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체들의 순서
태양계에는 수많은 물체들이 존재한다. 그중에는 아주 큰 것도 일부 있지만 산만 한 크기의 물체가 많고, 도로 포장에 쓰이는 둥근 돌만 한 것은 더 많으며, 또 핀 대가리나 먼지만 한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태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를 크기 순으로 도표로 만드는 것은 나는 물론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므로, 그런 시도는 아예 생각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다만 태양계에서 가장 큰 것부터 시작하여 27개의 천체를 순서대로 열거해 보기로 하자. 그러면서 필요하면 각각의 천체에 대해 간단한 설명도 곁들이려고 한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천체는 두말할 것도 없이 태양이다. 그렇지만 태양이 지배하는 영역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태양계를 나타낸 그림들을 보면 대부분 행성들의 궤도를 그리면서 그 중심에 태양을 작은 원으로 그려 넣곤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할 우려가 있다.
태양의 질량은 지구의 33만 3000배에 이른다. 큰 중력장 안에 거대한 양팔저울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 양팔저울의 한쪽 접시 위에 태양을 올려놓았을 때, 그것과 균형을 잡으려면 반대쪽 접시 위에는 지구의 질량에 해당하는 추를 33만 3000개나 올려놓아야 한다.
태양은 평균 밀도가 지구보다 작기 때문에, 똑같은 1kg이라도 태양 구성 물질은 지구 물질보다 더 많은 부피를 차지한다. 그래서 태양의 부피는 지구보다 130만 3000배나 크다. 태양과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컨테이너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만약 이 컨테이너 안에 지구 크기의 고체를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채워 넣는다고 한다면, 130만 3000개나 되는 지구를 가루로 빻아야만 컨테이너를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도는 모든 행성과 위성, 소행성, 유성체, 혜성, 우주 먼지를 통틀어 생각해 보자. 태양 주위를 도는 이 모든 물질을‘행성계’라 부를 수 있다.
전체 행성계의 질량은 지구의 448배나 된다. 그렇지만 태양의 질량은 이 모든 행성계의 질량보다 743.3배나 크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여 말하자면, 태양이 태양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질량은 무려 99.886%나 된다! 따라서 단지 질량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냉정한 관측자의 입장에서 보면, 태양계는 중심에 빛을 내는 밝은 태양이 있고, 그 주위에 아주 적은 양의 티끌이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태양계를 연구할 때 단지 태양만 그 대상으로 삼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그러한 티끌 중 하나에 살고 있고, 또 그 곳에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pp.89-90
옛날 옛적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앞 장에서 나는 도플러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먼 은하들이 모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으며,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얼핏 생각하면 이 사실은 우리 은하가 특별한 존재임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모든 은하가 우리 은하를 중심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지 않은가?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것은 가당치 않은 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천억 개의 은하 중에서 하필이면 우리 은하가 그렇게 특별한 존재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1916년에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여 우주 전체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일련의 장 방정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전체적으로 정적이며, 시간이 흘러도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실제로 그때까지의 관측 결과에서는 여기서 벗어나는 조짐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천체는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어떤 것은 멀어져 가고, 어떤 것은 이쪽 방향으로 어떤 것은 저쪽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렇지만 이 모든 국지적인 변화들은 상쇄되어 전체적인 우주의 모습은 늘 똑같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을 푼 결과는 정적인 우주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방정식에‘우주 상수’라는 항을 임의로 첨가하여, 그 방정식의 해가 정적인 우주의 모습을 나타내도록 했다.(훗날 그는 이것을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네덜란드 천문학자 빌렘 드 지터(Willem de Sitter; 1872~1934)는, 장 방정식에서 우주 상수를 없애면 일정한 속도로 점점 커져 가는 팽창 우주라는 결과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우주가 실제로 팽창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관측적 증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드 지터의 주장은 순전히 이론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런데 허블이 먼 은하들이 모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그것은 곧 드 지터가 주장한 우주의 팽창을 지지하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모든 은하들(그리고 은하단들)은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모든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지, 우리가 특별한 은하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가 전체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면, 어떤 은하에서 우주를 바라보더라도 나머지 모든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는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은 우주를 있는 그대로 잘 묘사한 것이었으며, 우주 상수 같은 것은 애초부터 필요없는 것이었다. --- pp.175-176
진정한 지배자
‘지배적’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의 질량은 동물의 10배나 된다. 그리고 동물은 식물계에 기생하는 존재로서만 살아갈 수 있다. 만약 식물이 모두 사라진다면, 동물도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동물이 모두 사라진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식물은 살아남을 것이다.
아주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외계인이 지구를 본다면, 지구는 식물의 세계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많이 진화한 나무들이‘지배자’로 보일 것이고, 식물들 사이로 하찮은 기생충들이 귀찮게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사람의 몸도 수조 개의 세포와, 피부나 창자에 기생하는 하찮고 귀찮은 기생충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생충이 우리의 몸을 먹고 산다고 해서 그들을 우리의 지배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른 각도에서 한번 바라보기로 하자. 진핵생물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에 대해 여러 종류의 원핵생물이 서로 도우며 살다가 결국 결합하여 진핵생물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유전 기능이 발달한 원핵생물이 산소 이용 기능이 뛰어난 원핵생물과 결합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결합하면서 유전 기능에 뛰어난 부분은 핵이 되었고, 그 바깥에 산소 처리 기능이 뛰어난 미토콘드리아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 밖의 세포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들은 각자 특별한 기능을 가진 원핵생물이 결합함으로써 생겨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진핵 세포들이 결합하여 다세포 식물과 동물이 생겨난 것처럼 진핵생물은 원핵생물들이 결합해 생겨났다. 이 견해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미국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 )이다.[...]
또 다른 시각에서 한번 바라보자. 진핵생물은 약 14억 년 전에 출현했고, 최초의 다세포 생물은 약 8억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원핵생물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번성하고 있다. 원핵생물은 그 수가 매우 많고 또 급속하게 증가해 가기 때문에, 진핵생물(단세포 생물이든 다세포 생물이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
그 결과, 진핵생물이 적응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원핵생물은 그럭저럭 적응해 살아간다. 원핵생물은 어떤 진핵생물도 살 수 없는 온도나 염분 속에서도 꿋꿋이 살고 있다. 다른 생물들은 섭취하지 못하는 무기 화합물을 섭취하면서 살아가는 종류도 있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생물체도 견딜 수 없는 극한 환경 속에서도 포자의 형태로 살아남는다.
우리가 원핵생물을 죽이려고 화학 약품을 개발하면 원핵생물은 그 화학 약품에 점차 적응하기 때문에, 원핵생물을 계속 억제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화학 약품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만약 우주적인 것이건 인공적인 것이건 큰 재앙이 발생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멸종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들 원핵생물은 맨 마지막에나 사라질 것이다. 심지어 모든 생물이 사라진 뒤에도 이들은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과연 지구의 지배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편견이나 자기애를 버리고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 pp.254-257