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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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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5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70쪽 | 450g | 153*224*20mm
ISBN13 9788932009384
ISBN10 8932009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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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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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정희
저: 오정희

吳貞姬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맛깔스런 문장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에 튼튼한 뿌리를 내린 작가. 40년이 넘도록 작가로서, 여자로서 숱한 계절을 반복하면서도 튼튼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자신 있게 새 계절을 맞이하는 큰 작가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작품으로 가지각색의 삶을 작품을 통해 담아낸다.

1947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나 197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79년 「저녁의 게임」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1982년 「동경」으로 제15회 동인문학상, 1996년 「구부러진 길 저쪽」으로 오영수문학상, 1996년 「불꽃놀이」로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독일에서 번역 출간된 『새』로 독일의 주요 문학상 중 하나인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했는데,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사에서 매우 의미 깊은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에는 육체적 불구와 왜곡된 관능, 불완전한 성(性) 등을 주요 모티프로 삼아 타인들과 더불어 살지 못하고, 철저하게 단절되고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인물들의 파괴 충동을 주로 그렸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중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존재보다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여성성을 찾는 작품들을 썼다.

국어의 미학적 지평을 넓힌 작가의 문장이 빚어낸 작품들은 존재와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여성적 자아의 내밀한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또한 형체가 없는 내면의 복잡한 사건들에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일상의 슬픔과 고통, 허무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불의 강』, 『유년의 뜰』, 『바람의 넋』, 『불꽃놀이』 등의 작품집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새』 등이 있으며, 많은 작품이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2007년에는 그의 문학인생 40년을 기념하는 문집 『오정희 깊이 읽기』가 출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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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하늘은 아주 어두웠다. 나는 반도 안 탄 담배를 층계 창밖으로 던지고 일어났다.
필터에 루주가 빨갛게 묻은 그것은 흡사 개똥벌레처럼 불똥을 단채 긹 호를 그리며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수위실은 아직도 깜깜했으나 나는 층계를 내려왔다. 3층까지 내려왔을 때 나는 문득 열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편에 등을 대고 프라이팬에 무엇인가 볶고 있는 여자의 모습 너머 마루 끝에 앉은, 머리통이 큰 사내아이가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아이의 힘없이 벌린 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값싼 식용유의 냄새, 언제나 공기 속에 무겁게 괴어 있는 연탄 가스의 냄새를 들이 마셨다.

아이는 나를 보자 낯가림을 하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 여자가 휙 돌아섰다. 그리곤 성난 얼굴로 아이의 뺨을 후려쳤다. 겨우 울음 끝을 잦히던 아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아니, 원, 큰 구경이 났는 줄 아는 모야이지, 왜 남의 ---"
끝엣말은 문틈에 끼워 잘려버렸다. 그 여자가 말도 채 끝내지 않고 사납게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 p.23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나는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발전소에서 불 구경을 했어. 굉장히 큰 불이야. 빠져 나오느라고 혼났어." 그가 허덕이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때로 불덩이는 솟구쳐 강물로 떨어져내렸다. 주위는 낮같이 밝았다. 불길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고 더욱 밝고 기름지게 타올라 소방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장난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자, 주무세요, 이젠 괜찮아요."
나는 그의 옷을 벗겨 자리에 눕히고 턱에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나는 사이렌 소리가 울릴 적마다 흠칠 몸을 떨며 흐득히는 그를, 아이를 달래듯 팔에 힘을 주어 안았다.

창의 붉은빛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방안을 가득 채워 우리는 마치 조금도 뜨겁지 않은 화염 속에 나란히 누워 있는 듯했다. 나는 얼ㄴ 아이를 잠재우듯 그의 머리를 가슴 깊숙이 안고 있지만 꺼멓게 타버린 재를 안고 있는 듯한, 또한 불이 타고 있는 강 건너, 꽃보다 더 진한 어둠 속에서 메마른 목소리로 울고 있는 한 마리 삵을 보고 있는 듯한 쓸쓸함에 짐짓 소리내어 우는 시늉을 하였다.
--- p.26
"어디서 오는 길이에요?" 나는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발전소에서 불 구경을 했어. 굉장히 큰 불이야. 빠져 나오느라고 혼났어." 그가 허덕이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때로 불덩이는 솟구쳐 강물로 떨어져내렸다. 주위는 낮같이 밝았다. 불길은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고 더욱 밝고 기름지게 타올라 소방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장난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자, 주무세요, 이젠 괜찮아요."
나는 그의 옷을 벗겨 자리에 눕히고 턱에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그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나는 사이렌 소리가 울릴 적마다 흠칠 몸을 떨며 흐득히는 그를, 아이를 달래듯 팔에 힘을 주어 안았다.

창의 붉은빛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방안을 가득 채워 우리는 마치 조금도 뜨겁지 않은 화염 속에 나란히 누워 있는 듯했다. 나는 얼ㄴ 아이를 잠재우듯 그의 머리를 가슴 깊숙이 안고 있지만 꺼멓게 타버린 재를 안고 있는 듯한, 또한 불이 타고 있는 강 건너, 꽃보다 더 진한 어둠 속에서 메마른 목소리로 울고 있는 한 마리 삵을 보고 있는 듯한 쓸쓸함에 짐짓 소리내어 우는 시늉을 하였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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