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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등대로

미네르바-0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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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588쪽 | 768g | 148*210*35mm
ISBN13 9788949718170
ISBN10 894971817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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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둥글게 퍼져나가는 그 육중한 소리의 여운이 대기 중에 스며들었다. 우리들 인간이란 참으로 바보들이로구나, 그녀는 빅토리아가街를 질러가면서 생각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인생을 그렇게 사랑하고, 또 그렇게 바라보고, 자기 주위에 쌓아올리고 또 허물어뜨리고, 한 순간도 쉴 새 없이 새로이 창조하려는 것인지, 그 까닭을 누가 알겠느냐 말이다. 그럼에도 말할 나위 없이 지저분한 여자들, 또는 정말 실의에 빠져 문간 층층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불쌍한 인생들(술이 이들의 몰락의 원인이었지), 이런 인생들 역시 우리가 인생을 사랑하듯 똑같이 인생을 사랑하고 있다.
--- pp.14~15

음, 비행기가 이쪽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군, 셉티머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신호는 실제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 이 정묘한 아름다움만으로도 신호임은 분명했다. 하늘에서 사그라들어 녹아드는 연기의 글자를 바라보며,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 글자들은 무한한 자비와 친절한 웃음 속에 상상하지도 못할 아름다움을 하나씩 하나씩 나타내보이며, 그저 보고만 있으면 아름다움을, 더욱 많은 아름다움을 그냥 제공해 주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눈물이 그의 볼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 pp.39~40

브로치를 탁자 위에 내려놓으면서 클래리사는 별안간 경련을 느꼈다. 마치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얼음같이 차디찬 갈고리가 느닷없이 몸에 푹 꽂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아직은 완전히 늙은 것은 아니었다. 막 52살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이해가 다 가자면 아직도 많은 날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6월도, 7월도, 8월도! 여러 달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며 클래리사는(화장대로 가면서) 인생의 찰나를 붙잡으려는 듯이 순간의 핵심 속으로 뛰어들어가 이 순간을 고정시켰다. 거기 6월 아침의 이 순간을 지난 모든 다른 아침들이 쌓이고 쌓인 압력으로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거울과 화장대, 늘어선 화장품 병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 p.62

한 번만 헛디디면 인간 본성이 덤벼든다, 셉티머스는 속으로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홈스와 브래드쇼가 덤벼든다. 그자들은 사막을 약탈한다. 그리고 고함을 지르며 황야로 사라진다. 그자들은 고문기구들을 사용한다. 인간 본성은 무자비하다.
--- p.145

이 뒤늦은 시계소리는 앞치마에 잡동사니를 잔뜩 담아가지고, 빅벤의 소리가 지나간 자국을 따라 수다스럽고 요란스럽게 울리며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몰려드는 마차, 포악을 부리는 짐차, 안달내며 접근하는 수많은 우락부락한 남자들과 관능미를 과시하는 여자들, 회사와 병원들의 원형 지붕과 첨탑에 부딪치고 깨진다. 그러다 이 앞치마에 잔뜩 담긴 자질구레한 일들의 마지막 유물인 시계소리의 여운은 잠시 길거리에 멈추어 서서 “그것은 육체의 욕망이다”라고 중얼거리는 킬먼 양의 육체에 부딪쳐서 지친 파도의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렸다.
--- p.186

우리는(그녀는 온종일 보튼과 피터와 샐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늙어가리라.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잡담에 둘러싸여서 평소의 생활 속에 훼손되고 흐려지고, 타락과 거짓말과 잡담 속에 매일 중단되어 버리고 마는 한 가지. 이것을 그 청년은 지켜낸 것이다. 죽음은 저항이다. 죽음은 사물의 본질과 소통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반면에 사람들은 본질이 불가사의하게 자꾸만 자신들에게서 벗어나버리기에 핵심에 가 닿을 수 없다고 느낀다. 친밀했던 관계도 멀어지고 황홀감도 식어간다. 인간은 고독하다. 하지만 죽음 속에 포용이 있다.
--- pp.263~264

