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용은 없다 · 7
작가의 말 · 344 |
이시백의 다른 상품
|
즐거운 기차 여행을 마친 양코배기 대통령은 무사히 영빈관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검은 색안경을 쓴 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코배기 대통령은 주둔국의 왕을 보자마자, 털이 숭숭 돋아난 팔뚝을 천천히 손아귀에 넣고 힘차게 밀어 넣었다. 하우 아 유! 환영식에 만전을 기하려 몸소 영빈관 문 앞까지 나와 있던 애꾸왕은 경악했다. 자신을 향해 감자부터 먹이는 양키의 소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일까. 모멸감에 몸을 떨며 환영식을 가까스로 마친 왕은 즉시 양코배기 대통령을 수행했던 통역관을 불러들였다. 그를 문초한 끝에, 그것이 기차를 향해 어느 빌어먹을 촌놈의 자식이 저지른 만행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 p.64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아는 법이었다. 철거에 나선 천변족들은 감독관의 눈을 피해 판자의 못들을 얌전히 뽑아서 언제든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철거했다. 그건 철거가 아니라 정교한 해체였다. 해체 작업을 끝내고 돌아가면 집주인은 밤을 새워 판잣집을 다시 지었다. 그건 아주 손쉬운 조립이었다. 낮이면 사라졌다가 밤이면 되살아나는 판잣집들을 감독관들은 형언할 수 없는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달이 지나도 산꼭대기의 판잣집이 줄지 않자 왕은 격노하여, 시장을 공병부대 출신의 군인으로 교체했다. 새 시장은 직접 현장에 나와 불도저로 산꼭대기에 다닥다닥 붙은 무허가 판잣집들을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 p.91~92 군견을 데리고 수색 작전에 나선 금룡은 푹푹 삶아대는 더위에 가쁜 숨을 헐떡이다가 문득 신묘한 생각을 떠올렸다. 더위에 고갈된 체력을 회복하고, 성가신 임무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었다. 금룡은 동료들에게 정글을 뒤져 급히 땔감을 모아 오게 시켰다. 그러곤 꼬리를 흔드는 트리거 병장의 목에 밧줄을 걸어 야자나무에 매달았다. 더위에 지친 데는 개장국만 한 보양식이 없었다. 트리거 병장은 철제 탄약통 속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갔다. 모처럼 맛보는 별미에 동료들은 이마에 땀을 뚝뚝 흘리며 기름진 트리거 병장의 살과 국물을 포식했다. --- p.148~149 나라에는 새로운 왕이 등장했다. 그동안 군인 출신의 왕 밑에서 툭하면 광장에 불려 나가 궐기대회와 반공 웅변대회에 시달렸던 국민들은 기업가 출신의 왕에게 환호했다. 지독한 안짱다리로 병역이 면제된 그는 군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들리는 말로는 건설 현장에서 하도 삽질을 많이 해서 그의 다리가 안으로 굽었다는 소리도 있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주를 지녔다. 그가 손을 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했다. 이런 재주를 지닌 왕이 나타나는 곳마다 그의 손을 잡아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 p.213 연구원장의 말로는, 그동안 혈액을 공급해오던 ‘피의 젖소’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정부가 피 장사에 나선 명분이라고 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기르는 데 들어가는 양육비는 3억 896만 4000원이라고 한다. 자신도 먹고살기 힘든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은 아예 결혼을 회피했다. 심지어 상대를 책임질 형편이 되지 못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랑해’라는 말은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랑의 고백도 없이 하룻밤을 동침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밀고 당기는 연애의 과정도 아니었다. 무어라 말하기 애매한 관계였는데, 전문용어로는 ‘썸’을 탄다고 했다. --- p.331 |
|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 근대사
하지만 금룡은 특유의 저돌성으로 삶을 꾸려나가는데, 그게 숭고하거나 아름답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신체적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마구잡이식에 더 가깝다. 그런데 이 마구잡이식의 삶이 묘한 전형성을 창출한다. 왜냐하면 금룡의 가족이 처한 상황이 마구잡이식을 당연시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적 고통을 못 느끼는 특이함으로 마구잡이로 살아가는 금룡에게서 웃음이 자꾸 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 신체적 특성은 국가의 심기를 자꾸 거슬리게 하는데, 작가는 여기에 무슨 큰 정치적 상황을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애꾸왕 체제 자체가 민중의 건강성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룡이 약장수를 따라다니면서 기획한 차력 쇼 ‘내 배에 총을 쏴라’는 우리를 웃게 하면서 동시에 국가와 민중의 대립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어린이날에 예정되었던 금세기 최고의 차력 쇼는 열리지 못했다. 배에 총을 맞아야 할 주인공은 그 시간에 정보기관의 축축한 지하실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통닭구이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온갖 고문과 협박으로 그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왕의 지극한 마음과 영험한 통치로 유사 이래 최고의 태평성세를 누리고 있는 시점에, 배고파 못 살겠다고 제 배에 총을 쏘라는 쇼를 벌인 저의가 무엇인지, 북쪽 나라의 지령을 받아 해괴한 망언으로 민심을 흐려 국력을 저하시키려는 흉측한 이적 행위를 하려던 것은 아닌지를 여든아홉 번이나 물었다. 남북의 대립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던 애꾸왕에게 금룡의 차력 쇼는 민중을 술렁이게 할 개연성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정보기관을 동원해 금룡을 고문한다. 정보기관이 금룡을 붙들어가 고문을 가하는 장면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나온다. 하지만 금룡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특성으로 정보기관을 자기도 모르게 골탕 먹이고, 나중에는 금룡에 대한 연구까지 진행되지만 결과는 갈수록 오리무중이 되고 만다. 소설의 끝 부분에 가서야 작가는 금룡과 은룡의 존재를 겹쳐놓는다. 금룡의 쌍둥이 동생이자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그림자 같은 은룡은 소설 속 인물로서는 다르게 나타나지만 작가의 심중에서는 금룡과 은룡이 한 존재였던 것이다. 즉 작가는 민중의 집단적 속성을 각자의 인물에게 배분해 캐릭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비루하고, 비겁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이(利)에 민감하지만 동시에 강건하고, 노래를 잘 부르고, 꿈을 꾸고, 슬픔에 지지 않기도 한다. 국가에 직접적 저항보다는 자신들이 꾸려가는 삶의 결에 따라 휩쓸리면서 동시에 저항한다. 하지만 작가는 ‘민중 승리’를 외치지 않는다. 도리어 약간 비극적으로 소설을 끝맺는다. 사람들은 용이 되기를 꿈꿨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하늘에서 떨어진 미꾸라지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들에겐 이미 기어 올라갈 하늘이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기보다 땅에 떨어진 동전이나 빈 종이 박스를 줍기 바빴다. 하늘이 사라지자 용도 사라졌다. 있다 해도 올라갈 하늘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가 이시백의 리얼리즘이기도 하고, 현실 인식이기도 하다. “올라갈 하늘”이 없는 한 누구도 용이 되지 못한다. 개천의 암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올라갈 하늘”이 없다는 작가의 현실 인식은, 둔중하게 독자의 가슴을 때릴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을 듣고 슬퍼지는 것은 오늘날 참 희귀한 덕목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어릴 적 조부에게 들었던 이야기의 재미를 따라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과연 『용은 없다』는 유장한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근대사에 육박하고 있으며, 민중적 관점에서 우리에게 근대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