
동연출판사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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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_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 5
추천의 글 _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 / 7
머리말 _ 최재영 / 11

제1부 | 어린 시절

1장 | 부모(전상수, 이소선)의 만남과 결혼
2장 | 대구 출생과 영아기 시절
3장 | 부산 유아기 시절
4장 | 서울의 초등학교 소년 시절
5장 | 서울 용두동 집을 나온 1년의 가출 생활
6장 | 대구 중등학교 학창 시절
7장 | 대구 남산동에서 고학을 위한 가출 결행

제2부 | 서울 생활

8장 | 대구에서 서울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는 식구들
9장 | 참담한 서울 생활과 가족들의 상봉
10장 | 또다시 시작된 1년간의 밑바닥 서울 생활
11장 | 평화시장 첫 취업과 서울 남산동 50번지 이주
12장 |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만나지 못한 만남’의 인연들

제3부 | 노동ㆍ연애ㆍ신앙 생활

13장 | 서울 남산동 50번지 화재 참극과 다락방교회
14장 | 도봉동 천막촌 공동생활과 천막 교회 설립
15장 | 남상사와 통일사에서 본격적인 미싱기술을 익히다
16장 | 쌍문동 화재민 천막촌으로 이주해 정착하다
17장 | 한미사 재단보조 취업을 통해 노동참상을 겪다
18장 | 오금희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다
19장 | 일기로 사랑을 말하다
20장 | 시로 실연의 아픔을 달래다
21장 |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에 도전하다
22장 | 확고한 기독교 신앙 형성과 교회 헌신
23장 | 자기 이름을 다양하게 개명하다

제4부 | 노동운동에 눈을 뜨다

25장 | 창현교회 건축공사에 헌신하다
26장 | 부친을 통해 근로기준법과 노동운동에 눈을 뜨다
27장 | 평화시장 노조 선배들의 실패를 거울삼다
28장 | 바보회를 조직해 진정 단체로 활동하다
29장 | 자신의 생애 같은 ‘맨발의 청춘’을 노래하다

저자 소개 1

남과 북을 셔틀 왕래하며 집필과 강연 활동을 통해 동포들에게 민족화합과 자주통일을 위한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운동가이자 대북사역자이다. Social Movement Group NK VISION2020 설립자이며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역사), 동북아종교위원회(종교), 남북동반성장위원회(경제), 오작교포럼(언론), 문화예술위원회(예술) 등 다섯 개 기관을 두고 활발히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전태일 실록 1, 2권』을 비롯해 『북녘의 교회를 가다』, 『북녘의 종교를 찾아가다』,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평양에선 누구나 미식가가 된다』 외 여러
남과 북을 셔틀 왕래하며 집필과 강연 활동을 통해 동포들에게 민족화합과 자주통일을 위한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운동가이자 대북사역자이다. Social Movement Group NK VISION2020 설립자이며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역사), 동북아종교위원회(종교), 남북동반성장위원회(경제), 오작교포럼(언론), 문화예술위원회(예술) 등 다섯 개 기관을 두고 활발히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전태일 실록 1, 2권』을 비롯해 『북녘의 교회를 가다』, 『북녘의 종교를 찾아가다』, 『평양에서 서울로 카톡을 띄우다』, 『평양에선 누구나 미식가가 된다』 외 여러 권이 있으며, 공저로 『평양냉면』,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 『자주시대를 부탁해』, 『북한, 다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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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612쪽 | 894g | 153*224*30mm
ISBN13
9788964476277

책 속으로

어린 태일이 유아기를 보낼 당시에도 할아버지 전암회는 포목상을 했고 아버지 전상수는 옷을 만들어 납품하는 미싱 기술자였을 뿐만 아니라 큰아버지 전영조와 작은아버지 전영관에 이르기까지 집안 어른 모두가 재봉틀과 연관된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전태일은 특히 영아기 시절부터 아버지의 봉제업을 통해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한 것이다. 동시에 어느 무렵부터 자신도 아버지의 미싱일을 직접 도와주며 어깨너머로 재봉틀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러다가 1965년 8월 26일을 기점으로 평화시장 봉제업체에 첫발을 내디딤으로써 재봉틀과의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2장 _ 대구 출생과 영아기 시절」 중에서

장남 태일은 막내 순덕을 집에 남겨 두고 태삼과 순옥을 데리고 이태원 근처 미군 부대에 가서 꿀꿀이죽을 얻어먹으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부모가 모두 다 저 지경이 되었으니 문전걸식을 해서라도 어린 동생들과 살아갈 궁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처음 당도할 때는 어머니가 문전걸식을 해서 자신들을 먹여 살렸지만 이번에는 반대의 처지가 되었다. 장남 태일이 어머니를 비롯한 온 식구들의 끼니를 직접 책임지게 된 것은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무엇보다 태일이 견디기 힘든 일은 어머니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치료하는 과정이었다. 태일은 미군 부대 식당 개구멍 옆이나 담벼락에 놓여있는 드럼통에 담긴 꿀꿀이죽을 양동이에 퍼 담아 매일 집으로 가져왔다.
--- 「4장 _ 서울의 초등학교 소년 저절」 중에서

