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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
마임인생50년 유진규이야기집
문화통신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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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일반/예술사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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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유년 같지 않은 유년시절
점잖고 말없는 아이_____09
돌부처, 빨간 양말 신다_____12
동물이 좋았던 소년, 연극에 눈뜨다_____15

2. 방황을 멈추고 전문 배우의 길로 들어서다
실험극단 에저또 입단_____23
롤프 샤레가 보여준 마임의 세계_____27
마임배우로서의 첫 걸음 『첫야행』_____29
‘이제부터 마임의 길을 가겠다’_____34
『육체표현』으로 독립예술가 선언_____38
나는 이 시대의 『발가벗은 광대』_____41
시대를 풍자한 『동물원 구경가자』- 웃기는 세상 웃긴 한 판_____44
날지 못하는 새를 위하여 『아름다운 사람』_____48
친구, 성구_____51

3. 스물아홉에 은퇴선언, 서울을 떠나 시골로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 안보고 살겠다!’_____57
유랑하듯 헤매고 즐기고 - 그냥 마시고 떠들고 놀기_____61

4.‘한국마임이 멸종하고 있다. 돌아오라!’
신영철의 복귀 권유_____69
1988년 무대로 돌아오다_____71
마임 부활운동 -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춘천으로_____75
마임장르 개척기 - 마임은 예술장르다_____78

5. 해외에서 찾아낸 나의 마임과 축제
첫 일본공연 후 얻은 생각_____83
부채를 펼치며 『밤의 기행』_____85
굿을 통해 확장된 세계_____87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씨앗을 만나다 - 1993년 9개월간의 해외연수_____90
유진규네 몸짓 창단과 『허제비굿』_____96

6. 축제의 새 판을 짜다
미치지 않으면 축제가 아니다_____101
국제축제로 뉴마임으로 난장으로_____105
닥칠 수밖에 없었던 뇌종양_____108

7. 시련이 준 선물은 『빈손』
모든 갈등은 아집과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_____115
빈손으로 영혼을 보여주다_____117
모두가 인류이기에 공감한 작품 - 유럽순회공연_____120
교통사고가 만들어 준 『빨간방』 - 유진규가 없으면 유진규 공연도 없나_____124

8. 삶이 충돌하는 현장으로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 사퇴_____133
실험정신을 이어간 감각 놀이터 빨_____137
거리에서 『어루만지는 몸』_____139
촛불군중 속으로 들어가다_____142
춘천, 내가 사는 곳 - 중도와 요선시장을 묻는다_____146
나는 일치된 삶을 살았는가_____149

저자 소개 2

대한민국의 마임전성시대를 이끈 1세대 마임이스트다. 1952년 서울출생으로 건국대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만두고 극단 에저또에서 마임을 만난 후 마임이 자신의 존재의미라고 느끼고 당시 불모지였던 마임에 뛰어들었다. 1981년 정치적 격변기 서울을 떠나 춘천에서 생활하다 1989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임을 다시 살리고자 한국마임페스티벌을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25년간 춘천마임축제의 예술감독으로 도깨비난장, 아!水라장, 미친금요일을 기획하며 춘천마임축제를 세계 3대 마임축제로 키워냈다. 그는 1972년 무언극 첫야행을 시작으로 육체표현, 아름다운 사람, 빈손, 방 시리
대한민국의 마임전성시대를 이끈 1세대 마임이스트다. 1952년 서울출생으로 건국대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만두고 극단 에저또에서 마임을 만난 후 마임이 자신의 존재의미라고 느끼고 당시 불모지였던 마임에 뛰어들었다. 1981년 정치적 격변기 서울을 떠나 춘천에서 생활하다 1989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임을 다시 살리고자 한국마임페스티벌을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25년간 춘천마임축제의 예술감독으로 도깨비난장, 아!水라장, 미친금요일을 기획하며 춘천마임축제를 세계 3대 마임축제로 키워냈다. 그는 1972년 무언극 첫야행을 시작으로 육체표현, 아름다운 사람, 빈손, 방 시리즈, 몸 시리즈 등 창작활동을 꾸준하게 이어왔으며 매번 새로운 시도를 통해 획기적인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마임의 길을 걸어오며 어려움도 있었다. 1996년에는 뇌종양을 진단받아 모든 활동을 접기도 했고, 오랜 기간 열정을 쏟아왔던 마임축제에서 갑작스레 물러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더욱 마임, 몸, 몸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에 몰두했고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역사와 문화인류학을 공부했으며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 1998년 도깨비난장을 보고 이듬해부터 2004년까지 춘천마임축제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였으며 이때 맺은 인연을 계기로 이번에 그의 생애를 구술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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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15*180*20mm
ISBN13
9791186309117

