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완성시켰다. 우리에게는 이 책을 완성해야 하는 어떤 계약 조건이나 시스 템도 없었다. 기획자인 나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질문을 정리해 3주에 한 번 메일로 보냈고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 답장했다. 어떤 형태의 결과물이 될지, 얼마큼의 사람들이 끝까지 함께할지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단지, 지나온 삶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마음’, 지난 삶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는 ‘용기’,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 있었다. 그리고 이 우연한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서로를 믿고 끝까지 함께해 준 ‘신뢰’. 결국 이런 가치들이 이 책을 세상으로 나오게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다시 조직에 속하고 싶진 않았지만 소속이 없다는 사실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의미 없이 구직 사이트를 뒤졌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 p.5,「서른이 지난 후 깨달은 것, 나탐정」 중에서
30대를 지나기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밥을 해 먹는데 이렇게 열심이지 않았다. 먹는 걸 좋아했지만, 밥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가끔만 잘 먹으려고 했고, 매끼를 신경 쓰며 해 먹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 p.57,「삼십 대가 지나간 식탁의 풍경, 맹규상」 중에서
나는 엄마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무엇이며,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것인지, 엄마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 p.117,「죽음 문턱에서 삶을 보다, 사미온」 중에서
‘그래, 인정 따위 안 받아도 성공 따위 안 해도 좋다. 외톨이가 된다 해도 이런 나를 끌어안고 살자.’ 그렇게 하나씩 내려놓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갑갑한 바비인형의 가면을 벗어던지자 그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 p.176,「나의 주희들에게, 사랑」 중에서
연애 시절, 어쩜 이렇게 찰떡같이 맞을까 했던 구 남친(현 남편)이 결혼 후엔 어쩜 이리도 다를까 싶은 사람이 되었다. 생활 습관은 당연하고 사소한 생각과 가치관이 어긋날 때는 정말 가슴이 ‘턱’하고 막혔다. 지긋지긋한 싸움이 반복될 때 남편이 물었다. “또 네가 잘못한 건 없지?”
--- p.183,「부끄러운 내 연애의 목적, 희진」 중에서
요리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아기자기한 주방 기기나 그릇만 보면 일단 사 놓기 바빴고, 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영어 회화나 헬스클럽 1년 회원권 이벤트에 굳이 성실히 참여해 한두 달 만에 유령 회원이 되곤 했다. 그렇게 길바닥에 버려진 나의 노동의 대가가 얼마만큼인지는 기억나지도 않고 기억해 내고 싶지도 않다.
--- p.221,「네가 사는 거 다 쓰레기야, 강혜원」 중에서
20대 중반에서 시작해 30대를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15년째 같은 질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은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집중해서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 p.225,「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둘과 함께한 15년, 도길동」 중에서
20대의 나는 정장에 구두 신고 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컨버스 운동화 신고 하는 일을 하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10년째 매일 정장에 구두를 신고 출근한다. 그 반전이 속물근성에서 비롯된 본능적 타협인지, 성숙한 의식의 전환인지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내진 않았다. 다만 그런 태도의 급선회가 일어난 순간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 p.233,「모든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회사원L」 중에서
그 시절은 하염없이 풍요로워 아스팔트에서도 민들레가 피어나던 시기였다. 안양천에는 폐수가 흐르고 한때 논밭이었던 곳에 포장도로와 ‘신도시’ 가 들어서던 시절. 천(川)을 따라 모여든 이주민들은 그곳에서 각자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 p.277,「잡초의 미덕, 20세기소년」 중에서
식물은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고 기다리며 해야 할 일을 한다. 우아하고 똑똑하다. 날카로운 직선이 없고 생명의 힘이 깃든 초록. 그림 그리면 식물 곁에 있으면 내 모습 그대로 자연스러운 순간이다. “괜찮아. 너의 생김대로 잘 지내고 있어.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네가 좋은 대로 하렴, 그래도 괜찮아!”라고 다독여준다.
--- p.282,「초록의 품, 강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