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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낮의 꿈

: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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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332쪽 | 476g | 148*224*30mm
ISBN13 9791167070845
ISBN10 116707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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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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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뒷골목의 보닛을 열어 보면
각종 슬픔이 벌레처럼 바글거렸다
시퍼런 산소 불로 구멍 난 삶을 때우다 보면
자꾸만 더 커져 가던 구멍
휑한 그곳으로 마구 몰려들던 어머니, 어머니
세상엔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많다는 것도
나는 그때 알았어요
가슴이 터지도록 짐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저물던 하루, 어둠 속 샛강의 꼬리를 밟고 서면
강 건너 여의도 불빛이 뒤척였다
멀리서만 반짝이는 세상은
나에겐 건널 수 없는 슬픈 손짓이었다
------「박수봉, 영등포」중에서

컨베이어벨트가 내 심장 박동을 끌어올린다. 피가 돈다. 몸에 혈액들도 라인의 부속으로 느껴진다. 내 몸도 컨베이어벨트의 일부로 느껴진다. 몸의 내부로부터 세계의 내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축의 구동을 느낀다. 축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속도는 더욱 가속화한다. 그 속도는 까무러치지 않을 정도의 경계를 유지하며, 내 노동과 울분을 길들인다. 몸의 한계가, 그 속도가 나를 점령한다. 나는 너에게 맞물려 구겨진다. 굴종한다. 나는 너다. 일체 당하는 희열. 이상한 웃음이 입 안에 고인다.
고깃덩어리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머리, 팔, 손, 다리, 발, 몸. 나는 도살된다. 해체된다.
분쇄되어 사라진 그들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들이 ‘지금’ 라인 앞에 있다. 수많은 육체들이,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쌓여 간다. 거대한 무덤으로, 그들이 여기 있다.
---「김은진, 한여름 낮의 꿈」중에서

화요일, 출근하니 상사가 불렀다. 집에 가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돼 의도하진 않았지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소개해 준 지인에게도 미안하게 되었다고 전화했다고 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내 남편 이야기를 꺼낸다.
“남편분에게도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내 고향 친구 회사 후배인데…….”
이게 도대체 뭔 소리지?
“남편분이 내 욕을 많이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 느낌이다. 나한테 미안하면 되지 왜 얼굴도 본 적 없는 남편에게 미안하단 말을 할까? 얼굴 맞대고 일한 나는 아줌마니, 오늘 끝나면 다시 볼 일이 없고, 내 남편은 고향 친구의 회사 후배이기도 하니, 돌고 돌아 다시 만날지도 몰라서 더 껄끄럽다는 것인가? 그래서 나보다 내 남편의 생각이 더 걱정되고 눈치 보인다는 말인가. 이 상사의 인식 속에서 나라는 사람은 나 그 자체보다 자기 고향 친구의 회사 후배의 아내라는 점이 더 중요하고 신경 쓰이는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강정민, 명절 선물 세트」중에서

시와 가까워지기에 좋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소년기는 시를 읽고 쓰기에 좋은 때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시 부문에 응모된 작품들을 읽으며 그러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수상자들은 이번을 계기로 더 즐겁게 글을 쓸 수 있기를, 아쉽게도 낙선한 분들은 다음을 기약하면서 더욱 시와 가까이 지내시기를 바란다.
---「제17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열사의 맑고 강인한 마음과 닮은 작품〉」중에서

전태일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문학은 언제나 양지보다 음지에 눈을 맞추었다. 우리 청소년들도 빨리 가기보다는 좀 느려도 함께 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삶과 문학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전태일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하는 방법은 우리가 그를 잊지 않음으로 제2, 제3의 전태일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일 터이다.
---「제17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산문 부문 심사평 〈양지보다 음지에 눈을 맞추는 문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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