책 속으로

공연이 끝나고 72년 10월에 한국마임연구소라는 거를 에저또가 발족을 해. 그러니까 이제 판토마임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극단, 우리나라에 마임이라는 거를 연구하자. 그런데 여기에 멤버가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님과 그 당시 김세중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셨던 무세중 선생님. 그러니까 서양의 판토마임을 그대로 하는 게 아니라 우리한테도 이런 게 있지 않느냐 그래서 한국마임연구소가 만들어지면서 그 연구소 발족 세미나와 함께 하는 공연이 『첫야행』(1972.10)이었어. 그때 표현이라는 거는 벽돌 나르기, 걷기 등 단편적인, 스토리보다는 마임에는 이러한 표현이 있다 이거였고,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25분 정도 공연은 처음이었지.
--- p.29, 「마임배우로서의 첫 걸음 『첫야행』」 중에서

근데 나는 이미 제대 때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나가면 어떻게 할까, 나가면 어떻게 할까. 그런데 에저또가 창고극장을 마지막으로 문 닫는 공연이라서 같이 하게 됐고, 그 다음 극장 짓는 일에 관여를 할 때 방태수 선생한테 에저또로부터 나오겠다고 얘기를 했어. 나는 이제부터 마임의 길을 가겠다. 나 독자적으로. 그리고 다시 극장을 다 만든 다음에 한 공연이 내 이름으로 처음으로 공연한 『육체표현』(1976.4).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지.
--- p.36, 「이제부터 마임의 길을 가겠다’」 중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내가 72년부터 79년까지 내 나름대로 구축해온 만들어온 나의 예술세계라고 볼 수 있어. 예술세계가 한꺼번에 다 꿰어진, 그래서 글(예술기획 공연수첩1-유진규의 마임, 예술기획, 1990)로도 정리했거든. 유진규의 연극관이라 그럴까 유진규가 생각하는 추구하는 그런 예술세계. 하는 얘기는 늘 같은 말이야. 뭘 보려고 하지 마라, 널 봐라. 자각하라.
--- p.51, 날지 못하는 새를 위하여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나는 마음을 정리했어. 다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 어디든 가서 살겠다. … 그때가 언제냐 하면은 광주사태로 다 잡혀가고 완전히 폭력으로 다스릴 때야. 김성구랑 같이한 공연에서도 내 마지막 작품이 애국가가 나오면서 온갖 물고기가 다 그냥 산산 조각나는 「낚시터」라는 작품이었거든. 물고기 잡다 안 잡히니까 폭파시켜. 그냥 다 산산조각을 내 버리는. 그러니까 사람들은 다 잡혀가고 싸우고 뭐 하고 그러는데 나는 그러지도 못하고 서울서 뭐 마임한답시고 이러면서 산다는 게 좀 부끄럽더라고. 그냥 시골에 가서 조용히 살자, 다 버리고 시골 가서 조용히 살자. 그렇게 춘천을 오게 된 거지.
--- p.59, 「스물아홉에 은퇴선언, 서울을 떠나 시골로」 중에서

몇 년을 한량같이 흥청망청 놀고 그랬어. … 그럴 때 신영철이가 찾아왔어. 그게 87년 12월 말일거야. 그 친구가 오더니 한국마임이 멸종위기다, 이제 그만 놀고 다시 네 할 일을 해야 되지 않느냐. 근데 사실 그 당시 영철이가 얘기할 때는 안 한다, 그랬어. 전혀 생각이 없었어. 난 이제 마임계도 떠났고 그냥 여기서 생활, 일종의 내 나름대로의 생활이지 뭐. 카페하면서 이렇게 어울려 놀면서 그냥 지내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 p.69, 「한국마임이 멸종하고 있다. 돌아오라!」 중에서

서울서 공연이 끝나고 모여가지고 뭔가 새로운 움직임이 있으면서 이게 계속 지속적으로 이 힘을 끌고 나가야 되겠구나 하는 감? 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우리가 좀 정기적으로 모여 갖고 한국마임발전에 대해서 논의를 하자 해서 그 당시 나, 유홍영, 임도완, 심철종, 최규호, 김성구, 신영철 이렇게 모여 갖고 논의를 했지. 우리가 어떻게 힘을 모아서 다시 한 번 마임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하는 데 그 중 가장 좋은 건 페스티발을 열자였어. 〈한국마임페스티발〉을 열자!
--- p.75, 「마임 부활운동시작」 중에서

