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이미 눈치 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 해 평균 독서량이 짐승만도 못한 독자라 할지라도 각종 서적에 대해 누구 앞에서건 아무 거리낌 없이 읽은 척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시키는 데 총체적 목적이 있는 공리주의적 텍스트라 할 수 있으며, 일종의 인문학적 데자뷔 현상을 도모하는 학구적 심령 기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 p.17
그만큼 솔제니친의『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초코파이 한 덩이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만 같던 군대 생활의 고단했던 시절을 그 어떤 영화나 만화보다도 더욱 생생히 되살려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 책의 읽은 척에는 군필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군대 생활에 대한 아련한 회한, 미필자라면 술자리에서 지겹게 들었을 그 믿지 못할 궁상 활극에 대한 영화배우 같은 감정이입이 무엇보다 유용한 스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65
그렇다면 조지 오웰의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은 대체 무엇인가. 조지 오웰은 오직 노동자만의 집권만이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여기면서,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남의 나라 전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걸었던 좌파 중에서도 거의 좌측 갓길의 인도까지 점령한 소위 극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극단적인 이념의 지점이 바로 미국과 대한민국을 비롯한 극우적 국가들이 앞 다투어 그의 작품을 반공 서적이라며 국민들에게 널리 보급했던 본의 아닌 코미디의 시발점이 된 것이고 말이다. --- p.90
그렇다면 대관절 이 책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간단히 정리하자면『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인류에게 조만간 종말이 도래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일종의 예언서이자 묵시록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와 산업화를 통해 구축된 인류의 위대한 물질문명이란 것은 사실은 인간이 인간을 더욱 교묘하게 억압하게끔 만든 허위적 진보에 불과하며, 마치 좀비들처럼 돈과 성공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달려들게끔 인간을 사육시킨 재앙에 다름 아니라고 규정함으로써 격정적 관능과 사랑의 능력 유무 여부로 구별 가능한 생명력 있는 진짜 인간이 멸종되어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 몹시도 염세적이며 비극적 세계관의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p.145
『호밀밭의 파수꾼』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아찔한 순간이었던 독자들 자신의 ‘욕망 좌절 청춘 잔혹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이 책을 읽은 척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술했던 내용 요약을 빌리지 않고서라도 나의 중고딩 시절의 그 유치찬란했던 미숙함과 진지함을 동시에 떠올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위 조절은 필요하겠지만. --- p.202
원래 좋은 작품이란 대게 그런 법이다. 어느 특정 부분에서만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철학, 정치, 경제, 예술, 연애, 섹스 등 그야말로 인간에 대한 전방위적 이해와 깨달음을 동반 상승시키는 것이 좋은 작품의 미덕인 것이다. 이는 어쩌면 코엘료의 작품 속의 공통적 주제처럼 모든 만물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러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70
그러나 많이 팔리는 책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제목을 잘 지었든, 디자인이 좋든, 유명 여배우의 누드 브로마이드가 있든, 그런 관점에서『시크릿』이 잘 팔렸던 이유는 책 자체의 심오한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기보다는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와중에 주식과 환율은 널뛰기를 하고, 멜라민 분유에 유전자 변형 식품이 판을 치며 먹는 음식까지 간첩 색출을 하듯 해야 하는 등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긍정적 사고와 매트릭스적 세계관을 통해 잠시나마 희망과 위로를 준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p.294
필자에게 있어 책이란 일종의 거울이다. 즉, 현재 나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게 책이라는 얘기이다. 또한 거울을 통해 헝클어진 머리칼을 다듬고, 이에 낀 고춧가루를 확인하는 것처럼 책을 통해 헝클어진 가치관을 다듬고, 뇌리에 낀 편견을 확인할 수도 있다. 물론 거울에는 얼굴만 볼 수 있는 손거울, 전신을 볼 수 있는 대형 거울, 상을 왜곡하는 볼록거울 등의 다양한 거울이 있듯 책도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대개 외로운 사람이 자주 거울을 보게 되듯 책은 외로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다만 거울은 그 어떤 호화찬란한 거울일지라도 외로운 사람을 더욱 외롭게 하는 반면, 좋은 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가 독자들에게 책을 권하는 이유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