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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호영송
1964년은 특별한 연극의 해였다 셰익스피어는 언제까지 위대한 작가인가? 셰익스피어는 신앙인이었나? 셰익스피어에 사로잡힌 영혼 비극작가의 희극의 가벼움 〈햄릿〉이 존재하는 방식 영국인들에게 내린 축복 셰익스피어와 함께하는 저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정치, 혹은 정치라는 이름의 욕망 한국 연극이 세계 속의 큰 무대에 오르는 길 ‘이아고’를 새총으로 쏜다, 배우를 권총으로 쏜다 이제 그 바다 앞에서 말한다 천재 극작가 체호프가 꽃 피던 이야기와 셰익스피어의 품에서 천직을 찾은 이들 2부 안치운 한국 연극의 셰익스피어 수용 1. 일제강점기 시대 2. 1945년 해방 이후, 대학 중심으로의 셰익스피어 3. 리얼리즘과 셰익스피어 4. 변용과 수용의 셰익스피어 5. 1980년대, 정치극으로서 셰익스피어 수용 6. 서구 연극 및 이론의 수용과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 7. 결론: 셰익스피어와 함께한 한국 연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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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은 특별한 해였다. 적어도 우리 한국 연극을 위해 열정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한 해였다
--- p.13 1964년에 서울에는 공연장다운 공연장이 딱 두 군데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거의 평생을 연극에 몸바쳐온 연기자도 출연료를 받아 생활할 형편이 아니었다. 1980년대에 산울림 소극장을 운영한 연출가 임영웅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지금 독립운동하는 것처럼 연극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p.15 어떤 각도에서 보면 정치적 암수 또는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들은 객석에 앉은 사람의 눈에는 아주 우스꽝스럽고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권력에 취한 사람들은 그런 바보 광대 같은 놀이에 폭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셰익스피어는 그런 정치극을 쓰며, 또한 공연을 하며 정치 놀음의 한심스러움을 깨우친 것인가? 그러한 상상도 가능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셰익스피어가 자기의 달관을 내세우거나 정치판의 한심함을 교훈하는 설교 같은 것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 p.122 〈맥베스〉는 왕권을 얻기 위해 하수인을 시키지 않고 직접 살인을 통해 쿠데타를 성공시킨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수양대군이 어린 친조카 단종에 반역하고 왕위에 올라 세조가 된 쓰라린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에게는 〈맥베스〉를 보는 것이 마치 역사의 거울을 슬쩍 넘겨다보는 듯해 섬짓한 느낌도 든다 할 것이다. --- p.133 연극을 말할 때 체호프만이 아니라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가 빠질 수 없다. 참된 의미의 사실주의 연극을 꾸준히 추진했던 러시아, 거기에 바로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가 있었다. 그리고 스타니슬랍스키는 체호프가 장막극 〈갈매기〉가 초연에 실패해 풀죽어 “다시는 희곡 따위 안 쓰겠다!”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일으 켜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 p.156 동국대 김재남 교수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셰익스피어 번역에 온통 쏟아부었다. 그의 한창때인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전반기까지는 한국 대학의 급료도 박봉이었고 도서관에 셰익스피어 영문 원서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또한 출판계는 박한 원고료를 겨우 지불할 정도였다. 혹시 어떤 극단이 그 희곡 사용료를 지불한다 해도 대부분 적은 돈이었다. --- p.172 한국 연극의 셰익스피어 수용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한다. 셰익스피어가 한국 연극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와 함께 그 유입 경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유입 초기에 셰익스피어의 이름, 작품명, 그리고 단편들은 경구 형식으로 알려졌다. 셰익스피어가 희곡 작가보다는 서양 문학에서 유명한 인물로, 사상가로, 위인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 p.192 1933년 극예술연구회 주체로 ‘셰익스피어전’이 열려 〈베니스의 상인〉 가운데 법정 장면이 공연되었다. 이는 기성극단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처음으로 공연한 것이지만 큰 호응 없이 실패로 끝나버렸다. 1938년 2월 동아일보 주최 제1회 연극경연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셰익스피어 원작 〈햄릿〉이 공연되었다. 이는 신우촌이 번안한 것으로 특히 ‘묘지’ 장면이 중심이 되었다. --- p.214 기국서의 ‘햄릿’은 당시 1980년대 정치 상황을 모티브로 해서 당대를 사는 젊은 세대의 고뇌를 드러냈다. 햄릿의 내용은 젊은이들의 반항심과 현실, 그들의 젊음 사이의 갈등으로 환치되었다. 