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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판 한정 작가 사인 인쇄본, 양장 ] 위픽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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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1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8쪽 | 158g | 100*180*15mm
ISBN13 9791168127333
ISBN10 11681273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교실 안을 가득 채운 아이들 중 누구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 애썼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과 칠판에 시선을 고정했고 쉬는 시간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거나 눈을 감고 잠든 척을 했다. 체육 시간이나 혼자 엄마를 기다리는 방과 후처럼 교실이 비었을 때 옷과 책이 어지럽게 널린 풍경을 세세히 둘러볼 뿐이었다. 선유는 유일한 예외였다. 선유가 어디선가 작은 움직임이라도 만들면 주의를 피하기 어려웠다.
--- p.8~9

왜 저렇게 건강하고 선명하고 밝은 아이가 죽는 이야기를 꺼낸 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무엇보다, 왜 나에게 물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약간 설레는 기분이 되었고, 그것이 나는 조금 불쾌했다.
--- p.14

“내가 무서워하는 건 말이야. 사실 높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에 있는 나 자신이야.”
“그게 달라?”
“높은 곳에서, 내가 그냥 확 뛰어내릴까 봐 무섭다고.”
선유는 잠시 빨대로 얼음을 휘젓고는, 다시 커피를 마셨다.
“근육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고충이 있군.”
선유가 푸훗― 웃음을 터뜨렸다.
“뭐라는 거야.”
--- p.30

암벽 높이만큼 커다란 창문 밖에는 해가 서쪽을 향하고 있었고,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선유의 온몸에 닿았다. 빛나는 검은색.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래에서는 센터장이 자기 무게를 실어 줄을 당겨주고 있었다. 나는 선유의 몸을 매단 저 로프를 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꼭대기에서 설령 선유의 몸이 뛰어내리기를 감행하더라도, 너는 절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질 염려가 없다고. 내가 이곳에서 로프를 꽉 붙잡고 있다고.
--- p.39

한밤중 공포에 떨다 잠을 깨면, 나는. 드물게나마 올라오는 선유의 흔적을 보러 SNS에 접속했다. 침대 아래에는 야간 시간을 담당하는 활동지원사가 잠들어 있었다. 그는 작은 인기척에도 눈을 번쩍 뜨고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핸드폰의 조도를 최대한 낮추고서 선유의 사진과 글을 보았다. 그곳에는 어두컴컴한 동굴에서 밖으로 이어진 유일한 통로가 있었고, 나는 그 통로 사이로 선유가 내려주는 로프를 붙잡았다.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그 로프를 꽉 쥐고 있으면, 머리맡에서 규칙적으로 작동하는 호흡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p.48~49

난간을 등지고서 호흡기로 천천히 숨을 쉬다가, 나는 고개를 조금 돌려 선유의 눈을 보았다. 햇볕 아래에서 빛나는 크고 검은 눈동자를 나는 처음으로 피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날에도 다른 사람의 무게를 자기 몸으로 버티며 걸어가던 검은색의 선유가, 모두가 멋진 몸을 드러내고 벽에 오르는 곳으로 기꺼이 나를 안내하던 선유가 있었다.
---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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