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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평전
1904년생이 마주친 민족문제 퇴계 후손으로 부포마을에서 태어나다 무섬마을 김갑진과 혼인하다 서울 중동학교 거쳐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다 아내와 함께 서울 유학을 하다 조선공학회에 참가하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하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조직에 앞장서다 융희황제 순종의 죽음 소식을 듣다 국장일에 맞춰 만세운동을 준비하다 가장 먼저 만세를 불러 6·10만세운동을 시작하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기까지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귀향 도쿄에서 국내로 ‘불온문서’를 몰래 보내다가 벌금형 당 재건운동과 전협계 투쟁에 참가 도쿄에서 추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다 안동에서 맞은 해방,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금고형 서울에서 보낸 마지막 삶과 실종 민족해방을 꿈꾸며 투쟁하다 이선호 연보 제2부 자료편 문서자료 신문자료 도서 및 기타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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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마지막 임금이자 대한 제국의 황제인 순종의 장례일인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은 3·1운동만큼은 아니더라도 겨레의 가슴에 강렬한 불길을 다시 지폈다. 이때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독립운동가들이 거듭 집회를 열고 항쟁의 정신과 불씨를 이어가려고 애를 썼으며 이선호는 가장 앞장서서 활동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이선호는 도쿄에서도 가장 강성을 지닌 노동운동의 현장 후카가와 지역에 터를 잡고 한인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몸을 담기도 했다. 항일 노동운동을 펼치다가 거듭 검속되면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고, 풀려나면서 추방령에 따라 귀국하였다. 귀국 후 고향에서 해방의 소식을 들었고 이후 안동에서 미군정 포고령 위반으로 금고 6월형을 선고받은 일을 통해 그가 1947년 봄에 안동에서 조직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였다는 정황을 말해주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알기 어려우며 한국전쟁 이후 그의 삶의 자취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전통시대에서 근대로 전환하던 때를 살다간 선비이자 민족지성인 이선호가 추구한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이선호는 민족이 마주친 가장 큰 과제를 해결하려고 나섰던 인물이고, 책임을 다하려다가 희생된 인물이다. 이선호의 생애를 복원하려는 노력은 곧 그의 삶이 가지는 정당성과 고귀함을 되살려 우리들 가슴에 되새기려는 것이다. 이는 곧 겨레의 양심을 되찾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고, 새 시대 지성을 길러내는 지향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