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2006년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역사추리소설 《적패 1, 2》를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가 활동에 나섰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다. 청소년 소설로는 《쓰시마에서 온 소녀》, 《명탐정의 탄생》이 있고, 청소년 테마 소설집 《안드로메다 소녀》에 단편 〈어른 되기 힘들다〉를 실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고, 만났다가도 헤어지는 법이란다. 만약 부처님의 뜻이 이것이라면 이것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만나기를 기원해야지. 이 할미도 네가 부모님과 다시 만나기를 부처님께 기원하마.” 아로는 하마터면 사실대로 털어놓을 뻔했다. 아버지는 태어나자마자 어디론가 떠나서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는 2년 전에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가 눈을 감기 직전에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살아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했다. --- p.56~57
“익숙한 것과 좋은 것은 다른 거란다. 씨실이 든 이 북이 없었을 때는 실을 직접 윗날과 아랫날 사이에 찔러 넣어야 했단다. 허리도 아프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 사람들이 만약에 그 불편함을 그냥 참고 넘겼다면 오늘날 같은 방식은 나오지 않았겠지. 금속활자도 마찬가지일 것 같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자기 일이 줄어들까 염려가 돼서 반대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변화 자체를 두려워해서 반대하기도 하지. 그런데 말이다. 만약 사람들이 죄다 그렇게만 생각했다면 아직도 여자들은 윗날과 아랫날 사이에 씨실을 끼우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만 했을 게다. 새로운 세상은 늘 쉽게 오진 않는단다.” --- p.98~99
사실은 이번 여행을 통해서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고 아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타인과 후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인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 옆에 같이 서고 싶었다고 옥진에게 말하고 싶었다. 활자를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을 배웠지만 무엇보다 그 어디에도 없던 따뜻함과 배려를 가슴 깊이 느꼈다. --- p.141
아로는 무섭도록 일에 매달렸다. 아침에 눈뜨면 운천산의 작업장에 가서 어미자에 거푸집을 붙이고 쇳물을 부어서 어미자 가지쇠를 만드는 일을 반복했다. 두 스님은 도와주면서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다만, 무뚝뚝함을 내려놓은 석찬 스님이 당부를 겸한 충고를 했을 뿐이다. “나무가 나이를 먹으면 낡은 껍질을 버리고 새로운 껍질을 입는단다. 매미도 허물을 벗어야 날 수 있지.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라. 참고 견디면 끝이 보일 것이다.” --- p.191
“박병선 박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직지심체요절》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세상을 바꿨다는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하고 있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 이분 같은 삶을 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기억될 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아로가 괴로움과 고민을 뚫고 자신의 삶을 찾아갔듯이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목골 마을 사람들과 우덕 대행수는 그곳으로 아로를 보낸다. 태어나서부터 열다섯 살인 지금까지 목골 마을에서 목판활자를 만들어 온 손재주와 눈썰미가 좋은 아이, 아로는 어릴 적 돌아가셨다던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덕 대행수는 아로에게 금속활자의 비밀을 알아내 오면 아버지에 대해 알려 준다고 약속한다. 묘덕 할머니의 도움으로 흥덕사에서 지내게 된 아로는 금속활자를 어디에서 만드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우여곡절 끝에 《직지심체요절》을 찍는 곳인 운천산 작업장을 찾아가게 된 아로는, 주지 스님인 경한 스님의 도움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어서 찍는 일을 함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후대 사람들을 위해 활자를 완성시키려는 경한 스님, 묘덕 할머니, 석찬 스님, 달잠 스님, 옥진 등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금속활자를 만들면서 아로는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한다. 아로가 석찬 스님과 함께 금속활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밀랍을 구하러 간 사이에, 경한 스님이 쓰러진다. 새로 주지가 된 혜천 스님은 목판활자가 아닌 금속활자로 책을 만드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운천산 작업장을 없애려 한다. 종회에서 간신히 작업장을 지켜 내며, 활자 만드는 일을 이어 가던 중에 적극적으로 일을 도와주며 힘을 보태던 묘덕 할머니도 돌아가신다. 아로는 경한 스님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힘들지만 꿋꿋이 금속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목골 마을 사람들이 흥덕사로 아로를 찾으러 오고, 사라진 판각수를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아로는 우연한 기회에 진짜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과연 아로는 진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 금속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을 찍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