청옥학교는 당시 대구시 교육위원회에 정식인가를 받은 정식 중학교 과정의 야간학교였다. 청옥학교는 전태일의 셋방 앞에 넓은 배추밭을 지나면 바로 학교가 나올 정도로 가까웠다. 집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청옥학교에 다녔는데 지금은 명덕초등학교 학교 체육관인 명덕관이 지어져 있었다. … …
삼총사는 서로 성격이 잘 맞아 자주 어울리는 친구들이다 보니 매일 붙어 다니다시피 하는 사이가 됐다. 특히 원섭은 아버지가 봉덕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했기 때문에 낮에는 아버지의 사진관 일을 도와주고 밤에는 청옥학교를 다녔다. 태일과 청옥학교 친구들의 사진이 유난히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바로 원섭의 아버지가 사진관을 운영한 덕분이었다. 재철은 성격이 워낙 남자답고 껄렁껄렁하고 익살스러워서 별명이 “꽝철”이라고 불려졌고 훗날 서울 전농동으로 이사를 한 재철은 태일의 분신 항거하기 이전까지 수시로 접촉을 하며 우정을 나눴다. 군대 간 친구들이나 청옥학교 친구들이 서울로 올라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재철은 태일도 불러내 서로가 어울리며 놀러 다니고 자주 사진도 찍었다.
--- 「6장 _ 대구 중등학교 학창 시절」 중에서

교회건축의 임무를 띠고 창현교회에 부임해 온 김동완은 교인들에게 부임 인사를 했다. 마침 담임교역자였던 이종옥 전도사는 교인들에게 “앞으로 김동완 선생을 호칭할 때는 전도사님이라고 부르세요!” 하며 광고까지 했다. 그러나 간혹 교인들 중에는 어쩌다 그 사실을 망각하고 “선생님!”이라고 습관적으로 부르면 이 전도사가 “전도사님”으로 다시 부르라며 야단을 치곤 했다. 이때 전태일과 그의 가족들은 교회당 건축에 모두 자원하여 무보수로 공사를 도왔다. 특별히 전태일은 동생 태삼을 비롯해서 교회 청년들과 함께 근 두 달여 동안 공사에 매달리며 노동을 했다. 전태일은 온갖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전태일은 시멘트를 모래와 자갈과 함께 버무리는 힘든 일들도 거침없이 했고 그 결과로 건축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어머니 이소선과 동생 전순옥은 늦은 밤을 이용해 교회 몇몇 여성 교인들과 함께 상계동 방면까지 직접 걸어가서 돌을 주워 나르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산에 있는 돌을 나르는 것이 낮에 사람들의 눈에 띄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또한 소선은 낮에는 광주리 행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밤에만 주로 노동봉사 일을 했다.
--- 「25장 _ 창현교회 건축 공사에 헌신하다」 중에서

어느 날이었다. 전상수는 평화시장의 노동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아들 전태일에게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평생 겪으며 형성된 자신의 노동관을 허심탄회하게 꺼내 놓았다. 사실 전상수는 태일이 노동문제를 제기하면 그의 표정이 이내 굳어지면서 “그런 것은 왜 또 자꾸 묻느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 태일이 평화시장의 노동문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아버지에게 자꾸 질문을 하면 “태일이 이놈아. 제발 텍도 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지금은 네가 그런 일에 나설 때가 아니다. 노동운동은 네가 나이가 더 많아지면 그때 해도 된다. 지금은 절대 나서지 마라.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 일인데 하필이면 네가 왜 그 일에 뛰어들려고 하느냐. 절대 못한다. 아버지는 절대 그 일을 허락할 수 없다” 하며 아들이 노동운동에 대한 말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도록 막았던 터였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궁금한 것을 가르쳐 달라며 집요하게 보채는 전태일을 보고 전상수는 아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범상한 각오와 태도가 아님을 알고 그때부터는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이다. 상수는 결국 자신이 겪은 노동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들려주며 아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 「26장 _ 부친을 통해 근로기준법과 노동운동에 눈을 뜨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간 전태일을 새롭게 조명할 생생한 이야기들을 펴내며…

분신 항거 50주년을 맞아 전태일을 조명하려는 열기가 뜨겁다. 그는 오늘날 열사로 호칭된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를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것은 그의 의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전태일! 그는 분명히 한국현대사에 굵은 획을 그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의거 반세기가 지났고 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문헌이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이 책 『인간 해방의 횃불 전태일 실록 I, II』의 출판은 전태일 연구와 평가를 위한 진일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1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인간 전태일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이다. 그 근저에는 37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300인에 달하는 관련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해온 저자의 끈질긴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이 ‘전태일 실록’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때에 따른 생생한 증언들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어쩌면 이 책을 이소선 일대기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소선을 접어두고 전태일을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책은 전태일의 생애를 연대적으로 따라가면서 9부, 50장으로 구성하여 서술했고, 2책으로 꾸몄다. 그리고 말미에 ‘못다 한 이야기’ 들을 덧붙였는데, 사실 이 부분은 전태일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과 논란들에 관해 저자가 추적한 열매들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낙수라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 ‘못다 한 이야기’라는 제목과 달리 각 편이 매우 치열하다. 진실을 밝힌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서술해가는 저자의 견지는 사실이 무엇이냐를 찾아 세세하게 진실을 밝히자는 것인데, 그것은 책의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이 전태일 연구의 본격적인 시작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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