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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새가 사는 숲

[ 양장 ] 오늘의 젊은 작가-4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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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76g | 127*188*20mm
ISBN13 9788937473852
ISBN10 893747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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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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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중학교로 배정되었다. 흔히 ‘뺑뺑이’라고 불리는 무시험 추첨제에 의해서였다.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평준화’에 의해서였다. 평준화이긴 했지만 배치 고사는 봤다. 반마다 수준이 들쑥날쑥하지 않도록 평준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평균에 미친 시절이었다. 나누고 줄 세우고 비교하는 걸 죄악시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죄악시한다는 건, 역으로, 열망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 p.8

20년이 흐른 지금 이런 걸 물으면 언니는 헛소리 집어치워, 라고 할 것이다. 그게 뭐가 중요해.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살아. 사리 분별 좀 해. 조리 있게 좀 말해. 도대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속 터지게 좀 하지 마. 그러면 나는 조금도 상처 받지 않고 굉장하네, 하고 받아칠 것이다. 나한테 왜 그랬어? 하고 묻는 대신에. 언니를 웃길 것이다.
--- p.17

세상은 인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요. 그때 내가 피부과 의사의 말을 기억할 리는 없었다. 열네 살이었으니까. 나는 20년 후에 보라매병원 진료실에서 그 말을 듣게 된다. 그렇지만 이미 그 말을 들은 듯했다. 듣고 기억하는 듯했다. 미래를 기억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원인이 결과를 빚는 게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반추하게 하므로. 미래가 과거를 구성하므로. 결과가 원인에 앞서므로.
--- p.45

쿨워터, 차가운 물이라는 뜻이다. 쿨워터 냄새는 차가운 물에서 나는 냄새와 다르다. 그런데도 쿨워터, 라고 하면 누구나 같은 냄새를 떠올린다. 파란색 냄새. 남탕이나 헬스장 샤워실에서 나는 냄새. 나는 불행한 기억을 사랑했다. 불행에 집착했다. 마음속 보석함에 불행한 기억을 모았다. 내 사랑은 악취미였다. 그 체어맨 안에서 내가 몸을 긁었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해야 할 일들은 따로 있었다.
--- p.80

자꾸 늙은이처럼 말하게 되네. 20년 전에 불과한데. 요즘 나는 하루를 이틀씩 살고 있다. 시간이 병렬로 흐르기 때문이다. 20년 전과 현재가 페이스트리처럼 겹쳐서 동시에 흐른다. 참기 어려운 감각이다. 살갗을 긁는 걸 참기 어려운 것처럼. 어쩌면 피부의 독은 열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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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밭 같은 폭력의 세계에서 소녀는 자기만의 대본을 쓴다. 어차피 인과가 성립되지 않는 무질서한 세계라면 차라리 자신을 주인공 삼아 ‘나쁜 대본’을 작성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어차피 누구도 소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지도 소녀의 말을 경청하지도 않는 세계라면 성적 착취를 위한 기만과 유인의 몸짓이라도 ‘사랑’으로 치장하는 편이 달콤할 테니까.
- 이소 (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어린 시절의 악몽을 다시 불러들인다.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치치림은 집요하게 자신의 과거를 뒤쫓고, 능란하게 사실관계를 뒤집는다. 이 숲을 헤매는 동안, 나는 어찌할 바 모르는 기분에 여러 번 휩싸였다. 나 역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시절이 있었고, 여전히 그때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니까. 그리하여 나는 치치림의 목소리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렸고, 책장을 덮은 순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굉장하네.”
- 강화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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