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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1. 명제 0101. 과학은 앎들의 짜임이다. 0102. 과학은 명제 꾸러미다 0103. “참” 개념은 “명제” 개념을 앞선다 0104. 하느님, 마음, 헤아림 0105. 과학의 바탕 명제는 무엇인가? 0106. 과학은 믿음들의 짜임이다 0107. 나 혼자서는 알 수 없다 02. 추론 0201. 반드시 추론 0202. 말길 0203. 추론규칙 0204. 제1차 논리 0205. 튼튼한 추론 0206. 갈래짓기 0207. 아마도 추론 0208. 가설 0209. 믿음직함 03. 측정 0301. 물리량 0302. 자연 0303. 비율 0304. 한결 0305. 한결의 원리 0306. 코스모스 04. 해석 0401. 인문사회과학 0402. 행위이론과 사회이론 0403. 해석과 심성 0404. 마음의 힘 0405. 행위자의 합리성 0406. 사랑과 코뮌 05. 온갖 알길 0501. 추론은 자연과학의 고유방법인가? 0502.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 방법을 써서는 안 되는가? 0503. 자연과학은 추론과 측정의 방법만을 쓰는가? 0504. 실험은 곧 자연과학 방법인가? 0505. “휴먼 사이언스”라 불리는 인간과학은 인문사회과학인가? 0506. 행위자의 합리성을 가정하는 일은 인문학을 망치는가? 0507. “사피엔스”, “사람”, “행위자”는 똑같은 말인가? 0508. 빼어난 과학철학자들은 세 과학 방법을 어떻게 생각할까? 0509. 여러 가지 대안 방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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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뜻은 우리가 참이라 여기는 문장들의 그물 안에 스며 있다. 흐릿하고 헷갈리는 믿음들의 배경에서 명제들이 흐릿하고 헷갈리게 떠오른다. 우리는 흐릿함과 헷갈림을 줄이려고 우리의 생각, 믿음, 판단, 발화, 기재를 다듬겠지만 우리는 완전히 또렷한 명제들의 전체 짜임을 결코 얻지 못한다. 과학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헤아림의 과정이며 마음의 성장이며 정신의 여정이다. 이 과정, 성장, 여정에서 우리는 다른 이와 뜻을 나누어야 한다. 왜냐하면 뜻을 나누는 이 과정에서 우리 믿음, 우리 바람, 우리 뜻이 덜 흐릿하고 덜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 의사소통이 없었다면 과학 자체가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코스모스 없이는 과학도 없겠지만 코뮌 없이도 과학은 없다.”
--- p.58, 「제1장 명제」 중에서 “추론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모두에서 공통으로 쓸 수 있는 과학 방법이다. 자연과학에 속하는 수학과 통계학은 추론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과학들은 추론의 과학이라 할 만큼 추론의 도구들을 많이 다룬다. 인문사회과학에서도 때때로 수학이나 통계학의 이론을 쓴다. 인문사회과학이 그 이론을 쓰는 까닭은 그 이론이 단지 추론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믿음직함을 매기는 일은 자연과학 활동이 아니라 추론 활동이다. 명제에 수를 매긴다는 까닭에서 믿음직함을 자연과학의 주제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믿음직함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에서도 쓸 수 있다. 믿음과 믿음직함을 연구하는 학문은 인식 주체가 갖는 믿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자연과학보다는 오히려 인문과학에 더 가깝다.” --- p.136, 「제2장 추론」 중에서 “자연은 세계의 한 측면이다. 세계를 물리 사물과 사건으로 쪼개는 것은 세계를 쪼개는 여러 가능한 방식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전체로서 우리 세계는 물리 재료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전체 세계’가 그 자체로 물리 세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한결의 원리를 바탕으로 세계를 측정하여 세계를 쪼개는 것이 유일한 방식이라고 볼 까닭이 없다. 세계를 쪼개고 갈래짓고 추리는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나는 현상들의 변화를 추적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것을 ‘해석’이라 부른다. 해석은 측정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세계를 쪼갠다. 측정과 자연과학은 세계를 측정할 수 있는 물리 현상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물리계로, 자연으로, 코스모스로 꾸민다. 반면 해석과 인문사회과학은 세계를 해석할 수 있는 지향 현상들이 출몰하는 곳으로, 지향계로, 의미의 세계로, 코뮌으로 가꾼다.” --- p.182, 「제3장 측정」 중에서 “‘동물 군집’과 ‘공동체’를 가르는 기준은 그것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가 진선미의 규범을 따르는가 하는 것이다. 