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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서문 / 한국어판 서문
제1장 일본인 ‘위안부’는 어떻게 모집되었나? 일본인 ‘위안부’의 징집과 근대 공창제도 오노자와 아카네(小野) 나가사키 사건, 시즈오카 사건 대심원 판결을 읽는다: ‘위안부’ 강제연행은 유괴이다 마에다 아키라(前田朗) 식민지 조선의 공창제도와 ‘위안부’ 제도 송연옥(宋連玉) 일본군 위안소 정책에 대해 나가이 가즈(永井和) 제2장 일본인 ‘위안부’는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일본인 ‘위안부’의 처우와 특징: 성노예를 정당화한 전시 내셔널리즘과 ‘성의 방파제’론 니시노 루미코(西野瑠美子) 서적·잡지로 보는 일본인 ‘위안부’ 문제 정리: 야마다 게이코(山田惠子)·요시다 도시코(吉池俊子)·야마구치 아키코(山口明子) 위안소 업자에게 들은 이야기 이시바시 나오코(石橋菜穗子) 오키나와 바쇼시키 위안소의 사례: 히라오카 지쥬의 증언 다바 사치코(田場祥子) 오키나와의 일본군 위안소 하야시 히로후미(林博史) 제3장 일본인 ‘위안부’의 전후는 어떠했는가? 일본인 ‘위안부’의 전후: 기쿠마루의 사례 히로타 가즈코(廣田和子) 서적·잡지로 보는 일본인 ‘위안부’의 전후 정리: 야마다 게이코(山田惠子)·요시다 도시코(吉池俊子)·야마구치 아키코(山口明子) 〔칼럼〕‘가니타 부인의 마을’에서 보냈던 시로타 스즈코의 전후 아마하 미치코(天羽道子) 〔칼럼〕싱가포르에 방치된 일본인 ‘위안부’ 니시카와 미유키(西川幸) 일본군 위안소에서 RAA·점령군 위안소로 히라이 가즈코(平井和子) 〔칼럼〕전 ‘위안부’들의 ‘전후’: 일본인/조선인/중국인은 어떻게 달랐는가? 김부자(金富子) 후기 / 역자 후기 / 참고문헌과 자료 / 집필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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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성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크게 전환했지만 매춘(=성노동)을 ‘공서양속’에 반하는 행위, 도덕적으로 ‘부끄럽게 여겨야 할 행위’로 여기는 의식, 이에 더해 ‘위안부’를 ‘추업부’로 보는 의식이 그대로 유지(保持)되어 거기에서 생긴 괴리가 위와 같은 은폐정책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위안부’는 군·국가에게 성적 ‘봉사’를 요구받음과 동시에 그 관계를 군·국가에 의해 끊임없이 부인당한 여성들이었다.
--- p.127 상륙한 첫날은 요코하마에 묵고 다음날 미장원에 갔더니 “모공이 열려있네요. 더운 지역에 있다 왔나 보네요?” 하고 묻길래, 갑자기 ‘위안부’였던 걸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머리도 안 하고 뛰쳐나와 버렸다. “그때까지는 주눅도 들지 않았었는데, 참 이상하죠?”라며 기쿠마루는 자조하듯 말했다. ---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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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판 서문 ]
일본의 일본인 ‘위안부’의 특징을 밝히는 작업은 식민지와 점령지의 ‘위안부’를 포함한 ‘위안부’의 전체상을 밝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중략) 매춘 비판을 강화하고 현대에 성을 파는 여성들의 곤경을 밝히며 그 목소리를 듣는 일이 결과적으로 일본인 ‘위안부’ 문제, 더 나아가 ‘위안부’ 문제 전체에 관한 사람들의 이해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중략) 현재의 성착취에 대해 무관심한 사회는 전시 성폭력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 이 책 『일본인 ‘위안부’: 애국심과 인신매매』의 한국어판이 일본인 ‘위안부’의 특질을 밝힘과 동시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성착취에 반대하는 한국의 모든 분과 연대하는 데 자그마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역자 후기 ] 일본군과 국가의 법적 책임을 면피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노예화를 지탱해 온 이들의 군상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은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제도로서의 위안소가 어떠한 정치·경제·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가동하고 있었는지 되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새롭게’ ‘문제화’해 나갈 수 있을지, 역사적 사료와 현재적 담론을 오가는 섬세한 물음이 던져져야 할 때다. 나가이 가즈는 두 개의 통첩, 그와 관련된 경찰 보고서, 결재문서 등의 분석을 통해 공문서 간의 관련성과 인과관계를 밝히고 ‘위안부’ 징모와 이송 관련 문서에서 드러나는 일본군, 일본 정부, 경찰, 업자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여러 행위자의 ‘공모’를 규명했다. ‘위안부’ 모집은 은밀하게 이뤄져야만 했고 군과의 관계를 언급해서는 안 되었다는 사실이 공문서에 대한 나가이의 면밀한 독해를 통해 드러났다. 이 통첩은 한편으로는 ‘위안부’ 모집과 도항을 용인하면서도, 군과 국가가 위안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는 은폐할 것을 업자에게 의무화했다. 이것이 요점이다. 이러한 ‘공인’과 ‘은폐’의 이중적 태도가 당시 경보국의 방침이자, 일본 정부의 방침이었다. 본국, 식민지, 점령지 여성들의 전쟁경험과 성폭력 피해는 이 여성의 경험과 저 여성의 경험을 비교하며 피해의 위계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이 제도와 저 제도를, 이 정책과 저 정책을 비교하면서 여성들을 분리하며 억압하는 갖가지 권력이 어떻게 맞물려 작동하는지에 착목하여 다뤄져야 한다. ‘하찮은’ 존재들로 자리매김되어 온 이들이 서로를 더 낮은 하위의 위계로 밀어내며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는 일은 바로 그 위계의 선을 그은 권력의 구조를 강화하며 자기도 모르게 그러한 구조의 유지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하찮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이, 존엄이 박탈당한 바로 그 자리에서 서로를 밀어내거나 지우지 않고서 서로의 존재를 비출 수 있는 ‘다른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후지메 유키가 지적했듯이 전후의 역사학은 근대 국가의 지배구조 분석이나 지배계급에 대한 인민투쟁사를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아 왔지만, 성과 생식의 자기결정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인민의 저항과 사회운동은 역사학에서 정통적인 연구대상으로 간주되지 못했다. 일본인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는 일본에서도 여전히 신중함 속에 있고, 한국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공론장이 드물다.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이 놓여 있던 사회적·경제적 취약성의 근간에 군국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계급성,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등이 버티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성적 재생산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적극적인 관점으로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