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5부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30장 | 해고, 사표, 면접을 반복하다 31장 | 삼총사 친구들과의 우정과 공사판 막노동 시작 32장 | 평화시장의 젊은 베르테르가 되다 33장 | 소설 형식의 자기고백서를 집필하다 34장 | 박정희 대통령과 근로감독관에게 편지 형식의 진정서를 쓰다 35장 | 허리우드 키드 전태일, 충무로의 단역배우가 되다 제6부 | 생존의지 36장 | 전태일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신념 37장 | 모범업체 ‘태일피복’의 설립 착상과 계획 38장 | 348명의 직원을 두는 모범업체 CEO의 꿈과 좌절 39장 | 현실과 소설 사이, 행동하는 소설가의 꿈 40장 | 잦은 철거에 맞춰 오히려 점점 넓어지는 판잣집 주거 공간 제7부 | 죽음의 결단 41장 | 삼각산 임마누엘수도원(修道院) 건축공사 헌신과 죽음의 결단 42장 | 임마누엘수도원 하산과 투쟁의 시작 43장 | 삼동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투쟁하다 44장 | 분신 항거 1주일 전의 행적들 제8부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45장 | 1970년 11월 13일, 낮 1시 40분, 횃불을 들다 46장 | 엿새 동안의 영안실 투쟁: 1970.11.13.(금)~18일(수), 14일(토), 분신 항거 이튿날 제9부 |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47장 | 15일, 분신 항거 셋째 날 48장 | 16일, 분신 항거 넷째 날 49장 | 17일, 분신 항거 다섯째 날 50장 | 18일, 분신 항거 여섯째 날 덧붙임 | 못다 한 이야기 I. 장례식 전후의 국내 주요 집회와 시위들 II. 전태일 분신 항거 현장에 대한 이견 논박 III. 분신 항거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과 일기장 도난사건 IV. 전태일 일대기와 신상옥 감독 V. 분신 항거, 10.26 사태의 도화선이 되다 VI. 전태일의 분신 항거와 북조선(북한)의 반응 VII. 전태일 사진과 유서 |
최재영의 다른 상품
|
이제 전태일은 자신이 오금희에 대한 사랑에 괴로워하면서도 시들어 가는 평화시장의 동료들과 어린 여공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며 그들을 하루빨리 고통에서 구출해 주어야 한다는 일념에 가득 차 있었다. 아울러 문학청년으로서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문제에 대해 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생각들을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자기고백 형식으로 연이어 작성했다. 여기에 수록된 4편의 미완성 소설 초안들은 말 그대로 완성되지 않은 초안들이 대부분이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약간 난해하거나 조악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전태일로서는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소재로 해서 어떻게 하든 완성하려는 시도가 엿보였고 최선을 다해 소설 초안을 작성했다. 그러나 시간적인 제약과 소설 창작 경험 부족으로 인해 거의 초안 서두에서 모두 중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이 시기에 완성된 소설 초안 1은 ‘가시밭길’이라는 제목인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태일의 소설 초안이다. 완성된 소설 초안 1은 〈사랑이라는 차가운 수갑〉(1969.11)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준오와 정희의 다정한 데이트’, ‘준오와 정희의 이별’, ‘정희에게 보내는 준오의 편지’, ‘준오의 사망 관련 신문기사’ 등 크게 4단원으로 나누어지는 이 소설 초안은 마치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앞날을 내다봤다. 주인공 준오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것과 주인공의 주검이 성모병원으로 옮겨지는 것과 주인공의 사인이 왜곡되는 것 등은 실제로 전태일의 죽음 전후에 발생했던 실화들이었기 때문이다. --- 「33장 _ 소설 형식의 자기고백서를 집필하다」 중에서 1970년 새해 벽두(1월 초)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된 이 글은 이미 전태일이 투쟁의 각오 즉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며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그는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으려는 굳건한 마음을 품고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이 품은 생각조차 정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회 정화의 선구자가 되려고 하는가를 자책한다. 전태일은 이 사회의 선구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작년(1969년)까지 살아온 그의 여정도 이미 선구자적인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이 어린 청년 선구자는 엄동설한의 혹한도 참아야 했다. 주어진 고난과 역경이 아무리 무겁고 아파도 반드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만 했던 것이다. 전태일은 이 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죽음의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야 한다는 결단이 보인다. 아울러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기도를 한다. --- 「36장 _ 전태일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신념」 중에서 전태일은 자신이 일하던 한미사(韓美社)와 중앙피복(中央被服)을 연속으로 그만두고 그 후 중앙시장에 있는 형제사(兄弟社)에 취업하였으나 그곳에서 4개월 정도 재단사로 일을 하다가 결국 또 그만두고 쉬게 된다. 이때 전태일은 잠시 쉬는 공백 기간에도 임시직으로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돈벌이를 하였는데 그 시기가 바로 1968년 12월경이었다. 