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독립과 동시에 콘크리트를 ‘소유’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안정된 주거 공간과 그곳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유’할 수는 있어야 합니다. 사회주택의 역할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프롤로그,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정말 ‘집’일까?」중에서
다주택자는 남이 이자를 내주는 돈으로 자기 집을 산다. 1주택자는 자신이 사는 집에 들어가는 돈의 이자를 본인이 낸다. 세입자는 남이 집을 살 돈의 이자를 내준다. 정리하자면, 다주택자〉 1주택자〈세입자 순으로 유리한 구조를 강화한다. 이러니 전세가 미끄 럼틀이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에서 LTV 규제를 주택 구매자, 그것도 실수요자에게만 적용하고 세입자에게 전세자금대출을 확대하면, 누가 제일 유리하고 누가 제일 불리할까?
---「1장, 전세는 누구에게 더 유리할까?」중에서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세금만 세게 매긴다고 세입자의 처지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만약 임대인이 파산하면 세입자는 전세금을 날리거나, ‘1가구 1주택주의’ 차원에서 그 집이 실소유자에게 넘어가게 되면 쫓겨나야 한다. 현 거주자에게 집을 넘기면 되지 않냐고 그러지만, 모든 세입자가 당장 살고 있는 집을 소유해야만 하거나(당위), 할 수 있거나(능력), 하길 원하는 것(선호)은 아니다. 세금 만능주의 이전에, 전세로부터 세입자들을 질서 있게 구출하기 위한 세심한 대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1장, 전세의 종말과 대안을 찾아서」중에서
투기가 없어도 집값은 원래 비싸다. 땅값을 빼고 건물값만 해도 여전히 비싸다. 저축해서 집을 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앞으로 전세를 활용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최근 사기 문제로 전세를 구하고자 하는 임차인의 선호가 줄었다지만, 전세는 이미 그전부터 줄어들고 있었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목돈을 가지고 있어 봤자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면 전세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은 앞서 살펴보았다. 사적 금융과 투자의 종잣돈 역할을 하던 전세를 통해 주거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일부에게만 가능한 것이었을 뿐더러, 그 마저도 역사적으로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집값은 원래 비싸고, 반값이 되어도 비싼데 말이다.
---「1장, 빚을 내서 집을 사도 괜찮을까?」중에서
우리 주변에는 청년주택, 다세대주택, 공공주택처럼 다양한 명칭의 주택들이 있다. 대개 건물의 물리적 특징이나 소유관계에 따른 것으로, 하나의 주택에도 여러 이름이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건물 한 채가 도시형생활주택(건축 유형)이면서 동시에 민간 주택(공급 또는 소유 주체)이고, 임대주택(점유 형태)이면서 셰어하우스(사용 방식)이자 청년주택(공급 대상)일 수도 있다.
이름은 재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국민주택은 주택법상 일정 규모(85㎡)이하이면서 국민주택기금(현 주택도시기금)이 투입된 것을 말한다. 임대료 책정 기준이나 공급 대상에 따라 공공주택 안에서도 영구임대주택, 행복 주택, 매입임대주택 등 수많은 유형이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택은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진 이름일까?
---「2장, 주택에 대한 다양한 이름들」중에서
나라가 경제적으로 잘살게 될수록 자가소유율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외국 사례들을 보면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 복지국가일수록 사회주택의 비중이 높고, 자가소유율은 우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내 집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라기보다 ‘세입자도 마음 편히 사는 나라’라고 봐야할 것 같다.
---「2장, 해외의 사회주택」중에서
안정적인 거주 기간 보장과 부담 가능한 주거비는 주거권의 기본 요소다. 서울시 사회주택은 2015년 도입 당시부터 2년 단위 계약에 4번의 계약갱신, 즉 최대 10년의 거주를 보장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일반적인 임대차계약에 1회의 계약갱신권이 보장되기 시작한 것이 2020년이니, 사회주택은 이보다 5년 앞서서 4배의 기간 연장을 보장한 셈이다. 외국처럼 무기 계약까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계획을 세우기에 짧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또한 사회주택의 임대료는 시세의 80% 이하이며, 2년마다 5% 이하로만 인상이 가능하다. 인상률이 예측 가능한 것만으로도 큰 안정감을 준다.
---「3장, 사람답게 살 권리, 주거권의 확장」중에서
청년 1인가구들이 임차인으로 사는 이유는 단순히 집을 살 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학업이나 직장으로 인해 주거 이동성이 높아서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의 전세보증금 사기 사태 이전에도 일반적인 전월세 주택들에서는 다음 세입자가 구해져야 보증금을 빼줄 수 있다는 임대인의 횡포가 관행처럼 자리 잡아서, 이사를 가야 하는 세입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임대료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점은 사회주택의 핵심 가치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동네에 적응해야 하는 1인 가구들 사이에서 공구를 빌려 쓰는 정도를 넘어 서로 비밀번호를 공유하며 급한 사정이 있을 때 도움을 주고받는, 신뢰가 구축된 공동체의 가치는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3장, 주거 선택권과 가성비, 홍시주택」중에서
주택 내에서는 주로 난방과 온수의 비중이 큰데, 최근 냉방 분야에서의 에너지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겨울철 난방과 여름철 냉방 수요는 주택의 형태와 건물의 배치와도 관련 있기에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원래는 난방을 할 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만, 최근엔 여름철 ‘피크 타임(첨두시간)’의 냉방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경제발전과 함께 에어컨 보급이 늘어나고 여름철 폭염이 잦아지며 냉방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피크타임에 공급망에 과부하가 걸려 대규모 정전 사태가 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하는 지경이다.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은 더 이상 한가한 이야기이거나 광열비(전등을 켜고 난방을 하는 데 드는 비용)를 조금 아끼는 차원이 아닌, 우리의 생존이 걸린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다.
---「4장, 주택에서의 탄소 배출」중에서
젊어서 성실하게 번 돈으로 집을 하나 사두고, 그로부터 생기는 임대료 수익으로 노후를 대비하려는 계획은 많은 이들에게 인기 있는 은퇴 전략이다. 이는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앞선 세대가 열심히 저축해 번 돈으로 건설비를 내주면 건설업체도 먹고 살 수 있고 후속 세대는 기존에 지어진 건물에 들어가 살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의 모델이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다. 앞으로는 동일한 방식의 노후 대비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고령사회의 구조상 그렇게 되어간다. 미래에도이 전략이 통하길 기대하는 건 개인의 노력과 별개로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4장, 사회주택과 노후 대비, 그리고 금융」중에서
우리가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이유는 벽돌과 콘크리트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안정적으로 양호한 주거 환경에 거주하면서 노후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자가 소유를 통해 얻는 더 큰 근원적인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주택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보다 나은 주거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노후 대비에 대한 걱정이나 자녀 독립 시에 전세금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아이를 키울 엄두도 낼 수 있으며, 에너지를 생산해서 생활비를 줄이고 기후 위기에도 대응하는 주택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패닉 바잉이나 영끌도 추억의 용어가 될 수 있겠죠. 언젠가는 1인가구가 될 나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외롭거나 힘들거나 아플 때 누가 돌봐줄 수 있을지, 그런 불안한 걱정에서 해방되는 사회를 꿈꿔볼 수도 있겠습니다.
---「에필로그, 사회가 만드는 주택, 주택이 만드는 사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