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4월 하순 어느 날, 나는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의 작품에 나타난 물과 빛의 이미지」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 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 루르마렝을 찾아갔다. 카뮈가 시골집을 마련하여 살던 곳으로, 그 한 녘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들었었다.
마을 어귀에서 한 아름다운 소년을 만났다. 수선화 꽃을 한아름 꺾어 안고 있는 모습이 불빛을 더욱 환하게 하고 있었다. 어디서 꺾었느냐고 묻자 저쪽 물가에 많이 피어있다고 대답하면서 원하면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내 생애에서 흔치 않은 그 선물을 받고 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카뮈의 무덤을 찾아가 묘석 앞에 놓인 빈 항아리에 꽃을 꽂았다.
그는 오랑의 바닷가에서 말했다.
"여기 수선화처럼 다사로운 작은 돌이 있다. 이 돌은 모든 것의 시작에 놓여 있다."
모든 것의 시작에 놓여 있는 그 꽃다발을 내게 주었던 소년은 이제 장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꽃과 돌은 모든 것의 시작에 있다.
"지금은 정오. 대낮 자체도 균형에 이른다. 의식을 다 치르고 나면 나그네는 해방이라는 상을 받는다. 그가 벼랑에서 주워드는 수선화처럼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작은 조약돌 하나가 그것이다." - 알베르 카뮈, 「아리아드네의 돌」에서
---pp. 14~17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카지모도는 포도 위 두 길 높이의 밧줄 끝에서, 그 불쌍한 소녀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밧줄은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카지모도는 집시 아가씨의 몸뚱어리를 따라 무서운 경련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에스메랄다는 밧줄에 매인 채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분노한 카지모도는 악마의 웃음을 웃고 밑만 내려다보는 부주교의 등 뒤로 달려들어 사납게 그를 떠밀어버렸다. 프롤로의 몸은 "떨어져나가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빨리 미끄러져서 포석 위에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이제 막 추락하여 깨어져버린 두 목숨을 그 가물거리는 종탑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친다. "오! 저 모든 것을 나는 사랑했었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허공으로 추락하여 으스러져버린다. 사랑도 욕망도 번뇌도. 그 깨어져버리는 사랑스럽고 연약하고 덧없는 생명을 위하여 인간은 수세기 걸쳐 대사원을 짓는 것이리라.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애틋한 그리움도 다 쓸어가 버리는 세월의 저 불가항력적인 파도를 막아보려는 듯 인간은 방파제처럼 돌로 성벽과 탑을 쌓는 것이리라. 길이 127미터, 정면 너비 40미터, 궁륭 높이 33미터, 종탑 높이 69미터의 육중한 탑, 인간의 운명을 향하여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던지는 저 스핑크스를 사람들은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샤르트르에도 부르쥬에도, 렝스에도, '노트르담 사원'은 있지만 오직 파리의 대사원만은 구태여 '파리의'라는 소유격 수식어를 생락하고 그냥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
프랑스의 모든 국도에 서 있는 이정표들에는 해당 지점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거리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그 거리는 언제나 노트르담 사원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파리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은 그 대사원 앞에 당도해야 비로소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그곳에 이르거든 빅토르 위고처럼 탑 속의 캄캄한 벽 어딘가를 가만히 더듬어보라. "오랜 세월로 새카맣게 때묻어 돌 속에 깊이 새겨진 희랍어의 글자, 마치 그것을 쓴 것이 중세시대 어떤 이의 손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듯, 그 모양과 생김새에서 풍기고 있는 고딕체 특유의 표정이 느껴지는 글자 " 'AN'AKAH(宿命)'가 손끝에 만져질 때까지. 그 세월의 숙명적 감동이 가슴속으로 아프게 아프게 닿아올 때까지.
--- pp. 255~257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카지모도는 포도 위 두 길 높이의 밧줄 끝에서, 그 불쌍한 소녀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밧줄은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카지모도는 집시 아가씨의 몸뚱어리를 따라 무서운 경련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에스메랄다는 밧줄에 매인 채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분노한 카지모도는 악마의 웃음을 웃고 밑만 내려다보는 부주교의 등 뒤로 달려들어 사납게 그를 떠밀어버렸다. 프롤로의 몸은 "떨어져나가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빨리 미끄러져서 포석 위에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이제 막 추락하여 깨어져버린 두 목숨을 그 가물거리는 종탑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친다. "오! 저 모든 것을 나는 사랑했었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허공으로 추락하여 으스러져버린다. 사랑도 욕망도 번뇌도. 그 깨어져버리는 사랑스럽고 연약하고 덧없는 생명을 위하여 인간은 수세기 걸쳐 대사원을 짓는 것이리라.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애틋한 그리움도 다 쓸어가 버리는 세월의 저 불가항력적인 파도를 막아보려는 듯 인간은 방파제처럼 돌로 성벽과 탑을 쌓는 것이리라. 길이 127미터, 정면 너비 40미터, 궁륭 높이 33미터, 종탑 높이 69미터의 육중한 탑, 인간의 운명을 향하여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던지는 저 스핑크스를 사람들은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샤르트르에도 부르쥬에도, 렝스에도, '노트르담 사원'은 있지만 오직 파리의 대사원만은 구태여 '파리의'라는 소유격 수식어를 생락하고 그냥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
프랑스의 모든 국도에 서 있는 이정표들에는 해당 지점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거리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그 거리는 언제나 노트르담 사원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파리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은 그 대사원 앞에 당도해야 비로소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그곳에 이르거든 빅토르 위고처럼 탑 속의 캄캄한 벽 어딘가를 가만히 더듬어보라. "오랜 세월로 새카맣게 때묻어 돌 속에 깊이 새겨진 희랍어의 글자, 마치 그것을 쓴 것이 중세시대 어떤 이의 손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듯, 그 모양과 생김새에서 풍기고 있는 고딕체 특유의 표정이 느껴지는 글자 " 'AN'AKAH(宿命)'가 손끝에 만져질 때까지. 그 세월의 숙명적 감동이 가슴속으로 아프게 아프게 닿아올 때까지.
--- pp. 255~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