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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

박물관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

: 사적인 국립중앙박물관 산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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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38g | 120*190*20mm
ISBN13 9791192512037
ISBN10 119251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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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부처는 손에 꽃을 든 미륵부처로 추정되고 오른쪽 부처는 가슴 앞에 낸 손에 약그릇 같은 작은 물건을 쥐고 있어 중생을 치료하는 약사부처로 짐작한다. 바람이 불고 솨, 대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나면 고양이들이 지나간다. 그 풍경 안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부처상 사이를 지나 다시 대숲으로 사라지는 고양이들을 눈으로 쫓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고양이는 약사부처가 쥐고 있는 약을 전해주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게 아닐까?
---「여는 말」중에서

연한 푸른빛을 지닌 유리병. 주둥이와 목에 파란 띠를 두르고 손잡이에 정성스럽게 금실이 감긴 목이 긴 유리병. 실용적인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면 물이나 술을 담는 용도로 제 역할을 했겠지만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아니 반드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들은 무용하다는 오해를 받아야 가치 있어 보이는 법이니까. 그저 두고 보면서 절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몰래 담아두었기를 바란다. 절대 담을 수 없지만 꼭 담고 싶은 것들. 강아지 털 위에 묻은 오후의 햇볕이나 어떻게 해도 줄어들지 않는 그리운 마음이나 제일 좋았던 시절 불었던 따스한 봄바람 같은.
---「담아두고 싶은 것들」중에서

평양 술주정뱅이만큼 아빠 따라 나온 애들이 많다. 엄마 치맛자락 잡고 있는 꼬마들도 보이지만 아빠 등에 업혀 있거나 아빠 손 꼭 잡고 있는 어린이들이 보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부축하는 아이, 아르바이트 하는 아이, 공부하다 왔는지 책을 든 아이도 보인다. 삿갓 쓴 아버지한테 뭔가 조르는 꼬마도 있다. 평안감사가 애들도 참석 가능하다고 방을 붙였나보다. 만약 저 으리으리한 축제가 ‘노 키즈’로 열렸다면 그림의 재미가 좀 덜했겠다. ‘노 키즈’ 행사가 아니라서, 대동강변이 ‘노 키즈존’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뉘 집 자식들인가」중에서

이모들이 아무리 놀려대도 마음은 변치 않았다. 희고 긴 손이면 게을러야지, 게으른 게 어때서. 생각이 깊다는 거잖아. 오래 생각하니까 행동이 느린 것뿐이야. 긴 손가락을 너무 재빠르게 움직이는 건 긴 손가락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소리를 치면서 굳건하게 나의 취향을 지켜냈다.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10세기 전반에 조성된 철조여래좌상을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다. 내가 찾던 손가락이 거기 있었다.
---「손가락이 긴 남자」중에서

낮게 내려앉은 새파란 하늘에 갖가지 모양의 흰 구름이 떠다니는 날이 여러 날 이어지곤 했다. 뭉게뭉게 마치 처음 본 것 같은 구름이 하늘 위에 피어나던 날 SNS는 온통 하늘 사진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썼고 쉽게 만날 수 없었지만 이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다들 ‘뭉게뭉게’ 해졌고 그런 날들은 이런 세상이라도 제법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대는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로 나쁘지만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비로소 제대로 ‘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 백제 사비시대 문화를 대표하는 산수무늬 벽돌을 보면 머릿속으로 그 풍경이 자연스럽게 채색된다.
---「참을 수 없는 순간」중에서

지금의 내가 만드는 미래의 삶이 아름다울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사람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희망의 빛이 사라져서라고 하지 않나. 곧 다시 가야겠다. 반가사유상의 머리 위 조명이 별처럼 빛나는 게 좋다.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형태의 삶을 상상하게 해준다.
---「모든 삶은 아름답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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