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대답을 하고 일행 뒤를 쫓아가자, 뜰에 홀로 남은 햄릿은 혼잣말을 했다.
“아, 저 배우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비열한 놈인가! 배우는 저렇게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한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모든 것을 생생하게 만들어버리는데, 나란 놈은! 배우는 무대를 눈물로 채우고 무시무시한 대사로 관객들의 귀를 찢어놓는데! 죄인을 부들부들 떨고 미치게 만들어 죄가 없는 사람조차 섬뜩하게 만드는데! 그런데 나는 얼마나 겁쟁인가! 몽상가처럼 기가 죽어 한마디도 못 하고 있으니! 누가 내게 악당이라고, 겁쟁이라고 고함치며 내 머리를 깨버리더라도, 내 수염을 죄다 뽑아 내 얼굴에 훅 날려버리더라도, 누가 내 코를 비틀며 새빨간 거짓말만 하는 놈이라고 욕하더라도, 아, 난 그걸 감수할 수밖에 없어. 난 간이 콩알만 하고 쓸개 빠진 놈이니까. 못난 놈 같으니! 사랑하는 아버지가 살해를 당했는데, 그분이 복수를 명했는데 길거리 여자처럼 말로만 저주를 퍼붓고 있다니! 아, 나 자신도 내가 역겨워. --- p.46~47
그들이 모두 물러가자 햄릿은 또 혼잣말을 했다.
“이제 마법의 시간이 되었구나. 교회 묘지가 입을 벌리고 지옥에서 역병이 세상으로 번져가는 시간! 지금은 밤이다. 이제 나는 뜨거운 피를 마시리라. 밤이 되었으니 훤한 대낮이라면 무서워할 독한 짓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 어머니에게로 가자. 내 마음아, 결코 효심을 잃지 말기를! 이 가슴에 어머니를 죽인 네로의 악한 영혼이 절대로 들어오지 말게 하라. 잔인하되 불효는 범하지 말게 하라. 내 말을 칼같이 날카롭게 벼르리라. 하지만 결코 진짜 칼을 쓰지는 않으리라. 내 혀는 내 영혼을 속이고 내 영혼은 내 혀를 속이길! 내가 어머니에게 아무리 독한 말을 퍼붓더라도, 내 영혼아, 나의 그 말을 받아들이지 마라.” --- p.71~72
“장군님, 제가 진정으로 장군님을 사랑한다는 건 믿으십니까?”
“믿고말고. 자네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 자네가 그렇게 말을 머뭇거리니까 더 궁금하네. 거짓된 자는 속임수를 쓰려고 말을 아끼겠지만 자네같이 정의로운 사람은 진심으로 뭔가 해줄 말이 있기에 그런 식으로 망설이는 것 아닌가? 자, 망설이지 말고 말해보게.”
“아, 장군님, 장군님께서 아무리 재촉하셔도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장군님께 해가 될뿐더러 제 인간성에도 누가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겠습니까?”
“어허, 말을 해보래도. 내 무슨 수를 쓰건 자네 생각을 알아내고 말 거야.”
“장군님이 제 심장을 두 손에 쥐고 계신다고 해도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질투심을 조심하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질투심은 푸른 눈의 괴물입니다. 희생물을 잡아먹고 말지요. 오쟁이 진 자, 즉 아내가 딴 남자와 바람을 피운 자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되지요. 하지만 아내에게 푹 빠져 있으면서 의심을 하게 된다면, 아내를 수상히 여기면서도 여전히 사랑한다면, 그 얼마나 저주받은 시간을 보내게 되겠습니까? 이게 모두 질투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오셀로는 점점 이아고가 쳐놓은 덫에 빠져들었다. --- p.165~166
“장군, 장군은 당신 자손들이 왕이 되기를 원하지 않소? 저 마녀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소.”
“그 말을 그대로 믿다가는 코도 영주 정도가 아니라 왕관을 탐하게 되겠군요. 악마는 가끔 우리에게 작은 진실을 알려주지요. 그걸로 우리를 유혹하는 거요. 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배반합니다.”
맥베스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두 가지는 진실로 밝혀졌다. 내가 글래미스 영주라는 것, 또한 코보 영주가 되었다는 것. 그래, 그들이 내게 왕이 되어달라고 간청한 거야. 미래의 일을 예언한 거야. 왕권을 둘러싼 웅대한 연극이 시작되는 거야. 생각지도 않던 코도 영주 자리가 내게 돌아왔지 않은가? 그건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예고하는 거야. 그런데 왜 자꾸 끔찍한 유혹에 빠져드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지? 왜 머리칼이 곤두서는 거지? 왜 심장이 이렇게 요란하게 고동치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무서운 일보다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더 무서운 법이야. 아직 벌어지지도 않는 상상 속의 살인이 나를 이렇게 마비시키는구나! 제길, 될 대로 되라지. 아무리 험한 날들이라도 세월은 흐르는 법이니까.’
--- p.24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