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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792쪽 | 918g | 140*225*40mm
ISBN13 9788937427145
ISBN10 8937427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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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30일 수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멜하메트 아파트에서 퓌순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약간 실망했고 혼란을 느꼈다. 사무실로 돌아갈 때 깊은 불안을 느꼈다. 다음 날,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나는 다시 그 집으로 갔다. 하지만 퓌순은 또 오지 않았다. 나는 답답한 방들에 어머니가 여기저기 놓아두고 잊어버린 오래된 꽃병, 옷, 먼지 구덩이 속에 놓여 있는 옛 물건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서툴게 찍은 오래된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며 잊었다는 것조차 몰랐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많은 추억을 떠올렸고, 물건들의 힘이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p.43

하지만 이 장면들은 내가 느꼈던 희열과 행복의 원인이 아니라 단지 도발적인 그림들 하나하나일 뿐임을 곧 깨달았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그녀를 왜 그렇게 사랑했는지를 이해하려고 했을 때, 단지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장면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을 나누던 방, 주위, 평범한 것들도 모두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 p.92

하지만 인생이 마치 소설처럼 이제 마지막 형태를 갖추었다고 느끼는 시기에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지금의 나처럼 느끼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했던 많은 순간들 중에서 왜 이 순간을 선택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물론 우리 이야기를 소설처럼 다시 한번 설명해야만 한다.
--- p.119

가난과 아둔함 때문에, 그리고 사회에서 버림받고 평생 고통받으며 불운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마치 영구차처럼 내 머릿속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사라져 갔다. 스무 살 이후부터 지금까지 온갖 재앙이나 불행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보이지 않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나도 불행해질 수 있고, 나아가 그로 인해 나의 갑옷이 뚫릴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p.134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버지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어쨌든, 오늘 내 고통을 털어놓아 널 속상하게 하려고 부른 것은 아니야. 넌 곧 약혼하고 결혼도 하겠지. 네가 나의 이 아픈 이야기를 알고, 또 네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았으면 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하고 싶구나, 알겠니?”
--- p.150

그 순간 견딜 수 없는 질투심이 마음속의 분노와 뒤섞여 치솟아 올랐다. 퓌순이 금세 새 애인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의 고통은 내 의식에서 시작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서 느끼는 사랑의 고통을 겨냥했고, 나를 파멸로 이끌고 갔다.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이 수치스러운 상상은 다른 때에도 떠오른 적이 있었지만, 그 순간에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 p.232

진정한 사랑의 고통은, 우리 존재의 가장 중요한 지점에 자리 잡고, 우리의 가장 약한 지점을 부여잡아, 다른 고통과 깊게 연결되어 절대 저지할 수 없는 형태로 몸과 삶에 퍼져 나간다. 만약 절망적인 사랑에 빠졌다면, 아버지를 여의는 것부터 가장 평범한 불운까지, 예를 들면 열쇠를 잃어버리는 것까지, 모든 것―다른 고통, 고민, 불안―이 언제 어느 때고 다시 부풀어 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진짜 고통의 기폭제가 된다. 나처럼 사랑 때문에 삶이 모두 뒤죽박죽되어 버린 사람은 사랑의 고통이 끝나야 다른 고민도 해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자기도 모르게 더 깊게 만들어 버린다.
--- p.346

“미안해.”
나는 그녀가 내 말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며 다시 소리쳤다.
“당신과 페리둔은 내가 영화에 출연하는 걸 일부러 방해했어.
그것 때문에 용서를 비는 거야?”
“파파트야처럼, 펠뤼르에 있는 주정뱅이 여자들처럼 되고 싶었던 거야, 정말로?”
“어차피 우리는 항상 술에 취해 있어. 게다가 난 절대 그들처럼 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너희들은 내가 유명해져서 너희들을 떠날까 봐, 질투심 때문에 날 집에 붙들어 두었어.”
--- p.715

그제야 우리가 경험한 행복의 끝에 왔다는 것을, 이것이 이 아름다운 세상과 이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느꼈다. 우리는 전속력으로 플라타너스 나무를 향해 가고 있었다. 퓌순은 그것을 목표 삼아 달려갔던 것이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 나의 미래는 그녀와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를 가든 이제는 그녀와 함께일 것이다.
--- p.717~718

“일인칭 시점으로 쓰고 있습니다.”
오르한 씨가 말했다.
“무슨 말이죠?”
“당신 자신이 당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지요, 케말 씨. 요즈음 저를 당신 위치에 놓고, 당신이 되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런 사랑을 해 보았습니까, 오르한 씨?”
“흠……. 우리의 주제는 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 p.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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