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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ㆍ그림이라는 든든한 백신
1부ㆍ마음의 중심을 잡다 -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게 매화 피는 날, 나는 졸부가 되고 싶다 그녀를 배웅하는 길, 꽃비 쏟아지다 쌈밥집 아줌마의 행복 레시피 성독과 리딩, 소리 내어 읽다 여인, 그림 밖으로 날아오르다 2부ㆍ더 좋은 곳을 향해 나아가다 - 굽잇길도 걸음걸음 서울에서 찾은 무릉도원 차를 마시는 시간 ‘바늘과 실’처럼 그림에는 이것! 조선의 ‘프로 여행꾼’이 가르쳐준 것 산맥이 바다를 이루다 3부ㆍ선택의 기로에서 생각에 잠기다 -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금강산 바위 속에 앉은 부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찌 아는가 스테인드글라스가 절로 들어간 까닭은?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의 의미 4부ㆍ옛것과 새것을 하나로 꿰다 - 옛 그림이 품은 지혜 소녀의 웃음에 ‘82년생 김지영’은 없다 헛것을 보고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뒷모습이 아름다운 그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마치며ㆍ시대를 넘나드는 작품들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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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소개한 작품들은 한결같이 전통의 현대화를 고민한 결과 탄생한 걸작들이다. 작가들은 조선시대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작품을 완성했다. 그들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그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참신하면서도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낸 작품들을 제작했다. 시각적인 표현을 특징으로 하는 미술작품에서는, 전통은 계승하되 구태의연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현대적인 감각까지 곁들여야 한다는 고민까지 떠안아야 한다. 전통의 계승에 무게중심을 두다보면 베끼기나 표절이라는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이런 고민에 어떤 해답을 내놓았을까? 그 해답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다.
--- 「시작하며 : 그림이라는 든든한 백신」 중에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잡초라 통틀어 부르기에는 너무 고운 풀꽃들이 맑은 하늘을 배경 삼아 봄날의 화사함을 노래한다. 목숨 가진 꽃이라면 전부 뛰어나와 살아 있음의 환희심을 뚝뚝 떨어뜨리는 날이다. 어느 꽃이든 조재임의 손을 거치면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고귀한 꽃다발로 전환된다. --- 「그녀를 배웅하는 길, 꽃비 쏟아지다」 중에서 「만물상 정토」는 그가 느낀 종교적 체험을 풀어낸 작품이다. 화면은 아래쪽 부드러운 야산 위에 뾰족뾰족한 바위산을 올려놓은 듯 그렸다. 그 모습이 마치 한 송이 연꽃 같다. 밥을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아놓은 모습 같기도 하고, 팽이버섯을 컵에 가득 담아놓은 것 같기도 하다. 부드러운 미점의 야산과 날카로운 수직준의 바위산을 대비되게 그리는 구도는 겸재 정선 이래로 금강산을 그리는 수학공식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전통을 이선복도 이어받았다. --- 「금강산 바위 속에 앉은 부처」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주먹질이 벌어지고, 한편에서는 화해의 방법을 찾는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색깔’이 다르면 무조건 밀어내기 위해 사생결단하듯 덤비는 행위였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세력을 불러 칼을 내려놓고 대화와 타협을 하게 만든 중요한 정책이다. 유영호 작가는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탕평이 당색이라는 단순한 ‘프레임’ 안에서의 고민이었다면, 그의 작품은 한국을 뛰어넘고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의 문제로 끌어가고 있다. ---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중에서 이 책에서 살펴본 동시대 작가들은 과거라는 낡은 고정관념의 빗장을 열고 그 안에서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보물을 꺼낸 발견자들이다. 그들은 그 보물단지에 자신만의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그 과정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어느 지점에 서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들의 고민은 순전히 개인적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기 위해 작업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의 결과물이 다른 사람의 공감을 끌어낸다. 작가들의 고민이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고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과 함께 곁들인 조선시대 선비들의 고민도 마찬가지였으리라. --- 「마치며: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들의 만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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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이 꽃과 나무라면 그것을 담는 화분은 전통이다. 