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8호실에 또다시 밤이 왔고 나는 혼자 서툰 기도 혹은 혼잣말을 했다.
어머니, 소가 되셨나요. 왜 코뚜레를 하고 계세요?
어머니, 코끼리가 되셨나요. 왜 코에서 나온 호스로 미음을 드시죠?
어머니, 소처럼 벌떡 일어나세요.
어머니, 코끼리처럼 큰 소리로 저를 한번 불러주세요.
그리고요, 이건 정말 궁금한 건데요,
“내가 누구여?”
이렇게 물었을 때 제가 “엄마” 하고 대답한 것은 몇 살 때였나요.
또 장소는 어디였죠?
저는 왠지 향나무가 있던 우물가였거나, 바깥마당에 있던 대추나무 아래였으면 좋겠어요.
제 대답을 듣고 어머니 기분은 어떠셨나요? --- pp.84~85 「산소 코뚜레」 중에서
언젠가, 어머니 등에 업혀 큰 물가를 지나는데 비가 내렸던 그 물가가 어디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갓난아기였던 네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며, 큰 누이 데리러 제천 의림지를 지나는 거였다고 말해주었죠. 그때 어머니한테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볼 걸 그랬어요. 참, 나도. 물어보지 못해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것들이나 생각하고 참, 한심하지요.
이젠 043으로 시작하는 고향 쪽 전화번호가 찍혀도 크게 놀라지도 않는걸요. 왠지 아세요? 축이 없어진걸요. 운동기구 역기 아시죠. 손잡이 없는 역기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그리움과 슬픔 두 바퀴가 아직 있기는 한데, 손잡이가 되는 축이 없어진 것 같아요. 허공을 움켜잡고 들었다 놓는 것처럼 허전하기만 해요. 이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두 바퀴만 덩그렇게 남았으니 말이죠. 이제 나는 죄를 짓지도 못하잖아요. 제일 큰 죄 지을 수 있던 대상이 없어졌으니까요. 팽팽하던 낙하산 줄 하나가 팅 끊어진 것도 같고 내 삶을 늘 달아주던 오래된 앉은뱅이저울이 고장 난 것도 같아요. --- p.102, 「나는 내 맘만 믿고」 중에서
아카시나무 가로수가 시작된 지점에서 길의 우측인 산 쪽은 리기다소나무 숲이 끝나고 쇠사슬나무와 갈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이 나무들은 곧고 근육질이어서 마치 암놈이 없을 것 같다. 졸참나무 낙엽이 다급하게 바스락거린다. 바스락 소리가 휘모리장단으로 가파르게 치닫는다. 꿩이 날아오른다. 꿩의 활주로는 꿩을 하나도 돕지 않는다. 꿩에게 제 가속도를 측정해볼 기회를 줄 뿐이다. 꿩은 다리의 길을 접고 날개의 길을 편다. 딱딱하길 바라던 길에서 허탕을 치는 길로 길이 이어진다.
꿩이 내달은 길은 고라니 길이 될 수 있고 고라니 길은 사람 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걸어 다니던 길은 큰 차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막 꿩이 낸 길은 길의 새싹인가. 길들은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며 서로 만난다. 길끼리 만나지 않는 길은 존재할 수 없다. 길 중에, 섬[島]인 길은 없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pp.194~195, 「전등사에서 길을 생각하다」 중에서
새벽에 밥하려고 쌀을 펐다. 며칠 사이에 쌀벌레 수가 부쩍 늘었다. 손가락이 무뎌 쌀벌레만 잡히지 않았다. 쌀 몇 톨과 함께 쌀벌레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입에 긴 집게가 달린 쌀벌레가 쌀 톨 틈을 비집고 빠르게 기어 나왔다. 쌀벌레는 손가락을 대자 죽은 체했다. 목숨 지키려는 작은 생명체의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너무 작아 손가락 끝으로도 잡을 수 없는 생명. 쌀벌레야, 너는 어쩌자고 몸이 검은 것이냐? 쌀벌레 이십여 마리를 골라냈다. 나와 같이 쌀을 주식으로 삼는 식객들이 이렇게 많이 나와 동거를 하고 있었으니, 내가 만날 독상을 대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쌀벌레가 고마워지기도 했다.
멀리 김제평야에서 쌀을 보내준 농부 시인 김유석 형과 유기농 봉지쌀을 보내준 김민정 시인의 고마운 맘을 내 마음에 안친 새벽. 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는 나의 생활이, 쌀만 축내고 있는 쌀벌레 같은 내가 한없이 미워졌다. 반성 끝에, 앞으로 매일 저수지길이라도 걸으며 운동하여 뱃살도 빼고 글도 열심히 쓰자고 맘을 다졌다.
--- p.234, 「저수지 가는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