그 무렵에 모범업체 설립에 대한 최초의 착상을 시작한다. 근로기준법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다른 업주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살만한 모범적인 피복 제조업체 운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자신이 평화시장에서 그런 업체를 직접 설립하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4~5개월 동안 전태일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모범업체 설립에 대한 구상과 연구를 해 오다가 다음 해인 1969년 4월경에 구체적인 계획을 아래와 같이 착수한다. 상상 속의 꿈의 공장이 구체화되는 순간이었다. --- 「37장 _ 전태일의 신앙고백과 종교적 신념」 중에서 삼동회는 그동안 바보회가 걸어왔던 길에서 조금 발전되고 진보된 성격의 모임으로 조직되었다. 전태일은 친구들과 모이면 수중에 가진 돈들이 별로 없으니까 커피 두 세잔만 시켜놓고 나머지 인원들은 거저 주는 엽차를 마시면서 노동조합이나 근로기준법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태일이 말하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이야기가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듣기만 하고 헤어질 때도 많았으며 바보회의 실패를 바탕으로 매우 열의를 가지고 이끌어 나가려는 마음을 먹었다. 모임을 마치면 전태일은 매번 자기 혼자 찻값을 모두 지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난번 바보회가 주로 기업주나 노동청 당국자들을 찾아다니며 평화시장의 실태를 알리며 호소하는 진정단체였다면, 이번 삼동친목회는 평화시장의 참상을 언론과 정부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 폭로하기 위해 그에 따른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는 투쟁단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 「43장 _ 삼동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투쟁하다」 중에서 일기장 원본을 입수하는 과정은 이러하다. 이 기자는 분신 사건 다음 날인 14일(토) 오후 3시경에 영안실에 들려 조의금 접수처에서 방명록으로 겸하여 사용하던 일기장 한 권을 손에 쥐고 신속히 병원을 빠져나간 후 곧바로 전태일이 살던 창동 집으로 이동해 전태일의 사진들과 나머지 일기장도 모두 가져간 것이다. 이는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일기장을 입수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전태일의 일기장들은 훼손과 분실 등의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단초가 됐다. 일기장을 입수했다면 한시라도 지체하지 말고 일기를 공개하거나 아니면 유가족에게 돌려줬어야 했다. 일기장을 자체적으로 입수한 이후에도 신문사 측에서는 웬일인지 1주일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권에 대한 눈치 보기로, 청와대와 노동청 등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 「덧붙임: 못다 한 이야기 _ III. 분신 항거를 보도한 신문 기사들과 일기장 도난 사건」 중에서 |
|
인간 전태일을 새롭게 조명할 생생한 이야기들을 펴내며…
분신 항거 50주년을 맞아 전태일을 조명하려는 열기가 뜨겁다. 그는 오늘날 열사로 호칭된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를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여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것은 그의 의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전태일! 그는 분명히 한국현대사에 굵은 획을 그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의거 반세기가 지났고 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에 관한 문헌이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이 책 『인간 해방의 횃불 전태일 실록 I, II』의 출판은 전태일 연구와 평가를 위한 진일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1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인간 전태일을 상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이다. 그 근저에는 37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300인에 달하는 관련 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해온 저자의 끈질긴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이 ‘전태일 실록’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때에 따른 생생한 증언들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어쩌면 이 책을 이소선 일대기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소선을 접어두고 전태일을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책은 전태일의 생애를 연대적으로 따라가면서 9부, 50장으로 구성하여 서술했고, 2책으로 꾸몄다. 그리고 말미에 ‘못다 한 이야기’ 들을 덧붙였는데, 사실 이 부분은 전태일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과 논란들에 관해 저자가 추적한 열매들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낙수라는 이미지를 갖게 하는 ‘못다 한 이야기’라는 제목과 달리 각 편이 매우 치열하다. 진실을 밝힌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서술해가는 저자의 견지는 사실이 무엇이냐를 찾아 세세하게 진실을 밝히자는 것인데, 그것은 책의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 책이 전태일 연구의 본격적인 시작이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