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어떤 것을 더 보기 좋게, 사용하기 좋게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디자인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 준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성인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버스나 전철의 손잡이를 높은 곳에 매다는 것이다. 키가 작은 여성이나 노인, 어린이의 손이 결코 닿지 않는 높이다.
--- p.24 「BOOK 1. 누구를 위한 디자인인가 - 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 중에서
평균의 시대에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 기회의 균등이라고 여겨 왔다. 물론 이러한 방식도 사회의 진보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토드 로즈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평균적 조종사의 체격에 맞춰 조종석을 설계하는 대신, 누구든 자기 몸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조종석을 만들어 사고를 줄이고 효율을 높였던 일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평등한 맞춤’이 필요하다. 학년·나이에 따른 교육과정이 아니라 개인별 능력과 속도에, 집단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이 있어야 한다.
--- p.48 「BOOK 4. 평균적인 그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 평균의 종말」 중에서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알고 있을까? 사건의 진실이 덜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은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지 않고 ‘팔리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다.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쓰는 것은 오늘날의 언론도 많이 저지르는 일이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짐바르도는 의도한 결과를 얻기 위해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을 부추기고 조종했다. 전기 충격 실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권위에 복종하여 비인간적인 명령에도 기꺼이 따른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실험이었지만, 실험 당시의 녹음 파일을 들어 보면 강압적인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 많은 참가자들이 즉시 실험을 중단했다. 부당한 명령에 즉각적으로 불복종한 것이다.
--- p.95 「BOOK 10. 왜 우리는 스스로를 악한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할까 - 휴먼카인드」 중에서
어떤 삶이 잘못됐다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잘못된 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누군가를 실격시키지만, 내일은 내가 실격당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와 같은 평가는 사회가 정한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존재들을 걸러 내는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책과 같은 주제를 다룰 때 그것이 반드시 장애인의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여성, 소수 인종, 병약한 사람, 성적 소수자, 가난한 사람, 못생긴 사람,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등 어떤 이라도 ‘실격당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 p.148 「BOOK 17.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삶도 있을까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중에서
오필리아는 괴동물들과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오필리아가 초대할 때만 오필리아의 집으로 들어왔으며, 오필리아가 혼자 있고 싶어 할 때는 그 마음을 존중해 주었다. 오필리아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혼자 있고 싶을 때 차단할 수 있는 교제’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조용하고 정중하며 열성적인 동거 생명체였다.
--- p.171 「BOOK 20. 외계 생명체와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 잔류 인구」 중에서
그러나 나는 이들이 누군가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가지 않아도 되기를, 당연히 학교에 갈 수 있고, 대한민국에서 학생이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당연한 듯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선택의 순간에 ‘미등록인 내가 이걸 선택해도 되나?’라는 자기 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배제당하고 상처받을 걱정 때문에 선택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일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 p.196 「BOOK 23. ‘번호’ 없이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 있지만 없는 아이들」 중에서
오늘도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있을 제주공항의 활주로 밑에는 4·3 희생자들의 유골이 묻혀 있다고 한다. 2007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부근에서 대량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2년간의 발굴 작업으로도 모든 유골을 수습할 수 없었지만 그 자리에 위령비를 세우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어 버렸다. 그 뉴스를 보았던 것이 분명히 기억난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일을 나는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었을까? 기억하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잊으면 편해질 수 있어서였을까? 이와 같은 고민에서 출발해 4·3의 고통스러운 기억, 참혹한 역사를 다시금 직시하고 똑똑히 새기기 위한 ‘다크투어’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 p.221 「BOOK 27.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에는 무엇이 있나 - 작별하지 않는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