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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畵報 『분암선생문집(憤庵先生文集)』 해제 - 곽진 憤庵集 一 目錄 卷之一 詩 卷之二 詩 憤庵集 二 卷之三 書 卷之四 書 卷之五 書 憤庵集 三 卷之六 書 卷之七 書 卷之八 書 『中』 憤庵集 四 卷之九 書 卷之十 書 卷之十一 書 憤庵集 五 卷之十二 書 卷之十三 書 卷之十四 雜著 憤庵集 六 卷之十五 序 卷之十六 記 卷之十七 跋·箴·銘·贊·昏啓·上梁文·祝文·祭文·哀辭 『下』 憤庵集 七 卷之十八 碑·墓誌 卷之十九 墓表 卷之二十 墓表 憤庵集 八 卷之二十一 墓碣銘 卷之二十二 墓碣銘 卷之二十三 行狀·遺事·傳 憤庵集 九(續) 目錄 卷之一 賦·詩·書·雜著·序·記 卷之二 碑·墓表·墓碣銘·行狀·傳 卷之三 附諸子記聞 憤庵集 附錄 憤庵安先生墓碣銘幷書 憤庵安先生講學碑銘幷書 浣溪精舍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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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암 안훈은 누구인가
분암 안훈은 1881년 전남 곡성군 오지리(梧枝里)에서 태어났다. 이른 나이에 서당 공부를 시작했는데, 매일 자신이 읽을 분량을 스스로 정한 뒤 읽은 책을 통째로 외울 정도였다. 15세 이전에 이미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시문(詩文) 그리고 육예(六藝)를 익혔고, 이어서 제자백가, 문학, 역사, 유설(類說) 등을 두루 읽으며 6~7년간 학문에 매진했다. 22세 되던 1902년 그는 경남 거창 다전(茶田)에서 강학하던 면우(?宇) 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사제지간의 연을 맺었다. 이후 매년 면우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하면서, 한편으로는 해봉(海峰) 하겸진(河謙鎭), 낭산(?山) 이후(李?) 등과 도학을 논하고 예설을 토론했다. 을사늑약 이후 1907년 천덕산(天德山) 아래에 완계정사(浣溪精舍)를 짓고 저술과 강학에 전념했는데, 이때부터 그의 이름이 점차 세상에 알려져 배움을 청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술국치 이후 유학자로서 성리학 탐구와 제자 양성에 힘쓰는 한편,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비밀리에 조직한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에도 관여했으며, 이와 관련하여 전주형무소에서 옥살이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 완계정사로 돌아와 다시 강학과 저술 활동에 전념했는데, 경전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공자, 맹자, 주자, 퇴계, 율곡, 면우로 이어지는 학문 전통을 지키려고 힘썼다. 1958년 완계정사의 북서쪽에 스승 면우를 모시고자 산앙재(山仰齋)를 세우려고 터를 닦기 시작했는데, 이듬해인 1959년 준공을 보지 못하고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21년 동문들과 함께 스승의 문집인 『면우집(?宇集)』을 감수, 교정하였으며, 1937년 『죽계세헌록(竹溪世獻錄)』 간행을 주도했다. 2003년 광복절 날, 나라에서는 건국사업에 헌신한 공을 치하하고 건국포장을 추서(追敍)했다. 『분암집』의 내용과 의미 『분암집』은 원집 23권 8책, 속집 3권 1책으로, 총 26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분암집』은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되는 영인본으로, 모두 세 권으로 나누어 편집했으며, 영인본 책머리에 면우 곽종석의 후손인 곽진 상지대 명예교수가 상세한 해제를 썼다. 우선, 이 책에는 분암이 남긴 유작들이 모두 수록돼 있는데, 그 내용은 시(詩), 서(書), 잡저(雜著), 서(序), 기(記), 발(跋), 잠(箴), 명(銘), 찬(贊), 혼계(昏啓), 상량문(上梁文), 축문(祝文), 제문(祭文), 애사(哀辭), 비(碑), 묘지(墓誌),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행장(行狀), 유사(遺事), 전(傳), 부(賦), 부제자기문(附諸子記聞) 등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원집과 속집에도 없었던, 분암 선생의 묘갈명(憤庵安先生墓碣銘幷書)과 강학비명(憤庵安先生講學碑銘幷書), 완계정사기(浣溪精舍記)도 덧붙여졌다. 20세기 초 분암이 자리잡고 있던 전남 곡성의 완계정사(浣溪精舍)는 일상의 강학당이 아니라, 시대의 민감한 정보들이 소통되고 학맥이 교차하는 전선(戰線)이었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을 중심으로 분암 안훈과 기암(起庵) 이중업(李中業)이 교류하였으며, 그리고 회봉(晦峰) 하겸진(河謙鎭), 대연(大淵) 곽윤(郭奫), 운거(雲擧) 최익한(崔益翰) 등이 서신을 주고받으며 시대를 걱정하고 편당(偏黨)을 넘어서려 했던 영호남 학인들의 학술 교류처였다. 곽진 교수는 “『분암집』에는 이렇듯 학문에 대한 열정과 소통의 개방성을 추구했던 흔적이, 그리고 ‘나라독립’이라는 절절한 시대 과제와 씨름했던 행정(行程)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하면서, “분암이 선배 유학자들과 비교해서 지명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고, 그의 학문적 업적도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과 소통의 개방성은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