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충분히 혼란스러울 여러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가 영화 속에서 목격한 금속 재료들은 사실 이 세 가지 이외에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기억을 한번 더듬어보세요. 제4의 재료도 분명 존재합니다. 타노스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부수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 주변을 둘러보세요. 등장인물이 한 명 더 있었죠. 바로 토르입니다. 우리는 토르가 가진 두 종류의 망치, 묠니르와 스톰브레이커를 빠뜨리고 있었어요. 이들을 구성하는 재료가 바로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제4의 금속입니다.
가중된 혼란의 부담을 못 이겨낸 여러분이 나의 소중한 지원서를 찢어버릴까 두려워 지금부터는 핵심 내용만 콕콕 집어내 설명하겠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모든 마블 세계관을 통틀어 등장하는 금속의 종류는 총 세 가지입니다. 내 골격을 구성하는 아다만티움(Adamantium), 와칸다의 비브라늄(Vibranium), 그리고 토르 망치를 구성하는 우르(Uhr)입니다. 그런데 나는 재료의 강함을 묻는 기존 의도에 충실하기 위해 세 가지 금속 재료 중에서 우르만큼은 제외하려 합니다. 왜냐고요? 우르는 강한 금속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마법이 깃든 금속이라는 평가를 받는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건 비브라늄과 아다만티움뿐이네요. 타노스가 마블의 세계관을 떠나지 않는 이상, 양날검의 재료는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그럼 방패와 양날검 간의 싸움에서 가능한 조합은 단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비브라늄 vs. 비브라늄, 또는 비브라늄 vs. 아다만티움. 또한, 동일한 재료들끼리의 싸움이었다면 우열이 그렇게 쉽게 갈리지 않았을 테니 가능한 조합은 이내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타노스의 양날검은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타노스 양날검의 재료가 정체를 드러낸 이 순간, 우리의 질문에 대한 해답 또한 도출됐네요. 비브라늄과 아다만티움 간의 싸움이 벌어진다면, 승자는 바로 아다만티움인 것입니다.
이것으로 드디어 인간들의 오랜 논쟁이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목격된 영화 속 장면들을 놓고 봤을 때 얻은 결론이기에 우열이 언제 뒤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나의 골격은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보다 강하네요. 나이로 보나 강함으로 보나 역시 내가 캡틴아메리카보다 한 수 위였군요.
--- 「비브라늄과의 비교 논쟁에 종지부를 찍다」 울버린 편 중에서
어벤져스 1기들의 모임이 마무리된 지 한참 지났음에도 여전히 층이 두터운 팬덤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언맨이기에 나의 지금 이러한 발언들이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다소 어이없고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내 입사 지원서를 읽어내려가고 있을 인사팀 직원들 또한 평범한 인간들일 테니 지금 나의 발언들이 이내 헛소리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나의 입사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에 확신이 있습니다. 나의 이전 소개 자료들을 통해 이제껏 나의 전자기 제어능력들을 간접 체험해온 여러분이 아닙니까? 여러분도 분명 나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제아무리 강한 기계를 만든 토니 스타크라 하더라도 그는 그저 ‘아이언(iron, 철)’을 다루는 능력이 출중한 인간일 뿐입니다. 제아무리 신의 손을 가진 그였다 하더라도 그가 다룰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철의 변형품이 전부였지요. 자석에 쉽사리 쩍쩍 달라붙곤 하는 ‘철’을 다루는 아이언맨이 전자기를 다루는 매그니토를 상대할 수 있을까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만일 그의 이름이 아이언맨(iron man)이 아닌 스틸맨(steel man)이었다면 나의 지금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스틸(강철)이라 함은 철이라는 순물질이 자력이 매우 약하거나 혹은 아예 없는 물질들과의 만남을 통해 얻어진 혼합물의 형태가 아니던가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내부에 잠재된 전자기력까지 끌어내는 데 도가 튼 나에게는 감히 대적할 수 없을 테지만요.
지금 나의 주장들은 다음의 세 문장으로 깔끔히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사는 지구, 아니 전 우주를 통틀어 나의 전자기 제어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둘째, 아이언맨은 한낱 우주의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전자기력은 아이언맨의 숨통을 쥐고 흔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이상입니다.
--- 「빛나는 나의 업적」 매그니토 편 중에서
눈에서 광선을 뿜어내는 초능력자이자, 엑스맨의 리더인 나조차도 ‘아이언맨의 뒷담화’가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향할 비난의 화살들이 뻔히 보인단 말이지요. 주위로부터 쏟아지는 뜨거운 눈빛에 그만 타버릴지도 몰라요. 모든 지구인들을 나와 같은 옵틱 블라스터로 만들었다고 자비에 교수님에게 온갖 핀잔을 들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아이언맨의 뒷담화를 실행할 생각입니다. 내 자신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헤쳐나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휴우. 그럼 시작해 볼까요?