전통이라는 거를 내 작품에 끌어들여가지고 그거를 잇거나 그거를 바탕으로 해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 그런데 눈앞에 걔네들이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아! (탄식) 내가 그때 일본에 갖고 간 작품이 「머리카락」이었거든. 머리카락은 서양의 판토마임을 우리의 이야기로, 한국현대사회의 이야기를 서양의 판토마임으로 표현한 거란 말이야. 그러면서 이제 스스로에게 부끄럽더라고. 내가 한국서 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오히려 야~ 판토마임을 우리나라에서 하다니! 한국 사람이 이런 거 한다니까 오히려 더 그래, 나 이거하는 사람이야 우쭐했는데 나가보니까 완전히 쪽팔리는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그러면서 정체성이라는 말, 넌 도대체 누구냐. 그런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됐지.
--- p.84, 「해외에서 찾아낸 나의 마임과 축제」 중에서

『빈손』(1998.2)을 설명하려면 뇌종양 하고 뗄 수가 없어. 그게 결국 작품으로 나온 거고 삶에 대한 태도도 그렇지만 작품관도 바뀌게 됐지. 그 전까지는 존재라고 하는 모든 것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그게 뭐든 간에 그것과의 갈등 내지는 억압 내지는 뭐 그런 관계 속에서 그 존재가 정상적인 자연의 모습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그거 때문에 왜곡된 모습으로 변질 내지는 변형이 된다 그러면서 이제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그 모습들을 보여 주면서 작품을 했다면, 뇌종양 때문에 내가 거의 8개월을 공식적으로 대외활동을 멈추고 스스로 내 문제로 들어가서 얻은 결론은 모든 문제는 외부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 내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거지.
--- p.115, 「시련이 준 선물은 『빈손』」 중에서

- 유진규가 사라지면 유진규 공연도 사라지나
방 시리즈를 기획한 건 그게 궁극적으로는 나도 뭐 쉽게 말하면 10년이 남았는지 알 수가 없잖아. 내 마지막 작품은 유진규가 없으면 공연을 못 하냐, 내가 움직이지 못하면 공연을 못하냐, 내가 사라져 버리면 내 공연은 끝나는 것이냐가 아니라 내가 사라져도 공연을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떨어지는 거야. 내가 생각한 것은 어쨌든 나는 공연자잖아. 그렇다면 공연으로 끝까지 살아남아야 되는데.. 그게 이제 나에게 남은 해결해야 할 질문 숙제이지.

--- p.128, 「교통사고가 만들어 준 『빨간방』」 중에서

출판사 리뷰

마임인생50년
유진규이야기집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


2021년 마임인생 50년을 기념하여 출간한 마임배우 유진규의 구술생애사 이야기집.
1972년 극단 에저또에서 무언극 『첫야행』을 발표하며 무언극 마임의 세계에 발을 디딘 후 1976년 무언극 『육체표현』으로 독립예술가를 선언, 마임을 국내에서 하나의 공연예술 장르로 자리잡게 만든 마임1세대 유진규의 생애를 구술로 기록한 이야기집이다.

책의 주인공인 구술자 유진규는 1952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1년 건국대 수의학과에 입학해 연극반 활동을 하다 중퇴, 1972년 실험극단 에저또에 입단하며 전문 배우의 삶을 시작하였다. 에저또마임연구소 창단 작품인 무언극 「첫야행」에 출연하며 마임배우의 시작을 알렸고 1976년 첫 창작무언극 『육체표현』을 발표하며 독자적인 마임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발가벗은 광대』, 『동물원 구경가자』, 『아름다운 사람』 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며 평단의 관심을 받고 있던 그는 스물아홉에 돌연 은퇴를 선언, 1981년 춘천으로 간다. 춘천에 있는 동안에도 가끔 아름다운 사람을 공연하였지만 87년까지 그는 춘천에서 유랑하듯 헤매고 즐기고 노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1987년 12월, 그의 연극 동지인 예기 신영철이 찾아온다. ‘한국마임이 멸종했으니 돌아오라! 1988년 5월 『판토마임을 봅시다』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복귀공연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흩어져있던 마임 배우들이 다시 모이며 한국마임부활운동을 시작했다. 마임을 예술장르화 하는데 앞장섰고 서울의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춘천으로 옮겨와 춘천마임축제를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만들었다.
『빈손』은 유진규네 몸짓의 대표작으로 인간의 갈등은 아집과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룬 내용이다. 교통사고가 만들어 준 『빨간방』은 유진규가 사라지면 유진규 공연도 사라지나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2013년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직을 사퇴하며 그는 삶이 충돌하는 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회속에서 예술적 발언이 필요한 곳마다 그는 나선다. 최근작으로 『어루만지는 몸』, 『트라우마 목욕탕』,『중도를 묻는다』, 『요선시장-코로나땡 동그랑땡』등을 발표했다.

유진규이야기집을 기획 편집한 이우진은 1979년 춘천태생으로 대학에서 사학,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였으며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춘천마임축제 인턴으로 활동하였고 이때 맺은 인연이 구술생애사 유진규이야기집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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