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되면 부족하지만 경험했던 내용들을 엮어서 책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나의 작은 실천이 공황장애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대략 일 년 동안은 대학병원 응급실 주차장 차 안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이렇게 병원 앞에서 보내는 시간들은 오히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든지 머리가 마비되는 것 같은 증상이 찾아올 때면, 바로 응급실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게 느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증상들이 나타나는 상황이 오면 내가 마치 “위태로운 상황에서 조국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라는 심정의 독립투사라도 된 것처럼 차 안에서 바로 응급실로 뛰쳐나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점점 더 심한 공황상태가 되어 스스로 만든 수렁 속으로 현혹이라도 된 듯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학창 시절에 상실된 자존감이 가슴에 상처로 차곡차곡 쌓아갔고, 그 못된 선생들을 마음속으로 수천 번 살인하면서 살았어야 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하나둘씩 쌓여 ‘공황’을 절친한 친구로 만들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분리불안 장애 환자의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었으며, 낯선 사람들에게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선택적 함구증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공황장애를 겪게 되는 밑거름이 되고 있었다.
---「제1장 영화 ‘내 인생의 친구 공황장애’의 시작」중에서
원망과 증오의 씨앗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는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여러 마중물 중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끔 일어나는 이러한 나의 끔찍한 행동은 조금만 견디면 공황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매일매일 명상과 운동 그리고 책 읽기 등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해 가던 나를 마음껏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에서는 이럴 때마다 조화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실망하면서 허탈해지는 마음도 더욱 깊어만 간 것이다.
‘공황장애’와 처음 만날 때만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공황장애는 생소한 용어였고, 신경정신과를 다닌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거나 미쳐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회적인 인식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2004년 처음 증상을 경험할 때에도 그랬고, 2005년 심각한 공황발작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자주 찾을 때도 특별한 정보도 없이 “어서 빨리 스트레스는 물러가라.”라고 외치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인 줄 알았다.
---「제2장 내 안의 분노, 불안, 두려움을 보다」중에서
‘공황장애’ 증상을 나타나게 하는 원인이 체질별 심리유형에 따라 어떻게 발현되며 극복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결하고 싶었다.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은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로 사람들의 체질마다 어떠한 심리유형의 특성이 있는지를 연구하여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은 항상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지나친 부분은 잘 조절하여 넘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족하거나 치우친 부분들을 극복하면 현명한 사람이 되고 극복하지 못하면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이 된다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라는 의미를 여실히 일깨워 준다.
---「제3장 체질로 본 ‘공황장애’의 7가지 원인과 극복 방법」중에서
가끔 찾아오는 공황발작은 마치 내가 제대로 살고는 있는지 테스트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론 약을 먹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정면 돌파하여 이겨내 보기도 하였지만,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은 오히려 처음보다 조금씩 더 지치고 힘들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의 답을 찾고자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출가한 스님처럼 스스로 수행 시간표를 만들었고, 지켜야 하는 행동규칙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실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천하여 극복하려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나에게 가장 큰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분노와 불안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진정으로 내 가슴에서 원하는 것을 잊고, 희망도 잃어버리고 살았던 내가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틔우며 나를 찾는 다양한 노력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공황발작으로 인생이 뒤바뀐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삶에 대한 가치를 잊어버리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청소년 시기에 많은 방황을 했었을 아들들이 오히려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공황’은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글을 통해서라도 “감사하고, 고맙다.”라고 전하고 싶다.
공황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두려움과 불안을 적대시하지 말고 잘 다스려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데는 명상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서 나의 생활 습관이나 행동들이 나태해지거나 조화롭지 못해 감정들이 요동을 칠 때면 사정없이 나를 찾아와서 괴롭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했다. 오늘도 생각해 보니 ‘공황은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요술 방망이’ 역할을 잘 수행하였던 것 같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4장 ‘공황장애’, 나만의 극복 방법을 찾아라!」중에서
“영혼의 쉼터를 찾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날을 방황하였고, 고통과 외로움을 나 홀로 위로해야만 했었다. 슬퍼도 슬퍼할 수 없었고, 즐거워도 즐거워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시간들이었다. 이처럼 나의 심장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던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다.” 윗글은 일기장에 숨겨 놓은 이야기 중 일부분이다. 많은 시간을 방황하면서 홀로 감당해야 했던 일들은 아들들이 보내 준 사랑의 선물로 견딜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터질 것 같은 뇌의 압력에 내가 돌고 있는 것인지, 하늘이 돌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참으로 힘겨웠던 날이다. 다리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아이처럼 흐느적거리고, 순간순간 밀려오는 공포감으로 심장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마치 길을 잃어버린 소년처럼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어느덧 폭풍이 지나갔다. 폭풍은 한없는 고요함과 평온함의 마중물이 되어 정지되어 있던 나의 온몸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이제야 정신이 차려진다. 오늘은 내 님이 지나갔다. 참으로 좋다.” 윗글은 갑작스럽게 공황발작이 찾아올 때 느꼈던 것을 적어 놓았던 일기장 속 이야기이다. 이처럼 ‘공황장애’는 내가 삶에 대한 본질을 잃어버렸다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나를 깨우쳐 주는 스승을 자처했다.
삶의 무게에 지치고 힘들어 방황을 할 때 많은 분들이 격려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살아야만 되는 의미를 깨닫게 해주셨다. 덤으로 사는 나머지 삶을 조금이나마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제5장 ‘공황’이 가져다 준 선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