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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부 번 煩 2부 온 穩 3부 정온 靜穩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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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만 한참을 내려다보던 윤수가 무거운 입술을 뗐다.
“그냥, 허무해요.” 긴 침묵이 한동안 다시 흘렀다. “이렇게 미친 듯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까지 한 마리 레밍이 되어 달려가는 꼴이 우습잖아요.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 1부 번煩 28쪽 “쿵!” 마치 벗어 놓은 옷자락처럼 스르르 의자에서 굴러떨어진 요한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찧으며 쓰러졌다. 깜짝 놀란 수사관이 몸을 숙여 요한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119 불러, 빨리!” --- 1부 번煩 45쪽 “아빠는 정말 알고 싶었어. 그게 대체 어떤 상태인지. 힘들고 어려울 때도, 기쁘고 즐거울 때도 미동도 하지 않는 마음 상태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어. 그래서 나도 반지에 이 문장을 새기고 평정심을 잃고 흔들릴 때마다 고요함을 구해 왔단다.” 목소리에 슬픔이 서려 있었다. --- 1부 번煩 53쪽 당장 제자리로 모든 걸 돌려놓으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분노가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꾸역꾸역 다시 삼켜 넣었다. 이제 휴대전화와 인터넷만 해지하면 지구라는 행성에서 요한의 이름으로 남은 흔적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눈사태 직전의 히말라야 산허리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차올랐다. --- 1부 번煩 71쪽 고요하면 맑아진다. 맑아지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비로소 볼 수 있다. --- 2부 온穩 89쪽 어서 광야로 가야 한다. 절대 고독 가운데로 들어가서 나 자신을 만나야 한다. 병원에서 췌장암 이야기를 듣던 밤, 내 안에서 꿈틀대며 계속 말을 걸어온 존재. 지난 33년의 세월 동안 한 번도 마주 대한 적이 없는 진짜 거울. 바로 나 자신. --- 2부 온穩 95쪽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구절을 읊조리는 순간 칸은 절대 고요 상태로 접어들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그 어떤 불안과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 지극한 평화가 영혼에 임했어. 정온靜穩의 순간이었지. 고요함과 평온함. 바로 그 순간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어. --- 2부 온穩 117쪽 가면을 쓰고, 타인으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얻기 위해 몸부림쳐 온 삶.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야기되는 불안과 두려움. 자기방어를 위한 선 긋기. 만족할 만한 인정과 존중을 받을 때는 잠시 긴장을 풀었다가 또 언제나 파도처럼 밀려오는 외부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기만에 빠져 정신 줄을 놓을 수 없었던 삶의 연속이 아니었던가? --- 2부 온穩 125쪽 아. 아. 안 돼! 이건 요한이 생각하던 시나리오에 포함되지 않는 죽음이다. 고요한 광야에서 아무도 모른 채 조용히 사라지길 원한 것이지 요란스러운 폭풍에 휩쓸려 이렇게 사고로 죽는 것은 아니었다. --- 2부 온穩 139쪽 침묵. 더 큰 침묵. 구덩이 속은 완전한 고요로 덮였다. 저 위에는 지상에서 가장 험악한 폭풍이 할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고요함을 느낄 수 있을까? --- 2부 온穩 145쪽 나는 결국 내 인생을 하루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거야. 바보처럼……. 고요한의 삶을 살지 못한 채 고요한처럼 보이는 삶에서 단 하루도 벗어나질 못한 거야. --- 2부 온穩 147쪽 요한은 이를 악물고 속삭임을 물리쳤다. 갑자기 배낭에서 리코더를 꺼내 들었다. 요한은 두 손으로 리코더를 쥐고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저리 가! 너 따위의 속삭임에 협조할 수 없어!” --- 3부 정온靜穩 161쪽 “할머니는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했대요. 그래서 평소에 걱정거리, 염려 거리, 불안한 생각이 들 때마다 종이에 연필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써서 ‘불안을 담는 항아리’에 집어넣었대요. 다음 수요일 전까지는 잊어버리고 그 문제에 대해선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기로 했대요. - 3부 정온靜穩 176쪽 “반대로, 이제 완벽한 백지상태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지금, 건강도 말끔히 회복한 지금……. 기뻐 뛰고 마음껏 즐기며 좋아해야 마땅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안이 일렁거려. 도대체 이유가 뭘까?” --- 3부 정온靜穩 180쪽 이대로 영원히 요한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콜 니드라이」 음률과 함께 몸 밖을 빠져나가 별들 사이로 흘러들었음을, 허공을 나는 바람에 실어 아주 먼 곳으로 떠나보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런 평온함도 잠시뿐이었다. --- 3부 정온靜穩 195쪽 포근하고 따스했다. 세상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결함, 풍요로움, 위엄이 가득했다. --- 3부 정온靜穩 20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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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모두가 힘겨운 한 해였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격변의 시간을 겪으며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는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삶의 모든 기반이 흔들렸다. 