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효도’에 대해서 성추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효도란 게 뭣일까이? 되도록 부모님이 바라시는 걸 해드리는 것이 아닐까이? 내 생각에 쪼까 억지라고 생각되더라도, 고게 부모님이 바라시는 거믄 내 생각을 누르고라도 부모님 바라는 대로 해드려야제. 아, 자기를 버리고, 마음으로부터 부모의 소원을 들어 드려서 부모의 마음이 흡족하게코롬 해드리는 게 진짜 효도가 아인가?”
이건 마치 “임금이 비록 임금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신하는 신하됨을 끝내 포기해서는 안 된다.”가 아닌가? 나랑 동갑인 성추의 입에서 나온 이 말에 나는 내심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족보: 역사를 짊어진 아이덴티티」
무료하게 재실에 앉아 있는데, 새하얀 삼베로 된 한복을 입은 어르신이 뒷짐 진 손에 지팡이를 든 채 낮은 문으로 허리를 굽히며 들어오셨다. 백발의 머리카락은 짧게 쳤지만, 길고 멋진 흰 수염이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다. 걸음걸이에서도 완고함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잽싸게 담배를 끈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어르신은 마루에 올라와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시더니,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물으셨다.
“니 누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예, 저는 시마(嶋)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왔습니다.”
“흠……, 일본서 왔다꼬? 담배를 끄는 걸 보이, 한국 예절을 잊아뿐 건 아니구만. 그란데, 누구 자식이고?”
“저어, 일본 사람입니다.”
“그래? 우리 일가 아이가? 성은 뭐꼬?”
“‘시마’입니다.”
“심(沈) 가라꼬? 이 동네에는 심 가는 없을 낀데. 조상 성묘라도 왔나?”
“‘심’이 아니고 ‘시마’입니다. 한국 사람이 아니고 일본 사람입니다.”
“일본에도 성은 있겠지. 짐승이 아닌 다음에사.”
“‘시마’라는 게 일본의 성입니다.”
“허어, 일본 간 지는 몇 대나 됐노? 성을 묻고 있지 않나? 왜놈 성(일본식 성)으로 갈았다 캐도, 잊아 뿌지는 않았겠제. 성을 잊으면 조상님께 면목이 없제.”
처음 뵈었을 때의 이 오해는 끝내 바로잡히지 않았다. 어르신은 내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끝까지 이해해 주지 않으셨던 것이다.--- 「난세를 살았다: 상봉 어른, 85세」
다시 며칠 뒤. 우리는 충청남도 남부 보은읍 근처의 마을을 찾았다. 아침저녁으로 한 대씩 있는 버스도 마을에서 몇 킬로미터 앞의 큰길을 지나갈 뿐인 산골 동네로, 여든 가까운 노부부가 두 간짜리 작은 집에 살고 계셨다. 조부가 여기로 이사를 왔지만, 마을에는 일가친척도 없다고 하셨다. 가난 때문에 이주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제, 외아들도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찾아뵌 뜻을 듣고 어르신이 꺼내 오신 족보는 붓글씨로 직접 쓴 것이었다. 물론 그 일가 전체의 족보가 아니라 자기와 관련된 지파 부분만이지만, 그것만 해도 두께가 4센티미터나 되었다. 베껴 쓰는 것도 큰일이었으리라.
“일가헌티 족보를 빌려다가 우리 애가 일일이 베낀 거유. 한자랑 붓글씨는 내가 갈쳤지유. 암만 가난해두 교육은 제대로 시켜야 허니께.”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르신은 자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셨다.
“촌동네라 대접할 거이 암것두 읎는디, 그려두 요기라두 허구 가셔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들고 오신 상에는 인스턴트 라면에 반 되 남짓한 막걸리가 곁들여져 있었다. 이토록 기억에 남는 라면은 두 번 다시 맛보지 못했다.--- 「한국의 손님접대: 잊지 못한 만남들」
이문화 이해는 해석이다. 하지만 단지 해석일 뿐이라는 견해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해석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사건이 사건으로 관찰자의 눈에 포착되는 순간, 거기에는 이해와 오해가 뒤섞인 의미 부여의 필터가 개입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니까 같은 문화 안에서도 견해의 차이가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이다.
의도적 행위로서의 이문화 이해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현상을 발판으로 삼아 그것들을 해석하고 추상화해서, 일반론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전체상을 끌어내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그러나 추상화란, 실은 몇 겹으로 의미가 부여된 필터를 통과한 ‘사실’에서마저도 더 멀어져 가는 과정이다. 그런 가운데 만들어진 전체상이란, 노골적으로 왜곡된 것이 아니더라도, 관찰자의 눈에 비친 부분만이 유독 확대된 그림일 것이다.--- 「오해와 이해: 이문화(異文化) 사이에서」
나 같은 외국인한테 민속촌은 근대화되기 이전의 한국의 생활풍속을 손쉽게 볼 수 있는 장소다. 현대화된 한국의 도시에서 자란 젊은이들한테도 일상생활에서 사라져버린 과거 한국의 풍속을 학습하는 장이 된 듯하다.
하지만 농촌에서 단체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민속촌을 관광 코스에 넣어서 구경하러 온다. 이 사람들로서는 바로 얼마 전까지 자기들이 쓰던 도구며 사는 모습이 거기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아, 저랬지. 맞아, 이랬지.” 하고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해설은 무용지물이다. 어느 농가에 들어선 두 명의 여성이 반쯤 재미로 공이를 집어 들고 절구를 찧기 시작했을 때, 전시품과 구경꾼 사이의 거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 「융성하는 전통: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