나는 그동안 토니 스타크가 만들어 낸 궁극의 무기이자 〈아이언맨 2〉(2010)에서의 천재 과학자 빌런인 이안 반코도 차마 만들어 내지 못한 리펄서 건 (repulsor gun)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왔고, 나의 옵틱 블라스트보다 다소 수준이 떨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리펄서 건과 옵틱 블라스트의 사용 목적 차이에 있습니다.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아이언맨의 리펄서 건은 작용과 반작용, 즉 밀어내는 능력을 주요한 특징으로 합니다. 본인이 공중 부양을 할 목적으로 만든 장치에서부터 비롯되어 점차 진화되어 온 장치이니까요. 마치 로켓의 추진 장치처럼 말이에요. 비록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리펄서 건이 어떠한 재료들로 구성돼 있고, 그 제작과정이 어떠한지 일반에 전혀 공개한 바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리펄서 건의 능력치와 성능이 전부입니다만, 우리는 로켓의 추진 장치를 떠올리며 리펄서 건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물들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로켓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추진제라는 혼합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추진제를 구성하는 주요 재료는 연료와 산화제이며, 외부에서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연소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디자인되었지요. 연소되는 과정에서 생성된 다량의 기체들이 좁다란 노즐을 통과해 나오면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게 되고, 그 힘을 발판삼아 로켓은 앞으로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때, 로켓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노즐에서 고압의 기체가 충분히 빠져나올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하고, 이는 곧장 비효율성으로 연결됩니다.
많은 이들이 아이언맨의 리펄서 건이 뿜어내는 추진력을 두고 리펄서 빔 (repulsor beam)이라고 부르더군요. 나는 이 리펄서 빔의 정체가 진정한 빔(광선)이 아닌, 노즐을 통과해 나오는 고압의 연소가스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언맨이 추구하는 최첨단 과학을 상상해 볼 때, 연료와 산화제라는 다소 아날로그적인 재료들과 더불어 노즐이라는 원시적인 장치는 가당치도 않은 게 사실이겠지만, 우리로서는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유추해 볼 수밖에요.
반면 나의 옵틱 블라스트는 어떻습니까? 애초에 추진력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에 압축 기체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을 뿐더러, 공격을 위한 준비 시간도 필요치 않으며, 진정한 의미의 광선을 뿜어 대고 있지 않나요? 리펄서 빔처럼 이름만 빔, 무늬만 광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혹여 리펄서 빔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이가 있거나 나의 주장에 반론을 펼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면 언제라도 주저 말고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전까지는 옵틱 블라스트를 리펄서 건과 비교할 때 적어도 효율성 면에서는 한 수 위라는 나의 주장이 유효할 것입니다.
--- 「아이언 맨의 리펄서 빔?」 사이클롭스 편 중에서
어벤져스에는 아무도 감당 못 할 괴물이 하나 존재합니다. 피부색은 슈렉 혹은 둘리와 같은 귀여운 초록색이지만 외모는 이들과 전혀 달라요. 〈어벤져스: 엔드게임 (2019)〉에서 비로소 브루스 배너의 정신이 그의 육신을 꿰차게 되었다지만, 한 번 자리 잡은 우락부락한 외모는 쉽게 바뀌지 않더군요. 그렇습니다. 바로 헐크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만나 본 히어로 캐릭터들 중에서 헐크를 제압할 수 있는 캐릭터는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우주 공공의 적 타노스를 제외하고서는 정식으로 맞붙는다고 하면 힘깨나 쓴다는 토르조차 헐크의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을뿐더러, 최첨단 장비들에 온몸을 맡긴 아이언맨조차 헐크 버스터 없이는 말도 쉽게 걸 수 없었지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지구에 사는 인간 중 헐크를 제압할 수 있는 이 하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 헐크의 상대로서 돌연변이 초능력자는 어떨까요? 만약 있다면 누구일까요? 최강 맷집을 자랑하는 울버린? 금속으로 족쇄를 채울 수 있는 매그니토? 강력한 폭풍우를 불러일으키는 스톰? 혹시 사이클롭스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눈싸움으로 승부를 지을 수 있다면 가능하겠네요. 물론 승부가 결정 나기 이전에 너덜너덜해질 테지만요.
제 아무리 난다 긴다하는 돌연변이 초능력자라고 하더라도 쉬운 싸움은 아닐 듯합니다. (……) 수많은 돌연변이 초능력자 중에서 어벤져스의 악동 헐크를 상대로 진정한 승리를 얻어낼 자 하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딱 한 명 존재하긴 합니다. 피 한 방울, 상처 하나 없이 헐크를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돌연변이는 바로 나, 밴시에요. 과연 나는 어떤 방법으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걸까요?
(……) 그의 눈에 아른거렸던 실루엣의 정체는 회사 내 오래된 선풍기였고, 끼익끼익 하던 소리는 오래된 선풍기가 회전하면서 내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오래된 선풍기는 들릴 듯 말 듯 저주파수의 음을 꾸준히 흘려보내고 있었고, 우연찮게도 소리가 갖는 주파수 영역이 남자의 각막 고유 진동수와 맞아 떨어져 각막을 미세하게 떨리게 만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남자는 유령의 실루엣과 같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이미지, 즉 왜곡된 이미지를 보게 된 것이지요. 일종의 해프닝인 셈이었던 것입니다. 그저 웃고 넘길 예전 기록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나는 이를 토대로 무릎을 탁 칠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요. 바로 헐크를 제압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말이에요.
“잠깐. 만약 내가 이 기록에서의 선풍기 이야기처럼 어둠 속에서 헐크의 각막과 동일한 저주파수의 목소리를 낸다면 어떨까? 그래. 그럼 분명 헐크는 유령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겠지?”
나는 옛 기록과 마주했던 그 날, 오랜만에 유레카를 외쳤고, 그 어떠한 물리적인 공격 없이 헐크의 심리를 뒤흔들어 정신 착란 상태, 일명 멘붕 (멘탈 붕괴) 상태에 빠지게 만들 나만의 독창적인 공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헐크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목소리」 밴시 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