맞은편 집 방에서는 노부인이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참이다. 노부인이 방을 가로질러 갔다가 다시 창가로 오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이렇게 건너다보는 것이 흥미롭다. 저 노부인도 내가 보일까? 응접실에서는 아직도 손님들이 웃으며 떠들고 있는데, 나는 이 노부인이 조용히 자러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재미났다. 이제 노부인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시계가 치기 시작한다. 청년은 자살했다. 그래도 동정하지는 않았다. 시계가 친다. 하나, 둘, 셋. 동정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이렇게 진행해가는 것이니까. 아, 노부인이 드디어 불을 껐다! 집 안이 완전히 깜깜해졌다. 인생은 이렇게 진행되기 마련이라고 클래리사는 되뇌었다.
--- p.266

바닥에 앉아 육해군 백화점의 카탈로그에서 냉장고 그림을 오려내고 있던 제임스 램지에게 어머니의 말은 그 냉장고에 더없는 천상의 기쁨을 던져주었다. 냉장고 그림의 가장자리는 환희로 장식되고 있었다. 손수레, 잔디 깎는 기계, 포플러나무의 소리, 비 오기 전 창백해지는 잎사귀들, 까악까악 우는 까마귀, 마당을 쓰는 빗자루 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제임스의 마음속에 또렷한 색조로 채색되어, 독특한 암호와 비밀의 언어를 갖고 있었다.
--- pp.281~282

두 사람은 그곳에 서서 빙그레 웃었다. 넘실대는 파도와, 만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물살을 가르고 달리다 멈춰서 흔들리는 채로 돛을 내리는 범선을 보면서 똑같은 즐거움을 느끼며 마음이 흥분으로 들썩거렸다. 이윽고 이 동적인 움직임에 이어서 풍경을 완성하려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그들은 저 멀리 이어진 모래언덕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이제까지의 즐거움 대신 슬픔이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 p.303

등대의 빛이 또다시 눈에 들어왔다. 현실로 돌아온 자신과 등대와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을까? 그녀는 의심하면서 어쩐지 아이러니를 느끼며 그 한결같은 빛줄기, 무자비하고 가차 없는 빛을 바라보았다. 그토록 자신과 동일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자신과는 멀리 동떨어져서 그녀에게 명령하고 그녀를 마음대로 부렸다(밤중에 눈을 뜬 그녀는 침대를 활처럼 둥글게 비추고는 바닥을 어루만지는 빛을 보았다). 그러나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그 빛줄기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 p.362

구름을 비집고 나온 별빛과 떠도는 배와 등대에서 흘러나온 정처 없는 불빛은 계단과 깔개 위에 파리한 발자국을 남기며 바람 소대를 이끌었다. 바람은 계단을 오르고 침실 문을 더듬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바람 소대도 멈추어야 했다. 다른 모든 것들이 소멸하고 사라지더라도 여기에 잠든 것은 확고하고 끄떡없었다. 혹은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오고, 혹은 숨을 내뿜으며 더듬대고 들어와 지금 저 침대 위로 몸을 수그리고 있는 빛과 바람에게, 여기에 있는 것은 너희들이 손을 댈 수도 파괴할 수도 없다고 누군가가 말하는 듯했다.
--- p.442

하지만 릴리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가 아니라 모든 것이었다. 겨우 몇 마디로 사상을 부수고 해체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한다.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램지 부인에 대해”, 아니,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순간의 조급함은 언제나 과녁을 벗어나 버린다. 말은 옆으로 빗겨나가 목표한 것의 몇 센티미터 아래에 꽂힌다. 그래서 포기하면 목표를 맞추지 못한 생각은 다시 가라앉는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중년들처럼 신중해지고, 남의 눈을 피하게 되고, 이윽고 양미간에 주름이 생기며 언제나 근심어린 표정을 짓는다. 육체적인 감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저 공허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 p.505

릴리는 자기가 옳았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말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릴리가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그는 대답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인류의 모든 약점과 수난을 감싸며 거기에 서 있었다. 인류의 마지막 운명을 연민을 품고 관대한 눈으로 살피고 있는 것이라고 릴리는 생각했다. 그가 지금 이 등대 여행에 왕관을 씌웠다고, 릴리는 그의 손이 천천히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 p.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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