당장 먹고 사는 일부터 고민이 깊어만 간다. 내일의 변화는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바짝 다가선다. 예상치 못한 고통이, 슬픔이, 절망이 우리를 삼키려 할 때, 그 두려움의 파도에 휩싸이는 순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실도, 슬픔도, 실의도 철저하게 개인적인 감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에 놓여 있고 그 반응도 모두 다르다.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것은 오롯이 나 자신의 몫이다. 이 외롭고 힘든 역경이 충격으로만 남지 않고 오히려 그 가운데서 깊은 의미를 발견하며 더 큰 가능성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주인공을 따라 몽골의 드넓은 사막을 여행하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은 그 답을 찾는다.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을 찾는 주인공 요한의 여정에서 ‘정온’의 의미가 드러난다. “포근하고 따스했다. 세상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고결함, 풍요로움, 위엄이 가득했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209p. “기쁨이 안개처럼 밀려들었다. 정온이 세포마다 퍼져 흐르고 있었다.” -211p. 세상에 없는 고요와 변화의 공간이 신비롭게 놓여있다. 어떻게 세포마다 '정온'이 퍼져 흐를 수 있을까?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들리는 소리는 무엇일까? 기쁨이 안개처럼 밀려드는 따스함은, 그 고결함과 풍요로움의 깊이는, 빛나는 위엄이 차오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죽음만이 유일한 진실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었다 “요한은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헐떡였다. 요한이 빠진 바위틈새의 입구가 보였다. 어떤 모래바람도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는 못한다. 구멍 위로 모래바람이 할퀴며 지나는 무서운 굉음이 들렸다. 악마의 울부짖음 같은 끔찍한 소리가.” -141p. 주인공 요한은 느닷없이 닥쳐온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며 달리던 걸음을 멈춘다.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들은 죽음 앞에 힘을 잃었다. 살자고 버둥거렸던 그 모든 시간을 내려놓는다. 유일한 진실 앞에서 거짓된 가면들을 벗어 던지고 자신이 써온 소설의 배경이었던 몽골 사막으로 서둘러 떠난다. 광활한 자연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요한에게 경이의 순간들을 선사한다. 『정온靜穩』은 용맹함을 준다. 세상 온갖 잣대에 휘둘려온 일상을, 멀리 떨어져 조망할 용기. 주인공이 마주하는 질문들에 함께 흔들려가며 본질을 마주할 용기를 준다. 결국 독자의 삶을 든든히 지지해주는 정신적 안식처가 된다. 우리 앞에 수많은 새벽이 있다 “신비로운 음성은 요한을 초대했다. ‘요한. 내 안으로 들어오라.’ 절대 사랑.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자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요한은 영혼의 격동을 느꼈다. 그 음성은 날카로운 메스로 요한의 상처를 열고, 모든 어둠의 흔적들을 말끔히 지워냈다. 빛의 가루가 요한의 상처들 위에 뿌려졌다. 따갑지만 이내 달콤해졌다.” -210p. 요한은 깊디깊은 영혼의 겨울을 겪어내며 값진 정온을 얻는다. 요한은 최악의 상황으로 걸어들어갔고 영혼의 깊은 바닥을 맛보았다. 바닥을 딛고 수면 위로 올라와 다시 숨을 쉬었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다른 시작의 끝에서 시작한다는 세네카의 말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온의 비밀을 온몸으로 경험한다. “고요하면 맑아진다. 맑아지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비로소 볼 수 있다.” -89p. 다시 볼 수 있는 시력을 회복했을 뿐이다. 상실한 것, 절망하고 실패한 것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회복한 시력으로 부스러진 생의 의미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삶은 어쩌면 우리가 이해하거나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것이라기보다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던 일들, 기억 속에 둥지를 틀고 있었던 모든 지나간 것들의 형체들이 커다란 의미로 빚어지는 것일지 모른다. 자유를 향하여 Otium Cum Dignitate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는 라틴어로 '위엄으로 가득한 평온함'이란 뜻인데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표현이야. 내 안에 절대 가치가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지.” -189p. 요한이 발견한 오티움 쿰 디그니타테otium cum dignitate는 가을을 위해 여름을 견디는 것과 같은 적극적인 평온함이다. 삶 속의 많은 부분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위엄이다. 쓸쓸하고 고단한, 불안하고 부끄러운 작은 일상들이 오히려 맑고 밝아진 시선 속에서 거듭나는 그 무엇이다. 잔잔한 음악이 귓속을 맴돈다. 『정온靜穩』 마지막 장을 흐르는 「콜 니드라이」 선율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내가 원하는 걸 언제 해봤지?' 이제는 역경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 실패와 가능성을 뒤섞어 정온을 만들어내는 나만의 필살기를 갖는다. 각자 자기 안에 품은 최대한의 가능성, 그 절대 가치의 세계 안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정온 靜穩, 그 깊이를 따라 산다. 나만의 온전한 길을 걷는다. 다시 사랑하고 웃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