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으로 이 거사의 큰 그림을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의 강고한 민씨 척족 정권을 갈아엎기 위한 정변이 총 세 차례 있었습니다. 1882년, 구식 군대와 대원군이 왕비와 민씨네를 몰아냈죠. 하지만 청군의 개입으로 왕비와 민씨 정권은 곧바로 복귀했습니다. 이어서 1884년, 친일 개화파가 민씨 정권을 축출했는데- 역시 청군의 개입으로 곧바로 민씨 정권이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인 1894년, 일본군에 의해 민씨 정권이 축출되었지요. 하지만 올해 삼국간섭의 여파로 다시금 민씨 정권이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민씨 정권의 핵심, 가시박 뿌리 같은 에일리언 퀸- 왕비를 치우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질 않는다. 말인즉슨 왕비의 물리적 제거를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 p.28~31, 「제2장 세팅」중에서
1895년 10월의 을미사변으로 민씨네와 정동파가 축출되고 갑오파 단독 정권인 4차 김홍집 내각 출범. (…) 그리고 대망의 룩변 개혁- the 단발령!!! (…) “으어어어어~ 신체발부수지부모거늘! 어찌 부모가 물려주신 머리카락을 그리 쉽게 자른단 말이오이까!!!” “-라는 건 사실 표어성 드립일 뿐, 실제로는 다들 옛날부터 잘만 잘랐죠…” (…) So, 단발령에 대한 반발은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상투와 망건이 금지되면서 양반의 의관을 제대로 갖출 수 없게 된다는 부분이 문제였으니.
--- p.89~91, 「제7장 을미개혁, 의병」중에서
궁문을 지키는 수비병들이 검문을 이유로 가마 창문을 열고 궁녀들을 희롱하는 일이 잦았다. “유후~ 김나인, 요즘 에센스 바꿨나 봐요?” 이 꼬라지를 여흥부대부인(임금의 엄마)이 목격. “아, 진짜! 이 나라 법도가 언제 이리 막장이 되었소이까?! 궁녀가 탄 가마 창문 열어젖히는 무뢰배가 한 번만 더 눈에 띄면 SNS에 공론화해주겠소!!” 그리하여 2월 즈음에는 궁녀가 탄 가마를 함부로 열어젖히는 무뢰배가 없게 되었다… 2월 10일, 인천의 러시아 군함에서 수병 100명이 상륙해 서울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온다. 다음 날인 2월 11일 새벽 5~6시. 2대의 가마가 궁을 빠져나와 정동길로 향한다.
--- p.110~111, 「제8장 사랑의 메신저」중에서
정복 전쟁은 영토와 배상금뿐 아니라, 국민에게 그들 아래 둘 수 있는 하위 카스트를 전리품으로 안긴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느끼는 우월감에 도취된 국민은 위를 올려다보지 않는다. 1등 국민이 성립되려면 2등 국민이 존재해야 하지. 그렇게 우리가 이끌어줘야 할 열등한 2등 국민이라는 발밑 존재를 제공받은 1등 국민은- 그런 세계관을 계속 확장하는 번벌- 군부의 제국주의 방향성에 열광적 지지를 보내게 된다. 민권이니, 데모크라시니, 그딴 건 이 방향성에 걸림돌일 뿐이지!”
--- p.154, 「제11장 End of Epilogue」중에서
1896년 5월 30일, 모스크바 교외 호딘카 들판에서 흥분한 군중이 몰리며 대규모 압사 사고 발발. 나흘 전에 성유식을 치른 차르는 크게 경악. “어어어;; 남은 일정 다 취소하고; 사고 유족, 부상자 위문하고; 교회에 애통의 기도 드리러 가야;;” “프랑스 대사가 주최하는 축하 무도회는 아무래도 취소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 대사가 반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프랑스 공화국의 체면이 걸려 있는 무도회입니다;;” (…) 호딘카 참사 당일 밤, 황제 부부는 프랑스 대사의 무도회에 참석. 굳은 표정으로 회장을 일순한 후 바로 퇴장한다. (…) 그러나 이미 반정부 스피커들에 의해 호딘카 참사 직후 차르의 무도회 참석은 사이코패스 피의 대관식 신화로 가공되어 천하가 혀를 차게 만들었다.