그의 ‘햄릿’ 속에서 햄릿은 청바지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는 당대 현실의 청년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구체화된다. 관객들은 ‘햄릿’을 통해 자신이 당대의 현실에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젊은이인지 스스로 묻게 된다. --- p.256 비극은 관객들에게 삶에 관한 성찰을 보여주기 위해 무無와 같은 부재의 세계에 훨씬 가까이 기대고 있다. 다시 말해 관객들에게 중심의 가치를 강조하고, 중심의 가치에 합동시키거나 닮도록 하기보다는 중심의 변화를 유도한다. 비극이 시간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중심이란 무한의 가치를 현실이란 삶의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새로운 나라에서 옛길을 열어가는” 것처럼. --- p.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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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은 특별한 해였다”
1부에 수록한 호영송의 에세이는 “1964년은 특별한 해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964년은 한국 연극계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 페스티벌”을 치러낸 해다. 당시 연극영화학과 학생으로 이 페스티벌을 목격한 저자는 명동 국립극장 앞의 풍경, 드라마센터의 개관, 이해랑과 여석기 등 한국 연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과의 일화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단편 〈죽은 소설가의 사회〉로 2006년 제32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저자는 그 자신이 말하듯 “연극에 대한 좋은 의미의 딜레당트”로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에 담아낸 14편의 에세이는 연극인은 물론 순수하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는 독자에게 매력 있게 다가갈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정말로 위대한 작가인가?’, ‘셰익스피어는 신앙인이었을까?’ 같은 누구나 생각해볼 법한 질문부터 반세기 전 연극의 풍경까지,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면면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셰익스피어는 한국 현대 연극의 역사” 2부에 수록한 안치운의 ‘한국 연국의 셰익스피어 수용’은 일제강점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한국 연극에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유입되고 공연되었는지를 살핀다. 20세기초 일본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개화기’ 식민교육의 일환으로 유입된 셰익스피어는 ‘세이구스비아’, ‘유염 색토비아’ 등의 이름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초기에는 서양 문호의 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일본어 공연과 영화 상영, 경구 소개 등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후 여러 번역과 공연을 거치며 한국 연극에 녹아들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셰익스피어는 대학을 중심으로 수용의 폭을 넓혀갔다. 영어영문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공연과 여러 학자들의 번역을 통해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후 셰익스피어는 1980년대의 정치극으로서의 공연과 해체적 관점에 따른 연출 등 여러 방향과 형태로 한국 연극의 역사와 함께한다. 2부는 셰익스피어 수용 초기부터 현대까지 한국 연극 역사의 면면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관련 연구자는 물론 연극과 셰익스피어를 깊게 고민하고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자료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사랑한다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들은 “셰익스피어에 대해 친근하게 ‘나의’ 또는 ‘우리의’라는 느낌을 갖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라고 밝힌다. 즉 이 책은 셰익스피어를 흠모하는 이들을 ‘우리들’로 엮어내려는 두 사람의 기록이다. 에세이와 문헌 연구를 한 권으로 묶는 과감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도 이렇게 같은 독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에서 멈추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와 한국 연극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마음속 깊이 사랑한 누군가를 갖고 있는 모든 이를 호출한다. 셰익스피어가 보편적인 교양인 것처럼,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힌다. 오래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 한 소설가의 이야기, 오래된 문헌에서 더 오래된 작가의 이름을 발굴해낸 한 연극평론가의 이야기가 한 권으로 엮여 ‘우리들의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여기 남았다. 사랑은 기억으로, 읽기로, 쓰기로도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