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기억하는가. 큰 아랍의 칼을 들고 이리저리 포즈를 잡고 위협을 하는 아랍의 무사와 맞닥뜨린 존스 박사, 일순간 멈칫하지만 이내 총을 꺼내 한 방에 무사를 쓰러뜨린다.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허무하게. 그리고 극장에서 터져나오는 웃음 소리. 아직까지 그들 문화의 오만성을 알아채지 못하셨다면 아랍 무사 대신에 태권도복을 입고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며 위협을 하는 한국인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보기 바란다. 가소롭다는 듯이 한방에 쓰러뜨리는 존스 박사의 치졸한 오만함은 유머로만 봐주기에는 너무나도 오만방자하지 않은가.
--- p.20
이발소를 이용하다보면 두 가지 색다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이발소 아저씨, 아줌마들은 카투사한테는 마치 적체된 물건들 처리하듯(물론! 다 그렇지는 않다) 대충대충 깎고 퉁명스럽게 “거기 쿠폰 놓고 가세요”라고 하는 반면, 미군에게는 작품 만들듯 엄청난 공을 들여가며 끝에는 마사지까지 해주는 그 모습들….
물론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지만 ‘돈 안 내고 깎는 것도 어딘데’라는 얄팍한 심정으로 그 풍경엔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Main post 이발소에는 사람이 득실득실했다. 5~6사람인가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를 담당하는 아주머니 ‘어떻게 깎으시겠어요’란 말도 없이 서슬 퍼런 가위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대꾸하기도 귀찮고 ‘군인이 무슨 스타일 따지긴…’이란 생각도 들어 가만 있는데, 자리에 않기 무섭게 불과 2분여 만에 다 끝났다는 것이었다. 본인 그때 한 달 동안 머리를 안 깎았고 그 동안 십수 년 머리를 깎은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도저히 2분 만에 해결될 수준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거울을 보니까 군데 군데 머리가 삐져나오고 잔털 제거도 안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냐 싶어
“아줌마, 다시 깎아 주세요.”
라고 말했더니 다 깎았다는 말씀뿐이었다. 내가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며 다시 깎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더니, 아주머니 왈
“이거 사람 바쁜데 군인 아저씨 되게 귀찮게 하네.”
두둥~ 성깔 보통 아니기로 소문난 본인 즉각 반응했다.
“아줌마, 나 돈 낼 테니까 다시 깎아주세요.”
분위기 순간 썰렁해졌다.
“아니… 뭐 그럴 것까지야….”
얼버무리시는 아주머니
“아니오. 돈 낼 테니까 다시 깎아주시고 마사지도 해주세요.”
그때 본인 쿠폰도 내고 5달러 60센트도 내고 내키지 않는 마사지도 받고 막사로 돌아왔다.
--- pp.104~105
육식을 하기 때문인지 이들은 매우 호전적이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서도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으며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얼른 그와 붙어보고 모종의 힘겨루기를 해서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욕구를 참지 못 한다. 결국 자신보다 강한 것이 판명되면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그 아래 자리로 위치해 떨어지는 음식 찌거기를 잘도 받아 먹는다. 반면에 자기보다 약한 것으로 승부가 나면 그 순간부터는 철저하게 자신의 발 아래 두고 숨통을 조이려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려는 기색이 있으면 더욱 철저하게 짓밟는다. 이와 동시에 자신에게 꼬리를 내리고 오는 약자에게는 '강자의 우월함에서 나오는 너그러움'으로 이들을 받아주고 정말 가장된 상냥함으로 약자를 돌보아 준다. 필자가 피터슨 중사로부터 받은 '보호'는 바로 이러한 류의 것이었다.
