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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소리로 만나는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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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ㅣ발문ㅣ이수호 7
ㅣ책을 펴내며ㅣ 15

이시백 소리소설 전태일전 23
임진택 창작판소리 판소리전태일 71

ㅣ작가 후기ㅣ 125

저자 소개 2

70~80년대가, 오늘날 정겨운 이야기로 둔갑하지만 사실 그 속은 슬픔과 억울함이 넘쳐흐르는 시대라는 것을 저자는 인식한다. 이를 역사소설의 형식 대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내는게 특징적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현재 경기도 수동면 광대울 산중에서 주경야독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작품으로 장편소설 『나는 꽃도둑이다』(2013), 『종을 훔치다』(2010) , 소설집 『갈보 콩』(2010) 과 자유 단편소설집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 연작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
70~80년대가, 오늘날 정겨운 이야기로 둔갑하지만 사실 그 속은 슬픔과 억울함이 넘쳐흐르는 시대라는 것을 저자는 인식한다. 이를 역사소설의 형식 대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내는게 특징적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8년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현재 경기도 수동면 광대울 산중에서 주경야독하고 있다. 그동안 펴낸 작품으로 장편소설 『나는 꽃도둑이다』(2013), 『종을 훔치다』(2010) , 소설집 『갈보 콩』(2010) 과 자유 단편소설집 『890만 번 주사위 던지기』(2006), 연작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 『벌레들』(공저),『응달 너구리』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2013), 산문집 '당신에게, 몽골'(2014) 이 있다. 제1회 권정생 창작기금과 2012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은 바 있으며 거창평화인권문학상(2014), 11회 채만식 문학상(2014)을 수상했다.

이야기를 듣기 좋아하는 증조부와, 이야기하기를 즐거워하는 부친의 역사적 사명을 이어받아 어쩔 수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메고 떠돌아다니는 이야기 보부상. 공식적으로는 소설가이나 정신적으로는 유목민을 자처하는 이시백은 스스로 말하기를, 한번 걸리면 평생 몽골의 초원과 황막을 헤매게 되는 치유불가한 ‘몽골 바이러스’의 숙주라 밝히고 있다. 요즘은 역병으로 발이 묶여, 초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리움을 유튜브 채널 [몽골가는길]로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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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민예총 부회장. 1985년 극단 `연희광대패` 설립 1995년 극단 `길라잡이` 상임연출 겸 예술감독 2006년 3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한국 마당극의 창시자.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 시절 김지하 시인의 영향으로 탈춤과 연극을 통해 문화운동을 펼쳤고, 동양방송(TBC) PD 시절에는 정권진 선생으로부터 `심청가`를 사사받으며 판소리를 익혔다. 1985년 마당극 전문극단 연희광대패를 창립한 후 꾸준히 민족예술운동을 꾸려왔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상여객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그는 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민예총 부회장.
1985년 극단 `연희광대패` 설립
1995년 극단 `길라잡이` 상임연출 겸 예술감독
2006년 3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한국 마당극의 창시자. 서울대 외교학과 재학 시절 김지하 시인의 영향으로 탈춤과 연극을 통해 문화운동을 펼쳤고, 동양방송(TBC) PD 시절에는 정권진 선생으로부터 `심청가`를 사사받으며 판소리를 익혔다. 1985년 마당극 전문극단 연희광대패를 창립한 후 꾸준히 민족예술운동을 꾸려왔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상여객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그는 이 감독의 `낮은데로 임하소서`와 `과부춤`의 각색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방송국 프로듀서로 재직하였으나, 1981년 TBC가 KBS로 통폐합되어 강제 해직된 후, 문화운동가이자 명창으로 활동 중이다. 전통연희에 바탕을 둔 민중연극인 ‘마당극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문화운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했으며, 시대와 역사를 담아내는 새로운 ‘창작판소리’를 실현했다. 민족예술과 민중예술의 지평을 확장함과 동시에 민주화운동에 기여했으며, 새로운 창작판소리 열두 바탕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여 <백범 김구> <남한산성> <다산 정약용> <윤상원가> <세계인 장보고> <전태일> 등의 판소리 사설을 창작해 공연했다.

[필모그래피]

천년학(2007)|주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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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8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26쪽 | 160g | 130*190*20mm
ISBN13
9791189898410

책 속으로

태일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는데, 구두통을 메고 평화시장을 오가다가 ‘시다 구함’ 광고를 보고, 헌 옷 기워 입고 목욕재계한 후 학생복 맞춤집 삼일사를 찾아간다. 청계천 6가의 평화시장이 어떤 곳이더냐, 악취 풍기는 청계천 천변에 무허가 판자촌들이 다닥다닥, 빈민들이 득실득실, 움막이건 가난뱅이건 지저분한 것들은 말끔히 덮어라! 썩든 말든 안 보이면 장땡, 호박 구덩이에 똥 묻듯이, 눈 가리고 아웅이라. 1959년에 시작된 청계천 복개공사가 1961년에 완공되어 3층 건물 평화시장이 들어섰으니, 연건평 7,400평, 피복 제조업자, 의류가게 수백 개가 닭장처럼 채워진다.

