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仁)을 닦고 인을 얻는 것은 겸양이 근본이지.” 이거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에서 성인 말씀이 똑같다. 부처님 말씀은 또 말할 것도 없고, 노자(老子)의 말씀도 그렇고, 전부 다 그래.
--- p.22
君爲臣綱(군위신강)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된다.”
夫爲婦綱(부위부강) “남편은 부인의 벼리가 된다.”
父爲子綱(부위자강) “애비는 자식의 벼리가 된다.”
불교에서는 육신통(六神通), 여섯 신통 중에 삼명(三明)을 추려놨다. 천안명(天眼明), 누진명(漏盡明), 숙명명(宿命明). 중요한 거니까 그걸 추렸다. 그와 같이 삼강(三綱)에 삼강오상(三綱五常)은 내가 오륜삼강이라 하는 말인데 이것도 추렸단 말이야. 오상에서 추려서 삼강이라 그런다. 세 벼리, 으뜸 되는 것이다.
--- p.33
옛날엔 도학군자(道學君子)가 글 가르치고 돈 받는 법이 없어. 지금은 학교가 사회 교육 제도로 되어 가지고서 선생이 국가의 법으로서 모두 월급을 받게 되었지만, 옛날에 그 사회 교육 제도가 발달되기 전에 자기가 자기 사랑에 앉아서 글을 가르치고 그래서 돈 받는 건 거의 없어. 저 보라고 굶어 죽어도 안 받어. 그러니까 사제 간 의(義)가 그렇게 두텁지. 스승?제자의 의라는 것이 그렇게 두꺼운 거다. 부모와 임금과 스승과 똑같이 대접하는 거야.
--- p.146
공자가 칭찬한 거야. 이 사람아 ‘吾得子路以後(오득자로이후)’로, 내가 자로를 얻은 뒤로부터, 자로가 내 제자 된 뒤로부터 ‘惡聲(악성)이 不入於耳(불입어이)라.’ 고약한 소문이 귀에 한 번도 안 들어왔어. 이게 그 소리여. 석문(釋門)에, 불교에 경(卿)이 있는 것이 마치 공자에게 자로가 있는 것과 한가지다 이 말이여. 불교 옹호를 잘한다고 시방 황제가 칭찬하셨어요.
--- p.197
?(돌) 雪竇(설두)도 亦漏逗不少(역루두불소)로다
“돌(?)!” 대혜가 설두를 또 몽둥이 내리는 거야. “설두 자네도 허물이 적지 않네.” 설두 스님이 시방 이렇게 말해도, 설두도 자네도 허물이 적지 않네. 이렇게 해서 설파해놓은 것이 돌! 설두도 역루두불소다. 설두도 또한 봉망(鋒?)이 태로(太露). 설두도 또한 허물이 적지가 않구나! 이제 자돌(自?)이 나온다. 하나는 수보리를 돌(?) 주고, 하나는 설두를 돌 주고, 또 하나는 자돌(自?), 대혜 자기를 몽둥이 때리는 거야. 자기도 허물이 적지 않다는 거.
--- pp.259~260
공자님 살림과 부처님 살림살이 그 속의 많은 경치를 누가 응모했더냐? 누가 자세히 보았더냐? 이 말이야. 아무도. 청심독객인 내가. 맑고 깊은 그 바다를. 공자의 바다와 석, 부처님의 바다, 그 바다 맑고 깊은 거기를, 돗대질 해가지고, 바다니까 돗대질 한다 이 소리야. 독견(獨見) …… 니 홀로 보아 …… 공자 살림살이 부처님 살림살이를 내가 다 배 타고 댕기며 다 봤다. 하니, 장천추수여주라 긴 하늘 가을 물에 한 빈 배만 남았어. 어뗘 멋있잖아?
--- p.281
癡人面前(치인면전)에 不得說夢(부득설몽)이로다
“어리석은 놈 앞에서 꿈 얘기 못허것구나.”
꿈이라는 게 본래 헛것인데, 어리석은 놈한테 꿈 얘기하면, 옳으니 그르니 이것이니 저것이니 한단 말이야. 앙산 스님 말씀은 치인면전에 꿈 얘기한 거란 말이야. 이런 사사배들이 앙산 스님 뜻을 몰랐다 이 소리여. 이 말이 깨닫는 것을 뒷전에 두고 한 말이 아니거든. ‘오즉불무(悟則不無)어니와,’ 깨닫는 것은 없지 않지만, ‘쟁나락재이두(爭奈落在二頭)아,’ 제2두에 떨어져 있는 걸 어찌하랴. 그게 ‘깨닫는다면은 제2두다.’ 이렇게 한 말인데, 사사배들은 그걸 작회(作會)한다, 잘못 안다 이 소리야. 그래서 치인면전에 부득설몽이로다.
--- p.358
若是不?不?(약시불감불개)하며 半進半出(반진반출)하야 蛇?蝦?(사탄하마)인댄 西峰(서봉)은 敢道驢年(감도려년)에야 始得(시득)다호리라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그건 알아? 자(子)는 쥐, 축(丑)은 소, 인(寅)은 범, 묘(卯)는 토끼, 진(辰)은 용, 사(巳)는 뱀, 오(午)는 말, 미(未)는 염생이, 신(申)은 잔내비, 유(酉)는 닭, 술(戌)은 개, 해(亥)는 돼지. 나귀는 어떻게 알아? 어? 여기에 나귀는 없단 말이여. ‘나귀해(驢年)에 가서야 너 이놈 얻을 것이다.’ 하면은 ‘천만 년을 해봐라 너 이놈 얻을 날이 있는가.’ 이 소리여. 허허허허. 그것도 잘 알아들어야 해. 누구한테 문장 쓸라면 ‘나귀해에 가서나 얻어봐~.’ 재미나지?
--- pp.432~433
원주가 어떤 조사를 대놓고 법문을 설해달라고 하니까, 한참을 그냥 있으니까 “스님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데요?” 그러니까 경유경사(經有經師)하고, “경은 경 가르치는 선생이 있고,” 논유논사(論有論師)하니, “논은 논 가르치는 선생이 있으니,” 쟁괴득노승(爭怪得老僧)이거든.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길 게 뭐 있어?” 이러는 게 조사들 칼을 쓰는 솜씨거든.
--- p.461
그러니까 달마 스님 낚시에 안 걸리는 뇜이 하나도 없다 이 말이여.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하니까, 문자는 전혀 쓸데없는 걸로 알면, 달마 스님 낚시에 걸려서 죽은 놈인 거야. 문자 쓸데없다, 경(經) 쓸데없다, 이런 게 벌써 달마 스님 낚시에 걸려서 목숨을 잃어버린 뇜이란 말이야. 왜? 문자가 쓸데없는 것이라면 달마 자신이 뭣 때문에 「사행론」, 「혈맥론」, 「진신론」 그런 것을 너절하게 뭣 하러 지어놨어? 또 『능가경』 4권을 뭣하러 전법할 때 같이 전했어?
--- p.475
선에 대한 거나, 교리에 대한 거나. 선(禪)에 대한 것은 『진심직설(眞心直說)』로부터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교리에 대한 것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에 구체적으로 다 밝혀놨다. 바로 불교 개론이다. 그래서 그거 한 권만 읽으면은 불교 개략을 대강 뚫는다. 집(集)으로는 『영가집(永嘉集)』이 불교 개론이다. 『영가집』 그 하나만 볼 거 같으면은 선문의 종지와 팔만대장경 교리를 거의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거야.
--- pp.487~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