--- p.170~174, 「제13장 모스크바 미팅」중에서
1895년 10월, 을미사변 발발. “민씨 Queen이 죽었다면! 이제 조선 돌아가서 뭔가 해볼 만한 여지 ssup possible!!” 1895년 12월 25일, 서재필 입국. (…) 귀국 후, 들러붙는 친인척들 다 쌩까고 구걸하는 거지들도 발로 참. “이 savage, 폭력, 굴종의 땅에 사는 barbarian들을 서구 문명의 light 근처로 이끌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my 카르마요.” “ㅇㅇ, 이 무지의 왕국을 계몽하기 위해서는…” “신문이지! 신문!!” (…) 그렇게 100% 조선 정부 출자로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 “미개한 한문 거르고! 100% 순한글 신문!!”
--- p.223~228, 「제16장 The Independent」중에서
“1897년 상반기 들어 군대와 궁, 충실한 왕권 보위 세력인 근왕파까지… 강력한 왕권을 회복해 휘두를 조건들이 다 갖춰졌다. 대외적인 여건을 보자면 청은 완전히 조선에서 떨어져 나갔고,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도 대폭 감소. 이제 진짜 자주독립국 느낌!! 이 시점이야말로 백성에게 강력한 왕권에 기반한 새로운 국가 비전을 선포하기 적당한 타이밍이 아닌가! 뭣보다… 트라우마만 가득 채워온 지난 15년여… 크악!!! 저 수치와 굴욕들을 개쩌는 업적으로 상계해버리겠다!! 왕조 500년, 그 어느 임금도 해내지 못한 업적!! 열성조께선 보고 계시오이까!!! 이 몸이 제위에 오르겠나이다!!!” 황제 등극
--- p.247~248, 「제18장 Empire of Dai Han」중에서
“망할 푸틴 조상 ㅅ끼들 같으니라고!! 삼국간섭으로 요동 토해내게 하더니만, 그 요동의 핵심 뤼순을 지가 처먹어?!?!?!? 우리가 조선에 바른 침이 몇 리터인데, 아관파천 한 방으로 조선도 호로록!?! 뭣보다, 부산 절영도에 러시아 기지를 박는다는 건, 진짜 완전히 일본의 한반도 접근 차단선을 치는 거잖슴?! 호구도 이런 상호구 꼬라지는 역사에 유례없네!!” 일본 조야가 들끓고. “ㅇㅇ!! 정부도 더는 좌시하지 않겠소이다! 일단 위해위에 병력 증파하고! 대마도에 함대 배치!! 대한해협 봉쇄도 가능하다!!” 1897년 12월 말, 부산 앞바다에 일본 함대 집결.
--- p.276~277, 「제20장 The Game of 황해」중에서
1898년 3월 10일 종로에서 러시아의 침탈 규탄 만민공동회 개최! 서울 시민 1만 명이 운집하며 대성황. “루스키!!!!!!” “개스키!!!!” 1898년 3월 19일, 러시아 군사 고문단과 재정 고문 모두 해촉. 이어서 한러은행 폐쇄. 4월, 러시아 고문단은 시페이에르와 함께 모두 러시아로 돌아간다. “이겼닭!!! 강대국 러시아의 마수를 민중의 힘으로 뿌리쳤다!!!” 만민공동회를 주체한 독립협회의 파워 UP! “러시아 끌어들이기는 결국 이렇게 실패인가… 하지만 러시아에 한반도 중시파들이 곧 다시 득세하겠지…”
--- p.289~291, 「제21장 10k People」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