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은 앉아서 익히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에 먼저 좌선을 익히도록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좌복 위에 반가부좌를 하고 앉아 허리를 곧게 하고 가슴을 편 다음 두 손은 모아서 배꼽 밑에다 붙입니다. 눈은 2미터 아래에다 화두 생각을 두고 응시하되, 혼침과 망상에 떨어지지 않도록 눈을 뜨고 의심에 몰두해야 합니다.
이렇게 앉아서 무르익어지고 나면, 일상생활 속에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산책을 하나, 잠을 자나 오매불망 간절히 화두의심에 몰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루에도 천번 만번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인가?’ 하고 오매불망 의심을 쭉 밀고 또 밀고 또 밀 것 같으면 모든 산란심이 일어날 틈이 없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촌에 방아찧는 기계는 시동이 안 걸리면 방아를 못 찧는데, 한 번 시 동이 걸리면 종일 방아를 찧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에도 천번 만번 의심을 밀어주라고 하는 이유는, 그렇게 천번 만번 의심하여 단련이 되면 문득 참의심이 시동걸리게 되어 화 두의심 한 생각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과정이 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밤낮으로 한 생각이 흐르고 흐르게 되는데, 앉아 있어도 밤이 지나가는지 낮이 지나가는지 모르게 되고,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 「간화선 수행법」 중에서
간화선의 생명은 의심이니, 그 의심은 화두에 대한 믿음이 철저할 때 생기게 됨이라.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챙기고 의심하고 이렇게 애를 쓰고 노력하면 진의심이 걸리게 됨이라. 이때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오직 화두의심만이 일주일이 고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지속되다가 보는 찰나 듣는 찰나에 몰 록 깨치게 되는 것이라.
화두참선이 최상승의 수행법이라는 것은 이렇게 일초즉입여 래지(一超卽入如來地)에 이르는 경절문(徑截門)이기 때문이라.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인가?’ 하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는 것이 화두참선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라.
--- 「남전 선사와 귀종 선사의 거량」 중에서
남악 회양 선사께서 회상(會上)을 열어 법을 펴시니, 마(馬)씨 성(姓)을 가진 한 수좌가 와서 신심(信心)을 내어 불철주야 공부를 지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수좌는 항상 좌선(坐禪)하는 것만 을 고집하여 자리를 뜨는 법이 없었습니다.
남악 회양 선사께서 하루는, 앉는 데 국집(局執)하는 그 병통을 고쳐 줘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좌선중인 마조(馬祖) 스님에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수좌는 좌선하여 무엇 하려는고?”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자 회양 선사께서는 기왓장을 하나 집어 와서 마조 스님 옆에서 묵묵히 가시기 시작했습니다. 마조 스님이 한참 정진을 하다가 그것을 보고는 여쭈었습니다.
“스님, 기왓장은 갈아서 무엇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고자 하네.”
“기왓장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할진대,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소를 수레에 매서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쳐야 옳겠는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마조 스님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회양 선사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그대는 좌선(坐禪)을 배우는가, 좌불(坐佛)을 배우는가?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면 선(禪)은 앉거나 눕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니 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고, 앉은 부처를 배운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어느 하나의 법이 아니니 자네가 부처님을 잘못 알고 있음이네. 무주법(無住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 하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고,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면 선(禪)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네.”
마조 스님은 여기에서 크게 뉘우치는 바가 있어 좌선만을 고집하던 생각을 버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일여(一如)하게 화두를 참구하여 순일(純一)을 이루어 마침 내 크게 깨쳤습니다.
--- 「마조 선사의 가풍」 중에서
달마 대사께서 하루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르셨습니다.
“너희들이 이제까지 정진하여 증득(證得)한 바를 각자 말해 보아라.”
그러자 도부(道副) 스님이 일어나서 말씀드리기를, “제가 보는 바로는, 문자에도 국집(局執)하지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아니하는 것으로 도(道)의 용(用)을 삼아야겠습니다.” 하니,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라고 점검하셨습니다.
다음에 총지(總持)라는 비구니가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경희(慶喜)가 아촉불국(阿?佛國)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보려고 한 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또, 도육(道育) 스님은, “이 몸뚱이는 본래 공(空)한 것이고 오음(五陰)이 본래 있지 아니하니, 한 법도 마음에 둘 것이 없습니다.” 하니, 대사께서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라고 점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혜가(慧可) 스님이 나와서 아무 말 없이 예(禮) 삼배를 올리고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달마 대사께서 “너는 나의 골수(骨髓)를 얻었다.” 하시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면면히 전해 내려오는 심인법(心印法)을 혜가 스님에게 부촉(付囑)하시니 이조(二祖) 혜가가 되었습니다.
--- 「불조 심인법의 등등상속」 중에서
마음의 근본고향을 바로 알아 진리의 세계를 깨닫게 되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과 ‘나’라는 허상이 다 사라져 온 인류가 한 가족이요, 온 우주가 나와 함께 한 몸이 되어 버립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남보다 더 가지려는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고, 자연과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항상 편안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우리의 본마음은 허공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고, 태양보다 밝습니다. 이 마음을 닦아 참나를 깨달으면 그곳에는 시비도 없고, 분별도 없고, 갈등도 없고, 대립도 없고 오직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합니다.
--- 「국제무차수륙천대법회 법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