--- p.39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관련된 일련의 사고들에서 본인은 저들의 '진정한 사과'를 보지 못했다. 손꼽으라면 '노근리 학살 사건', '독극물 방류 사건'정도인데, 그것도 유감 수준이다. '우는 아이'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달래온 정부를 비롯한 고위층의 태도가 이제는 그들에게 '모르쇠'처럼 입 다물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반 국민들은 미국의 비도덕성을 심정적으로 탓할 수는 있어도 '단죄'할 수 없다. 그 만큼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실력자'들도 비도덕적 미국에 대해 '철썩철썩'때려줄 수 있는 냉철하면서도 과감한 태도를 볼 수 잇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나라는 그저 '버릇 없는 아이들'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 pp. 121-22
얼마전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친 바있다.
... ... 그러나 그 영화를 보는 카투사의 100중 100은 라이언 일병이 '흑인'이었다면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할고 있다. 또 그를 구해냄으로서 정치적인 선전 효과가 없을 존재였다면 그는 과감히 희생되었을 것 또한 알고 있다. 따라서 라이언은 당연히 백인 중산층 가정의 자손으로 선택된 것이고 영화에서처럼 여러명의 목숨을 희생해가면서 그 어머니의 소원은 성취된 것이다.
--- p.146-147
애국심도 아니고 폭력에의 호소도 아닌 미군 군기 유지의 비결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일까? 한국의 군대는 구타와 욕설로 군기를 잡던 '그 때 그 시절' 이후 약간의 얼차례, 관등성명 복창, 전투화 닦기, 각종 잔업 등으로 군기를 잡고 잇고, 점차 군의 이미지 개선으로 인해 군에서 폭력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나마 애국심이 있건만 미군들은 고작 해 봤자 '엎드려 뻗쳐' 정도로 군의 위엄을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엔 별호과도 없는 듯 싶다.
하지만 여기서 미국식 가치관의 가장 중요한 기본인 '내등을 듥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마(Scratch my back and I'll scratch yours)'식 사고를 접하게 된다. 바로 내가 나의 상관에게 존경을 보이지 않으면 내가 상관의 윛에 섰을 때 나 역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군기 아닌 군기가 스스로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지럭이고도 이성적인 생각이 미국이란 국가의 기본적 국민사상으로 바탕이 되어 있기에 월급 받고 총을 잡는 미군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듯 싶다.
--- p.60-61
같이 친하게 어울려 지내던 미군이 주말에 한국 구경을 시켜달라고 한 적이 있다. 솔직히 쉬고 싶은 마음이 더 많았고 게다가 자비 들여가면서 구경시켜준다는 것이 군인 신분에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좋은 일 하는 셈치고 데리고 나갔다. “Can you?” 이 애끓는 한마디에 미안해서, 마음 약해서, 사람이 그래선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피곤에 지쳐 부대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 친해진 그에게 이 정도 부탁은 괜찮겠지 싶어서 몇 가지 번역물을 들고 가서 그의 방문을 노크했다. 문이 열리자 파자마 차림으로 그 친구가 나왔다. TV를 보다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오란 소리도 없이 그는 문 앞에서 당돌하게 얘기한다.
“Well, I’m busy now.” (글쎄 나 지금 좀 바쁜데.)
지금은 귀찮으니 나중에 하자는 정중한 거절이었다. 반대로 미국 구경을 필자가 공짜로 받았더라면 뭔가 부탁하러 온 그에게 자다가도 뛰쳐나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문화가 원래 그런 것을.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 그들의 삶 앞에서 오고가는 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어봤자 이해도 못할 테고,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당연한 그들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댈 자신도 없어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 p.74
20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햄버거를 손으로 먹을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 미군은 대견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스운 것은 햄버거 먹는데도 그 어떤 '법칙'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햄버거를 포크로 찍어 먹든, 쌈을 싸서 먹든, 죽으로 끓여서 먹든 뱃속으로만 잘 들어가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것이 아닐까? 또 굳이 그들의 방식이 옳다고 고집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다. 김치나 불고기처럼 전통이 확실한 음식도 아닌 주제에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 문화에 대한 관용주의(똘레랑스)의 면에서 이들의 점수는 빵점에 가깝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