모든 꽃과 나무를 주어온 화분에만 심을 수는 없다. 항상 마음에 드는 좋은 화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 기존의 것만 고집하지 않고 새 화분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전통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기법이나 구도 혹은 색채가 현재의 미감을 담기에는 너무 낡은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작가들은 파격과 혁신을 선택한다. 과거에서 정신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전부 새로운 형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예술작품은 시절인연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시절이 아니고서는 결코 탄생할 수 없는 시절 그림으로 거듭난다.” _「시작하며」에서
옛것과 새것을 하나로 꿰다 전통 판소리를 현대적 리듬의 국악으로 구현해 주목받는 이날치 밴드와 어지러운 시대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한국 대중에게 친숙하게 소환한 가수 나훈아의 「테스형!」은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전통을 바라보는 시각, 오래된 것의 가치를 변화와 혁신을 통해 오늘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이러한 흥미로운 접목은 우리 미술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서양미술에서 쓰는 재료인 스테인드글라스를 과감하게 불화에 적용함으로써 미술의 폭을 확장시킨 임종로의 「수월관음도」, 조선의 대가들의 작품을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소환해 한 폭에 담은 루씨쏜의 「유유자적」이 그러하다. 이처럼 『시절인연 시절그림』은 ‘전통의 현대화’의 무대를 오늘날의 미술계로 옮겨, 전통을 기반으로 혁신적이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작업을 시도한다. 송필용의 「만물상」(2000), 박대성의 「불밝힘굴」(2006), 그리고 이선복의 「만물상 정토」(2013).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세 작품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지은이는 모두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방식대로 소화한 작품으로 바라본다. 송필용은 동양화를 서양화로 그릴 때 재료의 특성에서 봉착한 한계를 분청사기의 조화 기법과 박지 기법을 활용해 뚫고 나가며 고정관념을 탈피했다. 박대성은 어떤 위치에서 봐도 한눈에 들어올 수 없는 토함산과 불국사를 한 화면에 압축해서 표현했는데, 이 역시 정선에게 배운 구도법이다. 이선복은 민화의 금강산 그림을 통해 정선의 진경산수에서 민화로 넘어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많은 작가들이 금강산을 그린 것은 외양적인 아름다움에 반해서만 아니라 불교와 도교와 관련된 우리 민족의 전설과 설화가 풍부하게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은이는 동시대 작가에게서 옛 그림의 흔적을 찾고, 그 의미를 밝히며 그림 안팎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준다. 인연이 모여 이야기가 되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은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로 ‘모든 인연에는 다 때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야 할 인연은 만나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옛 그림과 동시대 그림의 만남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인연이다. 그런 작품들 가운데 지은이의 삶 속에 들어와 깊은 울림을 남겨 ‘시절그림’이 된 작품도 있다. 이를테면 조재임의 「바람숲」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람과 함께 보았던 봄날의 꽃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의 마음이 되었고, 이수영의 「쌈밥집의 풍경」은 가족을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엄마의 모습에 주목해 일상의 기록화가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제주에 살며 제주의 풍경을 그린 작가 김성오의 「오름결」은 날마다 사표를 품으며 귀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하는 인생의 나침판이 되었다.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 적용해보는 것 자체가 바로 창작이다. 좋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절인연을 만났으니 그 인연에 흥건히 젖어들기를 권한다.” _「시작하며」에서 『시절인연 시절그림』은 ‘재발견’ ‘재해석’이라는 키워드를 테마로 삼아 조선시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그림 여행을 떠난다. 시대를 아우르는 삶의 다양한 장면에서 지은이가 길어올린 메시지는 일상을 잃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현대인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물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위로와 용기를 전해준다. 이 책을 통해 삶의 굽이마다 힘이 될 수 있는 저마다의 ‘시절그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