공동체는 해석의 공동체며 진선미의 공동체고 이유의 공동체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서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 너, 우리의 명제 태도가 차츰 또렷해진다. 나와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더 깊어지는 것은 인문과학의 진보며 사회과학의 진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론이성과 실천이성을 더 다듬는다. 이유를 갖고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이기에 이로써 우리는 더욱 사람다워진다. 처음에 우리는 유전자와 신경과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났다. 하지만 차츰 진선미에 따라 믿고, 바라고, 행위하고, 만드는 사람으로 자란다. 이 과정이 이뤄지는 진선미의 공동체를 나는 ‘코뮌’이라 부르겠다. 코뮌은 사람이 자라는 곳이다. 코뮌은 사람들의 세계며 행위자들의 세계다. 세계를 사랑의 원리에 따라 해석하여 쪼개고 갈래짓고 개체화할 때 세계는 코뮌으로 드러난다. 코스모스가 전체 세계의 한 측면이듯이 코뮌도 전체 세계의 한 측면이다. 코뮌 안에서 생겨나 자란 사람은 자신이 자란 코뮌을 가꿈으로써 더 많이 자라고 나아가 코뮌 안에 새로운 사람을 생기게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세계사며 뜻의 역사다.” --- p.237, 「제4장 해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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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무엇이며,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은 어떻게 다른가? 자연 사물의 본모습은 무엇이고 이것은 무슨 방법으로 드러나는가? 마음과 사회의 본모습은 무엇이고 이것은 무슨 방법으로 드러나는가?이 책은 이 물음에 답을 한다.
글쓴이는 ‘과학에 이르는 방법’ 곧 과학 방법을 크게 추론, 측정, 해석으로 나눈다. 추론은 모든 과학이 함께 쓰는 방법이다. 측정은 사물의 물성을 알아내는 과학 방법이다. 자연과학은 주로 측정의 방법으로 믿음직한 믿음을 얻는다. 만일 과학 방법에 추론과 측정밖에 없다면 사람을 다루든 사회를 다루든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인문사회과학의 고유방법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것은 해석의 방법이다. 해석은 사물의 심성을 알아내는 과학 방법이다. 2013년 SBS에서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는 이 책 글쓴이의 논문을 표절했다. 이에 도민준은 천송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첫장의 개론은 1999년 논문 「데이빗슨의 심리철학과 해석론을 중심으로 본 사유의 조건으로서 사랑의 원리」를 그대로 베꼈네요. ‘사랑은 옵션이 아니라 조건이다. 심적인 것의 본성이다’라는 문구까지 그대로.” 천송이가 표절한 이 문구는 이 책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는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각이 들어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른 까닭은 그들이 다른 신경과 다른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까닭은 그들이 다른 믿음과 다른 바람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이 노래했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은 작은 세계며 작은 우주다.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칠십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칠십억 가지의 세계.” 만일 자연과학만으로 한 사람을 알아내려면 자연과학자는 그를 유전자, 신경, 세포, 호르몬 따위로 하나하나 쪼개 그것들의 물성을 측정하고, 그 물리 어휘들로 그 한 사람을 기술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한 사람을 하나의 세계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하나의 물체로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이 사물을 기술하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인문사회과학은 한 사람을 이해하려고 그를 해석한다. 그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그가 겪었던 일, 그가 뜻을 갖고 했던 일, 그가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인문사회과학자는 이 해석을 거쳐 그 한 사람 안에서 끝없이 이어지고 끝없이 서로 맞물린 명제들의 짜임을 본다. 그는 이런 명제를 믿고 그런 명제를 바라고 저런 명제를 두려워하거나 뉘우치거나 아쉬워한다. 너는 나와 영원히 다르며, 나는 너를 영원히 파악하지 못하고, 나는 너를 영원히 사로잡을 수 없다. 해석은 이것을 알아가는 기나긴 과정이다. 이 해석으로 너는 나와 다른 세계로 드러나며, 이윽고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로서 나타난다. 너는 한결같은 이라기보다 사랑스러운 이며 사랑하는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