시다가 무엇이냐, 기술을 배우는 견습공이라. 말이 좋아 공원이지, 하기 힘든 궂은 일, 귀찮은 잔심부름, 도맡아서 하는 밑바닥 노동자라. 미싱사, 재단사를 모시고 실과 단추를 나르고, 하루 종일 뜨거운 다림질, 실밥 뜯고 옷감 펼치고, 어이, 시다! 출출하니 빵 사와라, 목마르다 물 떠와라, 이리 와라 저리 가라, 오라 가라, 오락가락, 다리가 넷으로도 모자라고, 손이 발이 되어 발발발발 기어 다녀도 툭하면 머리통 쥐어박히기 십상이네.

시다 첫 월급이 천오백 원, 일당으로 오십 원꼴이니, 하루 하숙비 백이십 원에도 모자라다. 아침 일찍 구두 닦고, 밤에는 껌을 팔아 시다 기술 배우자니 눈물겹고 허리 휜다. 고된 시다살이 중에도, 서울 어딘가에서 고생하실 어머니 만날 생각, 배가 고파 울고 있을 동생들 생각, 이를 물고 기술을 배우더라. 일찌감치 아버지 일을 도우며 배운 재봉 기술, 주인 눈에 쏙 들어 미싱 보조로 승진한 태일, 월급도 삼천 원에, 잔심부름 면제되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시백, 소리소설 〈전태일전〉」중에서

〈아니리〉
1970년 10월 6일, 삼동친목회는 노동청장에게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 개선 진정서’를 제출한바, 이튿날 시내 각 신문사 게시판을 오가며 기다리던 태일이가 석간신문 나오자마자 살펴본즉, 그날 〈경향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 평화시장의 참상에 관한 보도가 실렸것다. 지성이면 감천이요, 두드리면 열린 것이라.

〈중중모리〉
태일이가 감격하여 바로 신문을 사서 들고
평화시장으로 달려간다.
“어허. 삼동 동지들아, 어서 나와 신문 보라.
골방서 하루 열여섯 시간, 어린 소녀 2만여 명 혹사.
거의가 직업병, 노동청 뒤늦게 고발키로……
어허, 삼동 동지들아, 어서 나와 신문 보라……”
삼동회원들 반기하여 바삐 신문을 읽어보더니만,
“신문을 더 사서 사람들에게 알리자.”
전당포로 달려가서 차고 있던 탱크시계를 맡겨놓고
대출 받은 돈으로 신문을 싸그리 사온다.
“평화시장 기사 특보.”
“신문이요 신문, 경향신문.”
“신문 한 장에 이십 원.”
“특보요, 평화시장 기사 특보요.”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까지
건물 층층이 돌아다니며 목이 터져라 외쳐대니
어떤 사람 돈을 내며,
“한 장 주시오. 내 신문 사서 읽어보긴 처음이요.”
또 어떤 사람은 백 원을 내며
“수고 많소. 이걸로 신문 더 갖다 팔으시오.”
신문 300부가 삽시간에 팔렸구나.

---「임진택, 창작판소리 〈판소리 전태일〉」중에서

출판사 리뷰

지은이의 말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이야기를 ‘판소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 후 전태일 형이 직접 남긴 일기와 수기, 편지 등을 접하면서 받은 충격적인 감동은 판소리를 단순히 ‘만드는’ 정도를 넘어 ‘판소리로 새겨 놓겠다’는 충동이 생겨나게 했다. 앞서 나는 ‘형체 복원’이라는 고고학적 용어를 등장시켰거니와, ‘새긴다’라는 공예나 판화에서나 사용하는 미술 용어로도 표현했다. 노래를 ‘부르는’ 수준을 넘어, 그림을 ‘그리는’ 정도를 넘어, 소리로 ‘새긴다’는 것은 우리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刻印시킨다는 뜻이다. 나는 전태일 형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겨서’ 세상에 더 널리 전하고 후대에 남기기 위해 판소리라는 양식을 선택한 것이다. -임진택, 「이 책을 펴내며」에서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50해를 맞아, 임진택 선생이 그간 해온 우리의 근대사 창작판소리 열두 바탕에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담으려는데, 그 이야기를 써보라 하였다. 몇 달을 끙끙거렸으나, 워낙 소리에는 재주가 모자라 짧은 소설 한 편을 짓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임진택 선생의 제대로 된 판소리 대본과 내 엉거주춤한 소설을 묶어, ‘이야기와 소리로 만나는 전태일’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시백, 「작가의 말」에서

추천평

우리는 전태일이라면 항상 숙연해지고 마음이 저려옵니다. 꽃다운 스물두 살 나이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귀한 것을 더 필요한 남을 위해 바친 그 순결하고 숭고한 마음과 실천이 한없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들에겐 언제나 마음의 빚이었지요. 임진택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가 시대의 소리꾼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많은 창작판소리를 만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나누어주며 미소 짓고 있는 태일이의 얼굴이나, 자기를 태워 불꽃이 되어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외침을 보며 들으며 살아왔으니까요. 내가 전태일재단에서 일하게 됐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임진택은 전태일을 꼭 판소리로 부활시키겠다고 공언을 했으니까요. 그 꿈이 전태일 50주기에 이루어지게 돼서 너무나 기쁩니다. -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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