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구 (flypaper@yes24.com)
“쉬지 않고 묵묵히 달렸던 거북이는 방만하게 잠들어 버린 토끼를 앞질러 결국 경주에서 이겼다.” “여름내내 놀기만 했던 베짱이는 한겨울 추위에 먹을 것이 없어 벌벌 떨며, 그래도 살아보고자 개미집에 동냥을 다녀야 했었다.”
“쉬지 않고 묵묵히 달려 골인 지점을 눈 앞에 둔 거북이 뒤로 울리는 요란한 알람소리! 상쾌한 단잠으로 몸이 더 가뿐해진 토끼는 결승점 바로 앞에서 거북이를 다시 추월한다.” “여름내내 노래나 부르며 소일했던 베짱이는 메이저 기획사에 픽업되어 스타가 되고, 추운 겨울은 따뜻한 바다 건너 해외에서 CF촬영으로 보내게 되었다.”
억지도 있고, 치기도 있고, 괜한 반감도 없진 않겠지만, `권선징악'에 대한 그 숱한 패러디는 세상이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 이른바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당위의 개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곧잘 목격하는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의문을 제기한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에게는 카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둘 중 형인 카인은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만 기쁘게 받는 등 동생을 편애하는 것 같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어느 날 동생을 꼬셔 들판으로 나가 갑자기 등 뒤로 다가가서는 그를 쳐죽이고 만다. 그 벌로 하느님은 카인을 추방했고, 이에 카인은 `주의 앞을 떠나 에덴 동산 동쪽의 놋이라는 땅에 거하며' 그곳에서 결혼해 에녹이라는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게리 랭과 토드 돔키가 공동으로 저술한 『직장 내 정치학의 법칙』은 웬만해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사회, 특히나 경쟁이 모든 도덕에 우선해야 승리자로 남을 수 있는 직장사회에서의 엄연한 현실을 해부한다. 다소 뜨악하지만 성경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직장사회에 접목시켜서, 직장 내에서 전개되고 있는 교활함(카인)과 유능함(아벨)간의 끝없는 싸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해낸다.
『직장 내 정치학의 법칙』은 직장 내 정치학에 대한 본격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데,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되어 현실세계에서 출세하는 교활하고 부도덕한 경쟁자들을 오랫동안 관찰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유능하고 성실하며 책임감까지 강한 사람들이 정작 출세가도에 들어서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반면 성격도 나쁘고 능력도 그다지 탁월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얄밉게도 매번 출세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카인으로 형상화되는 그네들이 아벨을 누르는 전략/전술은 무엇일까? 잘라 말해, 왜 꼭 `저런 녀석들'만 잘 나가는 것일까?
책은 총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과연 누가 카인인가, 라는 문제 제기 아래 거짓말, 양심 부재, 끝없는 야망, 권력욕, 술책, 파괴적 탐욕 등 카인의 실체를 고발한다. 2부와 3부는 카인과 아벨에 대한 `지피지기'를 도모하는 장. 가면을 쓴 카인을 사전에 알아채고, 카인의 언어와 이미지를 연구해서, 카인과 아벨의 대차대조표를 만든다. 4부에서 비로소 아벨은 카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카인의 계책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식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 아벨을 위해 제시되는 카인과 싸울 수 있는 27가지 행동수칙은 아벨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도 카인과의 직장 내 험난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본격적인 노하우를 일러준다.
“직장 내 정치를 무시하지 말라. 대기업이나 대학, 심지어 자선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도 정치판 못지않게 무자비하여 음모로 가득 차 있다.”
저자의 말따라 아벨이 자기 등뒤를 조심했더라면, 카인이 동생의 등에 결코 칼을 꽂지는 못했을 수도 있다. 직장 내 정치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아벨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포기하고 영원히 꿍얼거리며 아벨로 사느냐, 경쟁 무대에 나가 카인을 압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치를 시도하느냐. 후자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카인에 대항하여 직장 내 정치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책을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