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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프롤로그 1장 선택 ‥ 13 2장 내 눈동자, 그리고 손과 발 ‥ 29 3장 백인제 ‥ 39 4장 평양, 그리고 기홀병원 ‥ 53 5장 해방, 그리고 신탁통치 ‥ 65 6장 6·25 ‥ 83 7장 목숨을 부지한 죄 ‥ 103 8정 더불어 이룬 사랑 ‥ 113 9장 하나가 된다는 것 ‥ 135 10장 그가 오신 이유 ‥ 151 11장 길을 찾다 ‥ 167 12장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곳 ‥ 181 에필로그 작가의 말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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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제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수저를 든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는 찬을 내 앞으로 밀어주셨다. “그것이 진정 네 목적이라면 주님이 할 터이니 걱정은 접어두려무나.” 어머니의 말이 내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내가 하루 종일 설레고 쿵쿵거렸던 건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고귀함 때문이었는지. 그 뒤에 따라올 명예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마음에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듯 아니, 내가 발가벗겨진 듯 뜨거운 수치스러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애틋함은 더 선명하게 내 마음에 남았다. ‘주님, 만일 하나님께서 이 길을 허락하신다면 내 평생의 삶을 당신께서 허락하신 가난하고 힘없는 환자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비겁한 내가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니었다. --- p.18 난 아내를 볼 때마다 처음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앞에 섰을 때 난 부족함 없이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이렇게 고결한 사람을 두고 마치 내가 선심을 쓰듯 아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정말 예수를, 그리스도를 마음의 주인으로 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예수의 이름을 핑계로 그토록 목이 곧은 사람처럼 교만을 떨었는지. 해볼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난 책임이 없다고 선전포고를 했는지. 그때를 생각하자 아내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내가 보였다. 선택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내 아내의 선택이었다. 예수님을 닮고 있던 그녀에 의해 난 선택된 것이다. 결국 아내를 볼 때마다 하나님이 한 일임을 깨닫는다. 아내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비겁했던 날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날마다 내 눈앞에서 기적처럼 살아 숨 쉬고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 p.37 나의 어려운 상황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 붙잡는 믿음이었다. 이 또한 허락하셨으니, 난 그냥 내 길을 묵묵히 갔을 뿐이었다. 기홀병원에서 힘들게 보낸 10개월간의 시간을 통해, 모든 일을 선하게 이끄신 분은 결국 하나님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난 다시 한 번 다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길 가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를 중상모략했던 두 의사의 거짓이 모든 병원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더 이상 기홀병원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 두 사람은, 결국 시골행을 택했다. 나에게는 스스로 원수를 갚을 이유가 없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말씀이 실제가 되어 내 삶을 이끌고 있었다. --- p.63 이 작은 병원에서도 얼마나 많은 시기와 질투가 존재하는가? 우리는 모두 그냥 사람이다. 예수의 뒤를 따르겠다고 자처한 목사나, 사람의 생명을 붙잡아 보겠다는 의사나 세상이 볼 때는 성직자요, 명예로운 사람들이지만 이들 또한 그냥 사람이 아닌가? 사람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이번 일로, 평화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셨다. 진정한 평화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실 때만 가능한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인 이상 결단코 맞볼 수 없는 것이 평화인 것이다. --- p.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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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내가 익히 들어왔던 ‘장기려 박사’의 수식어는 참으로 화려했다. 이미 많은 책으로 나와 있는 그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원고 의뢰를 받고, 처음 설레는 마음으로 자료들을 살폈다. 하지만 이 흐를수록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장기려 박사’의 삶의 무게가 내 어깨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부담감이 얼마나 컸던지 컴퓨터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한 칸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덮는 날이 허다했다. 그렇게 버거운 날이 지나고, 다시 그의 인생의 기록들을 처음부터 돌아보았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삶, 항상 누군가와 더불어 이루었던 하나님의 뜻.’으로 함축되는 인생이었다. (중략) ‘장기려 박사’가 남긴 업적이 실로 크지만, 그가 가슴에 품은 삶의 무게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을 듯하다. ‘성자’라는 한마디로 표현하기에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 너무 치열했던 것이다. ‘장기려 박사’가 태어난 시기는 이미 일제 강점기였고, 그는 살을 도려내는 듯, 매서운 칼바람 같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매일 밤 달을 보며 ‘저 달을 북녘의 아내도 보겠지.’하는 한자락 소망으로 하루를 견디며 살았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그의 아픔을 온전히 알고 계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셨고, 위로가 되신 분도 하나님뿐이셨다. 그러했기에 그 모진 삶을 견딜 수 있었으리라. 그의 삶은 사명을 쫓아 살았던 삶이 아니었다. 단지, 그는 부르신 곳에 있었고, 그곳은 사명이 되었다. 2015년 10월 곱게 단풍이 물든 가을 날, 박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